개빈 후드 감독의 <아이 인 더 스카이>는 첨단무기전쟁으로 바뀐 현대전을 조명한다. 현대전은 크고 작은 드론을 이용해 주요 타깃을 조용히 공격한다. 작전명령은 수천㎞ 떨어진 본부에서 이뤄진다. 버튼만 누르면 임무가 완수되는 전자오락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변치 않는 것도 있다. 진짜 사람이 죽는다는 것. 그리고 그 결정을 또 다른 사람이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합동사령부의 작전지휘관 파월 대령(헬렌 미렌 분)은 미국계 테러리스트 댄 포드를 6년째 쫓고 있다. 파월은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댄 포드를 찾아낸다. 댄 포드는 또 다른 자살폭탄테러를 기획하고 있다. 파월 대령은 생포 대신 사살하기로 하고 영국 법무장관에게 폭격 허가를 요청한다. 영국 법무장관은 외교장관에게 미루고 외교장관은 미국 국무장관에게 결정을 미룬다. 미국 국무장관의 답은 간명하다. “미국인이든 영국이든 미국을 공격하는 자는 적이다.” 하지만 폭격대상 저택 앞에는 빵을 파는 소녀가 있다. 미국 네바다 공군기지에 있는 드론 조종사들은 좀처럼 폭격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
자살폭탄이 실행되면 평균 80명의 민간인이 죽는다. 즉 폭격을 하면 1명의 아이는 죽지만 80명의 미래 희생자는 구할 수 있다. 반대로 폭격을 하지 않으면 1명의 아이는 구하겠지만 80명의 민간인이 희생될 수 있다. 1명과 80명의 죽음. “부수적인 문제로 전체 작전을 망칠셈이냐”고 미국은 다그치지만, 드론 조종사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드론 조종사들이 결단을 늦추는 것을 단순히 감정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들의 망설임에는 ‘시간의 차이’도 있다.
1명이 죽는 것은 당장이지만 80명이 죽는 것은 몇 달 후의 얘기다. 시간적으로 멀고 가까움에 따라 사람들의 선호가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선호역전(Preference Reversals)’이라고 한다. 선호역전은 ‘시간적 비일관성(Time inconsistency)’이라고도 한다. 다이어트를 해 여름에 멋지게 비키니를 입고 싶지만, 당장 달콤한 초콜릿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담배를 끊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지만 당장 한 개비가 더 달콤하다. 합리적이라면 큰 이익을 위해 작은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시간의 차이’가 끼어들면서 선호를 뒤바꾼다. 결혼을 앞두고 우울과 불안감에 빠지는 메리지 블루도 비슷하다.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먹을 때는 기뻐했으면서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면 과거에 대한 아쉬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겹치며 심리가 불안정해진다. 시간에 따라 ‘결혼’에 대한 감정이 달라진다.
도모노 노리오는 저서 <행동경제학>을 통해 “선호역전은 단순히 심리 때문이 아니라 뇌반응의 결과”라고 밝힌다. 맥크루와 레입슨 등이 가장 가까운 장래의 작은 이익과 먼 장래의 큰 이익을 선택할 때의 뇌의 활동상태를 조사해 보니 활성화되는 뇌의 부분이 다르더라는 것이다. 가까운 장래의 작은 이익은 뇌에서 ‘감정’을 느끼는 부분이, 먼 미래의 큰 이익은 ‘인지’를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됐다. 감정 부분이 이기면 전자를, 인지 부분이 이기면 후자를 택한다는 것이다. ‘감정의 욕구’와 ‘의지의 힘’의 대결은 질문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이른바 ‘프레이밍’ 싸움이다. “일주일 뒤에 100만원을 갚아라”와 “168시간 뒤에 100만원을 갚아라”는 느낌이 다르다.
전쟁에서의 선호역전은 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명분도 선호역전을 일으킨다. “테러리스트들이 80명을 죽이면 우리는 선전전에서 이기지만, 우리가 한 아이를 죽이면 그들이 이긴다”는 영화 속 대사는 전쟁에서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1명의 일병을 구하기 위해 8명의 아군이 희생을 감수한다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인간은 시간뿐 아니라 때로 명분 때문에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