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좀비 재앙을 일으키는 지하 비밀기지가 있다? 때만 되면 주기적으로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이다. 그때란? 바로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개봉할 때다. ‘레지던트 이블5’ 개봉을 앞두고 여지없이 또 이 이야기가 인터넷 게시판을 달궜다. 지하 비밀기지가 있는 장소는? 바로 대전정부종합청사다. 정확히 말한다면 대전정부종합청사의 4개동 가운데 있는 채광창이 이 ‘설’의 발원지다.
대전정부종합청사의 구글 위성사진. 가운데 채광창 부분이 영화 레지던트 이블과 게임 바이오 하자드의 엄브렐라사 마크와 비슷하다.
누리꾼이 ‘증거’로 제시하는 구글 위성사진 등을 보면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알 수 있다. 아, 물론 이것은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봤거나 영화의 원작인 ‘바이오 하자드’ 게임을 해봤다는 게 전제되어야 한다. 시리즈물에서 ‘좀비 재앙’을 일으키는 원흉이 있는데, 바로 다국적 제약회사 엄브렐라사다. 회사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엄브렐라사 홈페이지(http://www.umbrellacorporation.net )의 ‘회사소개’ 코너를 참고하시라.
엄브렐라사의 로고가 바로 빨간색과 하얀색이 겹쳐져 있는 우산 모양의 마크인데, 대전정부종합청사의 채광창이 딱 그 모양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대전 지하비밀기지, 또는 엄브렐라 지사(支社) 설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누가 오리지널이냐는 것이다. 대전정부종합청사가 만들어진 것은 1998년.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원작인 게임 바이오 하자드가 첫 발매된 것은 1996년이다. 그러니까 게임 마니아가 대전정부종합청사를 설계하면서 살짝 자신만의 코드를 숨겨놨다?
대전정부종합청사를 비롯해 정부청사를 관리하는 정부 부처가 있다.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소다. 정부청사관리소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대전정부종합청사의 연혁이 나와 있다. 대전청사 연혁에 따르면 1990년 9월에 중앙행정기관 대전 이전 계획 확정에 이어 1991년 6월에 정부대전청사 설계 공모가 이뤄졌고, 작품이 선정된 것은 1991년 11월이다. 그러니까 오리지널은 바이오 하자드가 아니라 대전정부종합청사 쪽이다.
정부청사관리소 측에 문의해봤다. “글쎄요… 벌써 20년도 지난 일이라 그때 일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 같네요.” 기획과 문범수 서기관의 답이다. 정부청사관리소에 따르면 당시 대전청사를 설계한 쪽은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꽤 큰 회사다.
설계사 관계자는 “1998년 대전정부종합청사가 문을 열었다고 하더라도 설계나 시공은 훨씬 전에 진행되기 때문에 정부청사관리소 측에서 1991년 설계를 공모했다면 그때가 맞을 것”이라며 “역시 20년이 지난 일이라 당시 주축으로 설계한 관계자들은 모두 퇴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바이오 하자드를 발매한 캡콤사나 영화 레지던트 이블 관계자가 대전청사의 설계를 참고했을까. 몇 년 전부터 끈질기게 돌던 이미지가 있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의 한 장면’이라며 대전청사의 위성사진과 비교해놓은 이미지다. 이미지에 나온 엄브렐라 본사는 대전청사, 맞다. 필자는 ‘레지던트 이블4’가 개봉하던 시점에 전체 시리즈를 돌려보며 해당 장면을 찾아본 적이 있다. 하지만 영화에 그런 장면은 없었다. 누군가 대전청사 사진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우연의 일치였다’가 오늘의 결론이 되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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