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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땅에 ‘고려인 꿈’을 일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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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아그로상생’ 5억평 농장… 후손에게 삶의 터전 제공 민족 자긍심 높여

루비노브카 농장의 관리인 양일리야씨(가운데)와 러시아 일꾼들.

루비노브카 농장의 관리인 양일리야씨(가운데)와 러시아 일꾼들.

러시아 동남쪽 끝자락의 면적 16만5900㎢의 땅 이른바 연해주다.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표현인 ‘얼지 않는 항구’, 블라디보스토크가 주도(主都)이다.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중국인, 한국인(고려인) 등 다양한 인종이 어울려 살고 있다.

연해주는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땅이다. 그 옛날 우리의 조상들이 발해국을 세워 호령하던 땅이며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우리의 할아버지, 혹은 증조할아버지 세대가 두만강을 건너가 삶의 터전을 닦은 땅이다. 가난과 굶주림, 핍박에서 벗어나고자 연해주로 건너간 우리의 할아버지는 연해주의 허허벌판을 개간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해주에서 기반을 닦고 정착 단계에 들어설 즈음인 1937년 9월,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동남쪽 끝자락에서 머나먼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했다. 일본군 첩자로 활동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고려인은 수확기에 접어든 황금빛 들판을 뒤로 한 채 맨몸으로 화물차·가축운반차로 쓰이는 열차에 짐짝처럼 던져졌다.

중앙아시아 이주 고려인 다시 회귀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면서 중간중간 정차해 무차별적으로 내버려졌고, 시베리아의 매서운 추위와 굶주림 등으로 죽어갔다. 마침내 연해주에서 약 6000㎞ 떨어진 중앙아시아에 도착했다. 하지만 고려인을 기다린 것은 수용시설도 없는 허허벌판에다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 배고픔, 막막한 앞날이었다. 1937~1938년의 겨울을 나는 동안 수많은 고려인이 목숨을 잃었으며 유아사망률은 20%에 달했다.

그러나 고려인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다음해 봄이 되자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서서히 그곳에 적응했다. 우리 민족의 농사에 대한 열망과 꿋꿋한 생명력이 다시 발휘된 것이다.

연해주 루비노브카 농장에서 키우는 사슴들.

연해주 루비노브카 농장에서 키우는 사슴들.

1990년대 들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고려인이 연해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들 세대는 강제이주된 세대의 손자·증손자세대다.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대다수 국영농장이 파산했다. 연해주의 드넓은 농지는 버려진 땅 취급을 당했다. 그 버려진 땅이 다시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사람은 곳곳에서 농지를 개간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그리움과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연해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일어난 이동 붐은 이후 주춤하다가 2000년대 들어 또 한 번 급물살을 탔으며 최근 이동인구가 부쩍 잦아지고 있다. 고려인들은 농사짓기가 훨씬 유리한 환경을 찾아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연해주로 ‘복귀’하고 있는 것이다. 연해주 고려인들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까지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서 연해주로 돌아온 고려인은 대략 4만5000명. 젊은 고려인 중에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연해주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연해주에 카지노가 급속히 늘어난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이 연해주로 복귀하는 데 큰 힘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약 5억 평에 달하는 ‘한국 농장’이다. 대순진리회(종무원장 이유종)는 1998년부터 구소련이 붕괴한 후 파산한 국영농장을 하나씩 인수해 ‘아그로상생’이라는 러시아 현지 영농법인을 설립, 2000년부터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아그로상생’이란 ‘농업(아그로)’과 ‘함께 산다’를 합친 말이다.

14~15세의 러시아 여학생들은 방학때면 부모의 일손을 돕는다.

14~15세의 러시아 여학생들은 방학때면 부모의 일손을 돕는다.

“이곳 고려인은 기가 살아있다”

현재 연해주 ‘아그로상생’에는 일린카농장, 아방가르드농장 등 모두 11개의 ‘한국 농장’이 있다. 물론 소유는 아니고 장기임대 형식이다. 이들 농장에서 사슴을 키우고 콩, 밀, 보리, 귀리 등을 재배한다. 러시아인은 사슴고기를 먹지 않지만 중국에 수출하기 위해 방목하고 있다. 녹용 또한 대부분 중국에 약재로 수출하고 있다.

‘아그로상생’은 중앙아시아에서 돌아온 고려인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이다. 현재 아그로상생에 근무하는 고려인은 80여 명. 이들은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남자는 러시아 농민들을 관리·감독하고 여자는 농장의 안살림을 맡는다.

연해주에 ‘한국 농장’을 제일 반기는 사람들은 역시 고려인이다. 비록 최근 연해주로 ‘복귀’하는 고려인은 강제이주의 아픔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은 세대지만 아픈 기억만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지금 고려인은 연해주에서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러시아인의 관리·감독을 받던 처지에서 이제는 러시아인을 관리, 감독하는 위치가 됐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로부터 더 이상 괄시와 수모, 모멸 등을 받지 않게 된 것이다.

루비노브카농장에서 농민들을 관리·감독하는 양일리야씨(57)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1995년 두 아들을 데리고 연해주로 온 고려인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채소농사를 짓던 그는 우크라이나에 살던 고려인 친구와 함께 연해주로 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 사이에서 최근 연해주에 대한 얘기가 많이 오간다고 한다. 양일리야씨는 “중앙아시아의 많은 고려인이 연해주로 오기를 희망한다”며 “이곳 고려인은 옛날과 다르게 기가 살았다”고 말했다. 과거 ‘일본군 첩자’로 오해받고 소수민족으로 무시당하던 연해주 고려인은 이제 활짝 웃으며 기를 펴고 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농민은 ‘아그로상생’에서 고려인의 관리·감독하에 하루 평균 100루블을 받고 밭을 간다. 작업량에 따라 80~120루블에서 일당이 정해진다. 1루블이 우리돈으로 35원 정도니 100루블이면 고작 3500원이지만 러시아 물가를 감안하면 적은 액수는 아니다. 이들 4인 가족이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빵이 12~13루블이다. 구소련 시절과 다르게 ‘일한 만큼 번다’는 생각이 농민의 손놀림이 매우 바쁘다. 게다가 각종 농기구 또한 소중히 다룬다.

14~15세 된 여학생들도 직접 농기구를 들고 밭을 갈고 있다. 때마침 방학이어서 부모의 일손도 돕고 돈도 버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군인들도 밭을 갈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생각에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워낙 농지가 넓고 일손이 부족해 군인들도 농사를 돕는다. 젊은 사람이 도시로 떠나 농촌에 젊은 일손이 없기는 우리나라나 러시아나 마찬가지다.

현재 연해주의 ‘한국 농장’ 에서는 농사준비가 한창이다.

현재 연해주의 ‘한국 농장’ 에서는 농사준비가 한창이다.

다가올 우리나라 식량난도 대비

‘아그로상생’에서 생산되는 곡물은 대다수 러시아 현지에서 판매하거나 중국 등으로 수출한다. 곡물 형태로 우리나라로 들여오지는 않는다는 것. 이유종 종무원장은 “수익만을 바라서 하는 일은 결코 아니며 또한 가뜩이나 값싼 해외 농산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농민에게 곤란함을 주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연해주의 파산한 국영농장을 계속 인수하면서 곡물을 재배하고 있는 속뜻은 무엇일까. FTA(자유무역협정)를 비롯해 갈수록 심해지는 농산물 개방 압력에 밀려 멀지 않아 닥칠 식량난에 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식량이 부족해 식량난을 맞는 게 아니라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식량,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닥칠 식량난에 대비한다는 것이다. 이 종무원장은 “그때가 되면 아그로상생에서 생산하는 식량이 우리나라 국민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아그로상생은 우리나라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단의 김진원 총무부장은 “고려인 3, 4세대에게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준다는 점, 고려인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한국인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인식을 개선시킨다는 점, 우리 조상의 영토나 마찬가지였던 연해주에 우리가 운영하는 농장이 있다는 점 등이 우리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며 “아그로상생은 우리의 정신적·문화적 영토”라고 말했다.

‘아그로상생’은 현재 파산한 국영농장 6곳을 더 인수하기 위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 민족의 눈물과 애환이 스며들어 있는 연해주에서는 지금 우리 민족의 저력이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발해농원, 비지까지 포함한 전두부 개발

콩을 일러 ‘밭의 쇠고기’라고 한다. 식물성 단백질을 비롯해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콩을 이용한 식품으로는 제일 먼저 두부가 떠오른다. 콩이 웰빙·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으면서 두부 수요도 크게 늘어났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1999년 2400억 원이던 우리나라 두부시장 규모는 2005년 4000억 원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황교익 대표이사가 발해농원 일린카 농원에서 재배한 콩을 들어보이고 있다(왼쪽). 발해농원이 생산하는 두부제품들.

황교익 대표이사가 발해농원 일린카 농원에서 재배한 콩을 들어보이고 있다(왼쪽). 발해농원이 생산하는 두부제품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포장두부시장의 급성장이다. 1999년 635억 원(전체 두부시장에서 26.5%)이던 우리나라 포장두부시장은 2005년에는 1900억 원으로 전체 두부시장의 절반 가량(47.5%)을 차지했다. 포장두부시장은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 포장두부는 가공과정에 나오는 비지를 제거하고 만든 것이다. (주)발해농원 황교익 대표이사는 “포장두부시장 규모가 커짐에 따라 두부 제조 과정에 생기는 비지를 더 이상 식용이나 가축사료용으로도 소화하지 못할 지경”이라며 “콩의 영양소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비지를 그대로 버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비지를 그대로 포함한 두부’를 ‘전두부’라고 한다. 발해농원이 이 전두부 대량생산에 성공, 곧 출시 예정이다. 전두부는 생성된 비지를 일부러 포함시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분쇄기술을 개발, 콩을 분쇄할 때 비지 생성을 아예 차단하는 방식이다. 황 대표이사는 “이 기술은 제조시간을 단축하고 제조설비를 줄이며 폐수 발생이 거의 없어 ‘꿈의 기술’로 불릴 만하다”고 말했다.

전두부의 재료가 되는 콩은 러시아 현지 영농법인인 ‘아그로상생’의 일린카농장에서 재배하는 것을 사용한다. 일린카농장에서 재배하는 콩은 그 알이 국내에서 생산되는 콩의 70% 정도로 작지만 단단하고 맛이 좋다.

발해농원은 국산 농가를 지원한다는 차원에서도 국산 콩도 수매한다. 지난해 200t을 수매했고 올 가을에는 1000t을 수매하기로 계약한 상태다. 국산 콩은 경기 화성에 있는 분쇄공장에서 분쇄한다.

황 대표이사는 “전두부는 식이섬유 등 영양분이 풍부하고 탄력이 좋아 생식·부침용 모두 가능하며 녹차두부, 콜라겐두부, DHA두부 등 기능성 두부 제조가 가능하다”며 “분쇄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몇몇 대기업에서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블라디보스토크/글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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