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죄부’ 얻고 ‘이미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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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미성년 성추행 혐의 벗어… 옛 명성 회복은 힘들 듯

지난 6월 13일 오후 2시 13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바버라 지방법원의 한 법정. 로드니 멜빌 판사의 명령을 받은 법원 서기가 배심원단이 건넨 판결을 읽기 시작했다. 일순 팽팽한 긴장에 휩싸였던 법정이 술렁댔다.

지난 20개월 동안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얽어맸던 10가지 혐의가 무죄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미성년자 성추행, 불법 구금, 허위진술 강요, 미성년자 알코올 제공 등 도합 18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위기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검은색 상하의에 완장을 착용하고 피고석에 앉아 있던 잭슨은 티슈를 꺼내 조용히 눈가를 닦았고 변호인이던 한국계 수잔 C 유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른 아침부터 법원 앞을 메웠던 잭슨의 팬 수백 명도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얼싸안았다. 한 여성 팬은 잭슨의 혐의가 하나씩 무죄평결 될 때마다 준비해 온 흰비둘기를 하늘로 날리며 자축했다.

AP통신은 힘없이 법정을 나선 마이클 잭슨이 산산이 부서진 이미지를 주워담아 자신의 ‘영지’ 네버랜드 랜치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화제의 재판 과정 사상 유례 없는, 2200여 명의 취재진을 불러모은 ‘마이클 잭슨 재판’의 발단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2월 네버랜드에 묵었던 개빈 아르비조(당시 13세)라는 소년과 소년의 가족이 잭슨을 아동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검찰은 잭슨이 위암을 앓고 있던 개빈에게 포도주를 먹이고 포르노 잡지를 보여주며 성적으로 희롱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측 증인들도 “잭슨이 아이의 머리를 핥고 마네킨으로 성행위를 흉내냈다”고 증언했다.

지난 12년 동안 잭슨 뒤를 캔 노장 검사 톰 스니던(64)은 2차례나 네버랜드 랜치를 압수수색하며 잭슨을 압박했다.

잭슨 변호인단은 이에 맞서 “술은 개빈이 직접 찾아 마셨고, 포르노는 개빈이 친형과 보았다”는 주장을 폈다. 또 (개빈이 잤다는)잭슨 침대에서 그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음을 집중 부각시켰다. 변호인단은 영화 ‘나홀로 집에’의 아역배우 매컬리 컬킨, TV 토크쇼 진행자 제이 레노 등 유명 연예인 수십 명을 증언대에 불러 세우는 물량공세도 전개했다. 마침내 지난 4월 잭슨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전처 데비 로마저 “잭슨은 두 아이의 훌륭한 아버지”라고 증언하면서부터 분위기는 잭슨 쪽으로 기울었다.

무죄평결의 요인들 스니던 검사는 잭슨은 아이들을 네버랜드로 부르고 침실로 꼬드긴 소아성도착자라고 비난했지만 배심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반대로 개빈의 가족들이야말로 거짓말로 거액을 뜯어내려는 사기꾼이며 엉터리 배우들이라는 변호인측 주장이 시간이 갈수록 먹혀들었다.

개빈의 어머니 재닛 아르비조는 법정에서 횡설수설하고 때로 모순된 주장을 하는가 하면 인신공격성 증언으로 배심원들의 신뢰를 잃었다. 그녀는 잭슨의 변호사와 싸웠고 배심원들을 훈계했으며 잭슨 숭배자들에게 학대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했다.

네버랜드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던 사실과 백화점에서 절도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성추행을 당했다며 오히려 백화점을 상대로 15만 달러짜리 소송을 걸었던 전력도 그녀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7일간에 걸쳐 증거를 검토했던 한 여성 배심원은 “제대로 된 어머니라면 어떻게 자기 아들을 잭슨 침대에서 자게 내버려 둘 수 있느냐”며 그녀의 사기성을 암시했다. 한 남자 배심원은 “우리(남자 4명, 여자 8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는 잭슨을 유명인사가 아니라 한 명의 피고인으로 공정하게 다루었다”며 “우리 모두 인정한 것은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사실뿐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검찰측 증거가 부족했다는 얘기다.

되살아난 유전무죄 이번 ‘법정 드라마’는 1994년 6월 12일 전처 니콜 브라운과 그녀의 남자 친구 로널드 골드만을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가 1년 3개월 만에 무죄석방된 미식축구스타 출신 배우 O. J 심슨의 재판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 O.J 심슨은 흑인 명변호사 자니 코크란이 이끄는 ‘드림팀’을 구성해, 경찰과 추격전을 벌인 일이나 온갖 증거의 불리함을 뿌리치고 법정 공방을 승리로 이끌었다. 마이클 잭슨 재판에도 미국 최고의 실력과 몸값을 자랑하는 변호사들이 총동원됐다. 잭슨은 이번 재판에서 변호사 비용만 최소 500만 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배심원 제도의 허점과 여론재판도 한몫했다. 심슨 변호인단은 심슨이 체포될 때 백인경찰이 내뱉은 흑인비하 발언을 부각시키며 재판 구도를 ‘인종차별 재판’으로 몰고갔다. 잭슨측 변호인단도 심리 초기부터 검찰 증인인 피해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를 사기꾼으로 몰아붙이는 공격적 전술을 구사했다. 심슨과 잭슨 모두 형사 재판에는 이겼지만 거액의 금전적 손실을 입어 파산위기에 몰렸다는 점도 닮았다.

재기 가능할까 세간의 관심은 잭슨의 재기 가능성에 모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새 음반을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엘프’ ‘올드 스쿨’ 등에 출연했던 영화배우 윌 페렐은 “잭슨은 아직도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며 새 음반을 내놓기만 하면 엄청난 인기몰이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AOL뮤직의 잭 이스키스도 “잭슨의 레코드 판매 규모는 추락하고 있지만 공연에 나서기만 하면 집중 조명을 받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무죄평결을 받았지만 옛 명성 회복은 힘들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은밀한 사생활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과거 평화와 사랑을 노래하던 대중 스타의 이미지가 너무 훼손됐다는 분석이다.

한 음악잡지 편집장은 “이제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을 더 이상 아티스트가 아니라 이상한 괴물로 본다”고 극단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20년 전 잭슨과 함께 자선공연 ‘위 아 더 월드’를 기획했던 켄 크레이건은 유럽이나 아시아는 어떨지 몰라도 미국에서 잭슨이 재기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잭슨의 전기 작가인 랜디 타라로렐리는 “그가 재판으로 기진맥진한 상태여서 음악을 다시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조심스레 내다봤다.

‘세기의 화제’몰고 다니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1958년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시에서 9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한마디로 범죄와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혹독한 훈련기였다고 할 수 있다.

전직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 조지프는 음악만이 자신의 가족을 음지에서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수단이라고 판단했고 이러한 생각은 자식들에 대한 정신적·육체적 학대와 무자비한 훈육으로 이어졌다.

일찍이 노래와 춤 등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잭슨은 겨우 8살 때 형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그룹 ‘잭슨 파이브’의 멤버로 1969년 정식으로 중앙 무대에 진출한 그는 1970년 싱글 ‘아이 원트 유 백(I Want You Back)’과 ‘아이 윌 비 데어(I’ll Be There)’로 단숨에 아이돌 스타로 떠오른다. 1972년 첫번째 솔로앨범 ‘갓 투 비 데어(Got to Be There)’, 1979년 첫번째 성인 솔로앨범 ‘오프 더 월(Off the Wall)’을 발표했고 이어 1983년 ‘빌리 진(Billie Jean)’으로 글로벌 스타로 자리잡았다.

그의 최전성기는 1984년 전세계에서 5000만장이나 팔린 두번째 솔로앨범 ‘스릴러’를 발표했을 때다. 하지만 부와 명예뿐 아니라 시련도 이 시기에 시작됐다. 스릴러 앨범 표지에 등장한 얼굴사진과 관련해 성형설이 제기됐고, 전미국 음악상 시상식에 함께 나온 영화배우 브룩 실즈와 염문설이 터져나왔다. 또 애완용 원숭이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는 동물학대설도 제기됐다.

1993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 피부병 때문에 피부색을 바꾸고 있고 과거 아버지에게 구타당했다고 털어놓은 것도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

더 치명적인 사건은 그해 13살이던 조던 챈들러에게 성희롱 혐의로 고소당한 일이었다. 그는 고소취하 대가로 챈들러 가족에게 2000만 달러를 건넸다. 이 사건 뒤 이미지 회복을 노려, 유명 인사였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하고 다시 자신의 간호사였던 데비 로와 재혼했지만 결혼생활은 매번 파경으로 끝났다.

전문가들은 그의 개인적 불행을 평범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과 묶어 설명한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상받기 위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뒤 여의도 3.5배 넓이의 ‘네버랜드’를 지었지만 이것이 어린이 성추행설의 ‘씨앗’이 됐다는 분석이다.

정신과 전문의 로버트 버터워스는 “잭슨은 혹독한 훈련과 빡빡한 일정의 가수라는 직업 때문에 잃어버린 어린시절을 뒤찾으려고 애쓴 비극적 인물”이라고 정의한다. 영화배우 제인 폰다도 한 인터뷰에서 마이클 잭슨이 스스로를 피터팬과 동일시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잭슨 자신은 남자 아이들에 대한 자신의 애정이 결코 성적인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그의 변호인들조차 그가 더이상 아이들을 네버랜드의 침실로 불러들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 국제부/이상연기자 lsy77@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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