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탐구’ 명목 남획행위 호주 정부서 제동 나서
“일본이 ‘과학적 탐구’라는 명분으로 호주 해안에서 고래를 잡는 것을 더 이상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존 하워드 총리는 호주 해안에서 일본인 고래잡이가 갈수록 늘어나자 지난 5월 18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
일본인은 호주 해안에서 매년 수백 마리의 밍크고래를 잡고 있다. 지난해에만 400여 마리를 잡았다. 일본이 호주 해안에서 합법적으로 고래를 잡을 수 있는 근거는 “과학적 연구를 위해서는 고래를 잡을 수 있다”는 국제협약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해양 생태학 연구를 위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바닷속에서 고래의 생활 환경과 고래의 번식 방법을 조사하기 위해 호주 해안에서 떳떳이(?) 고래를 잡고 있다. 연구를 마친 고래는 일본으로 유입돼 어류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고 있다.
![[월드리포트]일본-호주 ‘고래싸움’](https://images.khan.co.kr/nm/629/e3.jpg)
연구용이 버젓이 시장에서 거래
문제는 잡은 고래의 양이 ‘과학적 탐구’라고 보기엔 너무 많다는 점이다. 호주는 일본의 안하무인식 고래잡이를 근절하기 위해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고발할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 ‘고래잡이 규제를 위한 국제협약’에서 과학적 탐구를 위한 고래잡이 허용 항목을 제거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 뉴질랜드 등 주변 강대국에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호주는 일본과 정치·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호주에게 일본은 40년 동안 변함없는 최대 수출국이고, 일본 역시 호주로부터 다양한 천연자원을 수입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번 고래잡이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이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목된다.
이곳 정치 전문가들은 하워드 총리가 직접 항의 서한을 보낸 것을 호주 정부로서는 정치적 위험을 감수한 행동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정부·여당은 야당인 노동당이 일본의 고래잡이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지속적으로 요구해도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이를 회피해왔기 때문이다. 호주 정부는 “이 문제를 감정적으로가 아니라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일본이 자체적으로 고래잡이를 줄이거나 중단하기 바랐다.
그런데 이런 바람과는 달리 일본 정부는 “올해부터 고래잡이 수를 더욱 늘려 935마리의 밍크고래를 잡고, 혹등고래는 물론 핀고래까지 잡겠다”고 통보했다. 여론의 거센 항의를 받은 호주 정부로서는 하워드 총리가 직접 나서 브레이크를 걸지 않을 수 없었다.
호주 정부의 공식적인 항의 서한에 가장 먼저 지지를 보인 나라는 인근 뉴질랜드다. 헬렌 클라크 뉴질랜드 총리는 일본의 고래잡이를 강력히 비난하며 “고래잡이 금지는 전세계가 합의한 사항”이라며 어떠한 이유로든 고래잡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일본 정부는 국제적 비난을 묵살하고 “호주 해안 고래잡이는 순전히 연구를 위한 것”이라며 “남은 고래고기를 그냥 버릴 수 없어 시장에 파는 것일 뿐”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켐벨 호주 상원의원은 지난 5월 24일 이곳 ABC 방송에 출연해 “나이를 알아보기 위해 고래의 귀만 자른다고 해놓고는 몸 전체를 토막내는 일본 정부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며 “고래잡이를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드니/김경옥 통신원 kelsy03122022@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