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은퇴 앞둔 장년층 사회보장장치 약화로 경제적 궁핍 우려
![[월드리포트]베이비 붐 세대 ‘우울한 황혼’](https://images.khan.co.kr/nm/629/e2-1.jpg)
제2차 대전 이후 소위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미국의 베이비 부머(baby boomer)들이 은퇴를 앞두고 재정적 압박에 짓눌려 있다고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 최신호(6월 13일자)가 보도했다.
잡지는 조지 W 부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45~55세에 해당하는 젊은 베이비붐 세대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통적으로 은퇴 이후 안정적 생활을 보장했던 401k(미국 기업연금) 등 각종 사회안전장치들이 약화되면서 베이비 부머들의 위기의식이 높아지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웨스트 체스터에서 부부가 함께 의사로 일하는 중산층 에버트 부부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직접 병원을 경영하는 남편 폴(48)과 시간제 의사로 일하는 아내 마거릿(47)은 지금까지 매년 총수입의 10~15%를 저축해왔지만 노후 대비에는 크게 부족하다. 재정 부담이 큰 ‘결정적 시기’가 2년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바로 아이들의 대학 교육이다. 두 아들과 두 딸의 나이는 10살, 12살, 14살, 16살이다. 아이들은 2년 뒤인 2007년부터 대학에 들어가, 폴이 60세가 되는 2017년에야 막내가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향후 12년간 한 해 수십만 달러의 학비가 들어가고 이 기간이 끝나면 노후대비 없이 은퇴기에 접어든다는 의미다.
수명 늘어나 퇴직 후 시간 길어져
퇴직자 지원기구인 ‘스카보로 그룹’의 마이크 스카보로 회장은 “베이비 부머 가운데 많은 사람이 저축할 시기를 놓치고 노년기에 돌입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근로자들의 저축액과 투자규모 등을 고려할 때 1951~1960년 출생한 베이비 부머 중 은퇴 이후 자신들의 경제력으로 기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이들은 40% 정도다. 이들 역시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예상보다 빠른 실직 등 돌발변수를 만나면 기본 생활조차 장담하기 어렵다.
미국의 젊은 베이비 부머들의 은퇴가 이전의 선배 세대들과 다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눈부신 현대 의학과 영양학은 은퇴 이후의 시간을 큰 폭으로 늘리는 데 일조했다. 1970년 미국 여성의 평균 기대수명은 75세였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80세로 늘었다. 또 현재 65세인 미국 여성은 평균 84세까지 살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비 부머들의 소비성향도 변수다. 2차대전 전후 경제 호황기에 성장한 이들 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오랫동안 풍족하게 소비하던 습성이 배어 있다. 더구나 노년이 길어지면서 약값을 비롯한 의료 경비가 연수입의 20%를 차지하는 실정이다. 이처럼 의료비 부담이 늘어나면서 죽는 것보다 암과 같은 중병에 걸리는 것이 두렵다는 베이비 부머들이 3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특징은 베이비 부머 대부분이 여유자금 대부분을 부동산에 넣어두었다는 사실이다. 장기간 계속된 미국의 저금리는 90년대 이후 부동산 붐을 지속시켰고, 사람들은 저축보다 집을 사거나 증축하는 데 골몰했다. 에버트 부부도 지난해 30년짜리 신규 주택담보 대출을 받아 기존대출을 상환하고 남은 돈으로 집을 고쳤다. 이 때문에 이들 부부는 77세까지 매달 할부금을 부어야 할 형편이다.
베이비 부머들은 어떻게 은퇴 이후를 준비해야 할까. 전문가들의 조언은 의외로 간단하다. 무엇보다 저축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늘어난 기대수명으로 30년간 은퇴생활을 한다고 가정할 때 저축한 원금을 축내지 않으려면 매년 원금의 4~5%(이자분)만 소비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45~54세 베이비 부머 중 55%의 은퇴자금은 5만 달러도 못된다. 금리로 생활할 수 있는 최소 수준인 25만 달러 이상 저축자들은 단 10%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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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에도 대부분 노동 희망
“해마다 치솟는 아이들 학자금으로 허리가 휘어도 당장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늙어서 강제로 소비수준(생활수준)이 하락하는 시련을 맞게 된다.”
프린시플 파이내셜 그룹의 다니엘 휴스턴 수석 부사장은 가까운 이를 만나면 이렇게 경고한다.
저축액을 늘리는 것과 함께 서둘러 노년을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 투자연구소 ‘슈왑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에 노후대비 저축을 시작하면 한 해 수입의 10~15%만 저축해도 은퇴 후 이전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30대에 시작하면 수입의 15~25%, 40대 초반에 시작하면 25~35%를 저축해야 한다.
또 다른 대비책은 부수입을 확보하거나 은퇴시기를 늦추는 전략이다. 올해 48세인 제임스 다이아몬드는 지난 20년간 캘리포니아 남부지역의 임대용 주택을 사 모았다. 그는 지금의 변호사 생활을 은퇴해도 임대수입이 연금을 보충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건축자재 영업사원이었던 데이비드 스코필드는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하고 과감히 건축자재 판매점을 열어 성공한 사례다. 올해 53세인 그는 전에 비해 수입이 2배 이상 늘었고 노후 대비 저축액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데이비드는 70대 초반, 빨라도 60대 후반까지 사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유에스 뉴스’는 최근 은퇴에 대한 미국인들의 의식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일단 직장에서 은퇴하면 완전히 노동시장을 떠나 노년을 즐겼지만 근래에는 은퇴 이후에도 계약제로 일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노동을 계속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베이비 부머 중 17%만이 완전한 은퇴를 희망한다는 투자회사 메릴린치 조사는 이와 같은 의식을 보여준다.
이 잡지는 행복한 은퇴생활을 즐기려면 경제적 안정과 함께 다음의 5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했다. 과일과 채소, 생선을 중심으로 한 균형잡힌 식단, 걷기를 포함한 하루 30분 이상 운동, 금연, 스트레칭·요가·명상을 통한 스트레스 조절,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그것이다. 은퇴 연령에 도달했다는 의미는 육체가 단순히 약화됐다는 차원을 넘어 암·뇌졸중과 같은 치명적인 중병의 발병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졌음을 의미한다며 행복하고 편안한 은퇴를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고 조언했다.
<국제부/이상연 기자 lsy7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