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노숙자 봉변당해 브레멘 부시장 공직 사퇴
![[월드리포트]오발 샴페인](https://images.khan.co.kr/nm/626/e3.jpg)
페터 글리오슈타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일 제1야당인 기민당(CDU) 소속 정치가로 브레멘시의 부시장이었다. 은행가 출신인 그는 브레멘주 상원의회 경제위원 및 문화위원직도 겸하고 있었다. 정치가로서 한창이라고 할 수 있는 59세. 그러나 최근 의원직을 반납하고 의회를 떠나야만 했다. 브레멘시 시장광장에서 열린 와인축제가 화근이었다.
행사장 무대에 올라 있던 그는 분위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려 샴페인 병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병을 따고 무대 아래로 샴페인을 부었다. 당연히 밑에 있는 사람이 입을 벌려 유쾌하게 샴페인을 받아 마시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불행히도 샴페인은 밑에 있던 사람의 입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머리를 흥건히 적셨다. 그가 부은 샴페인은 1.5ℓ짜리 마그눔젝트(Magnum Sekt). 보통 샴페인 병(750ml)의 2배 크기였다.
갑자기 샴페인 세례(?)를 받은 사람은 노숙자 우도 욀슐레거(45)였다. 여교사와 결혼해 세 아이를 두었지만, 5년 전에 실업자가 되어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샴페인 세례에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다가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장 행사장에 와 있던 경찰을 불러 그를 고발했다. 다급해진 글리오슈타인 부시장은 215유로(약 27만 원)짜리 몽블랑 볼펜을 주며 달랬지만, 피해자는 “이건 내 명예가 걸린 문제”라며 단호히 거절했다.
금품 제공 화해신청 거절
문제는 그가 샴페인을 붓는 광경이 동영상과 사진으로 포착되어 언론들에 대서특필되면서 커졌다. 무엇보다 독일 최대의 일간지인 ‘빌트(Bild)’가 이 사태를 그냥 두지 않았다. ‘빌트’는 다음날 1면 톱 기사로 샴페인 세례 사진과 함께 관련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수백 개에 달하는 전국의 온·오프라인 신문들도 이 해프닝을 매우 흥미롭고도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녹색당 성향인 ‘타게스차이퉁(TAZ)’은 변호사, 심리분석 전문가 등과 인터뷰를 통해 이날 글리오슈타인의 행동이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또 심리분석적으로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논리적이고도 신랄하게 다루었다. 인터뷰에 응한 변호사는 이날 해프닝에서 중요한 것은 노숙자가 받은 모욕감의 정도이며, 이는 벌금형 혹은 최고 2년 이하의 징역감이지만, 초범이기 때문에 벌금형이 가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리분석가도 샴페인 사건을 놓고, 권력의 정상에 있는 ‘가진 자’가 ‘못 가진 자’ 위에 군림하려는 심리가 발현된 것이며, 이는 중세시대 황제가 자신에 복속한 신하를 다룰 때의 심리와 유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현재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두 여당인 사민당과 녹색당에서는 즉각 글리오슈타인의 사퇴를 종용하며 들고 일어났다.
결국 안팎의 압력에 못이겨 글리오슈타인 부시장은 재임 8개월 만인 사건 바로 다음날 정계은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한 신문은 “그는 올 때 그랬던 것처럼 갈 때도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사라졌다”고 평했다. 정가를 떠나면서 그는 “사진 한 장이 나를 죽였다”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쾰른/박명준 통신원 mejupa@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