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 몸값 ‘부르는 게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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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사설경비·요인경호 등 특수… 재건비용 상당부분 지출

[월드리포트]용병 몸값 ‘부르는 게 값’

전세계에서 ‘택시비’가 가장 비싼 곳은 어디일까. 물가가 세기로 유명한 일본 도쿄, 스위스 취리히, 영국 런던 등을 떠올리겠지만 정답은 이라크 바그다드다.

지난해 11월 이라크를 찾은 미국인 사업가 데이비드 콘은 현지 민간 경비회사 관계자로부터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바그다드 시내까지 약 9㎞ 거리를 택시로 이동하는 데 6000달러(약 600만 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이유는 있다. 바그다드 공항에서 시내까지 거리는 도로 양쪽이 탁트인 지형이어서 외국인을 노리는 이라크 무장세력이 빈번하게 출몰하는 위험지역이다. 최근 미국인 구호단체 직원 마라 루지카와 자국 언론인을 호송하던 이탈리아 특수요원이 총에 맞은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때문에 일명 ‘죽음의 도로’로 불리는 이 도로를 무사히 지나려면 시속 150㎞ 이상으로 달려야 하고 택시 앞뒤로 무장한 경비요원들이 탑승한 호송차가 에스코트해야 한다. ‘뉴욕타임스’ 현지 특파원 덱스터 필킨스에 따르면 종종 장갑차가 동원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택시비’는 무려 3만5000달러(약 3500만 원)까지 치솟는다. 그리고 만일 비행기를 놓쳐 바그다드 시내로 되돌아와야 할 경우 다시 3만5000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지 2년이 넘도록 불안한 치안상황이 계속되면서 사설 경비, 요인(要人) 경호 등을 수행하는 경비업체와 용병(傭兵)들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
빈발하는 테러에 불안을 느끼는 주요 인사나 외국 기업, 언론사, NGO 등은 물론 현지 미군조차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에게 안전을 맡기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5월 8일 이라크 무장단체 안사르 알 순나에 인질로 잡힌 일본인 사이토 하키히코(齊藤昭彦·44)가 영국계 경비업체 ‘하트 시큐리티’에 고용된 흔치 않은 일본인 용병으로 알려지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용병시장 규모와 배경은 이라크에서 사실상 전쟁청부업에 종사하고 있는 용병은 2만여 명, 이들을 고용한 경비업체는 180여 개에 달한다. 용병 2만 명은 이라크 주둔 영국군 9200명의 2배에 달하는 규모이며 미군 13만8000명에 이은 ‘제2의 세력’이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용병만 수천 명이며 주로 전투지역의 보안업무를 도급받아 활동 중이라고 전했다.

최대 고객은 미·영 정부다. 과거 폴 브레머 이라크 미 군정 최고행정관은 자신이 머물던 후세인궁의 야간 경비를 이들에게 맡겼을 정도다. 미국의 경우 한 해 이라크 재건사업비의 10~25%인 20억~50억 달러를 경호경비로 사용한다고 알려졌으며 영국도 이라크 파견 외교관 등의 신변보호를 위해 지난해 4월 기준 약 2500만 파운드(약 500억 원)를 지불했다. 학교와 전기시설, 원유채굴 시설 재건에 써야 할 수십억 달러가 용병시장으로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브루킹스연구소 군사문제전문가 피터 싱어는 현재 전세계적인 용병 시장은 연 1000억 달러(약 100조 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용병 출신과 관련 회사들 용병 출신은 영국 공군 특수기동대(SAS), 미군 최정예 해군특수부대(Navy SEAL)부터 네팔의 구르카족, 피지·칠레·남아공의 퇴역군인,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 등 다양하다. 미국과 영국의 특수부대원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다.

[월드리포트]용병 몸값 ‘부르는 게 값’

수요 폭증에 따라 설립된 지 2년 만에 연 매출 2억 달러를 달성하는 업체도 나왔다. 커스터 배틀즈가 그 대표적인 예다. 퇴역 군인과 전직 CIA요원이 공동으로 설립한 커스터 배틀즈는 바그다드 공항 경비업무 등 대형 프로젝트를 잇따라 따내면서 입지를 굳혔다.

이 회사에는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 정권에서 활동했던 군 정예요원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딕 체니 미 부통령이 회장으로 재직했던 미국 핼리버튼과 켈로그브라운 앤드 루트 같은 거대 군수업체들은 이라크전 초기 부대 인프라 구축과 행정서비스를 담당했지만 2003년 하반기부터 차츰 무장인력을 늘리고 군사작전에 참여하는 양상이다.
하트 시큐리티는 SAS 출신자들이 1997년 설립한 회사로, 현재 이라크 내에서 각종 경비 업무를 맡고 있다. 이밖에 GRS 같은 회사는 주로 네팔과 피지 출신 전역군인들로 이뤄진 약 1100명의 요원을 이라크에서 운용 중이다.

문제점 노출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국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과 알 자르카위로 대변되는 이라크 저항세력의 끈질긴 자살테러, 무장공격 등으로 고려할 때 민간인 전쟁요원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용병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먼저 이들은 현지인과 잦은 무력 출동을 일으킬 뿐 아니라 저항세력에 잇따라 납치·살해되면서 해당국 정부를 곤란하게 한다. 미 민간단체 ICCC조사에 따르면 이라크에서 피살된 경비 관계자는 지난해 63명에 이어 올해도 벌써 23명에 이른다.

2004년 3월 팔루자에서 이라크인들에 의해 시체가 불타고 훼손돼 충격을 주었던 미 경호회사 ‘블랙워터’ 소속 용병들이나 이번에 인질이 된 일본인 사이토 하키히코 등이 그런 예다.

합법적인 치안권도 없이 자동소총과 장갑차, 헬기 등을 동원해 이라크의 무정부 상태를 더욱 부추긴다는 비난도 있다.

이라크전에 반대했던 유럽 언론은 명분없는 전쟁이 사익을 채우기 위한 전쟁으로 더욱 왜곡되고 있다고 성토하고 있다. 돈이 목적인 이들에게 전쟁의 일부를 맡기는 것이 과연 정당하냐는 원칙론이다.

‘뉴욕타임스’는 용병과 이들을 고용한 업체에 대한 심사,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이들 업체에 지급되는 비용조차 기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제부/이상연 기자 lsy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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