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 한류 ‘빛 좋은 개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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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는 한국 연예인이 부리고 수익은 일본 기획사가 챙겨

한류에 자극받은 일본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다. ‘겨울연가’ 열풍이 지난해 한국 GDP까지 밀어올렸다는 뉴스가 최근 보도되었으나, 일본에 스카우트되는 한국 연예인들 대부분이 일본 기획사의 매출로 연결되는 실정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정작 실익은 일본에 빼앗기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한국 자본, 일본 자본을 나눈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한류가 더 이상 한국산이 아니라, 무늬만 한국산인 경우가 생겨나고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나마 아직은 TV 드라마가 ‘메이드 인 코리아’지만 투자한 제작비에 비하면 일본에서 크게 벌어들이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이처럼 일본 산업계 특유의 폐쇄적 풍토와 앞서 있는 연예인 양성 시스템 때문에 세계 속의 보아마저도 일본에선 에벡스 레코드사 소속으로 되어 있다. 우리 연예인들이 일본서 출판하는 사진집도 개인의 인세 등을 빼면 이익 대부분이 일본 출판사로 돌아가고 있다.

실제로 한국 이미지의 상승으로 관광산업이 호조인 점을 제외하면 문화콘텐츠 관련업계에서는 배용준의 소속사를 제외하고는 크게 대박난 곳이 거의 없다. 방송국과 제작사들의 경우도 높은 제작비에 비하면 방영권 수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겨울연가’만 놓고 보더라도 KBS가 약 2000억 원의 이익을 냈으나 NHK는 4000억 원 이상의 이익을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이 예전에 비해 외국에서의 수입이 증가한 것이지, 일본의 관련업계보다 큰 이익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편 일본 경제계에서는 경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한 지난해 ‘겨울연가’가 붐을 탔다는 점과 디플레이션이 압박하는 최근 한류붐이 잠잠해진 점에 주목하는 이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도 몇 년간의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문화 콘텐츠를 위한 전문인력 양성에 나섰다. 지난해 영화관련 전문학원을 설립했고 도쿄대에 ‘콘텐츠 창조과학 교육프로그램’을 개설한 데 이어 올해는 도쿄예술대학에 영화전문 대학원을 설립했다. 일본 국립교육기관에서 문화콘텐츠 관련학과와 프로그램이 생긴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문화콘텐츠 개발 전문인력 양성

작년 한 해 동안 한류열풍을 취재한 아사히(朝日) 신문의 카쿠 요시코(加來由子) 기자는 지난 2~3월에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해외우수인력 전문 마케터 양성 프로그램’을 취재했다. 이를 위해 서울을 방문했던 카쿠 기자는 “확실히 엔터테인먼트에 있어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한수 앞서 있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소재 고갈로 인해 한국 콘텐츠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고, 기획사마다 한국 연예인을 스카우트하려는 데다 방송국들도 아예 한국 기획사에 드라마 제작을 맡기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몇 년 안에 문화콘텐츠에서 일본색을 벗어버리고 아시아에 진출하기 위한 것이 최종 목적”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무명가수 K(강윤성)를 발굴해 일본에서 데뷔시킨 스타더스트와 소니뮤직, 신승훈을 전격 스카우트한 도시바 EMI, 몇 년 전부터 한국의 만화가를 데뷔시키고 있는 소학관 등등. 이런 점을 보더라도 일본이 한류에 지갑을 여는 소비자를 잡기 위해 한류를 이용할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 자명하다.

문화콘텐츠에 있어 실리를 찾기 위해서는 스타 위주의 제작 현실과 몇 번이고 뭉쳤다 흩어지는 체질개선, 해외 전문가 양성 등이 시급한 과제라 하겠다. 우리 드라마와 연예인들이 아시아 각국에서 인기를 얻는 데 만족하며 팔짱만 끼고 있다가는 시시탐탐 노리는 일본에 밥그릇을 빼앗기기 십상이다.

<도쿄/이수지 통신원 buddy-suj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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