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한부 엄마가 남긴 ‘지침서’ 잔잔한 감동
![[월드리포트]“내 딸을 이렇게 키워주세요”](https://images.khan.co.kr/nm/624/e5.jpg)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앞두고 한 엄마가 남긴 ‘엄마 지침서(Mummy Manual)’가 영국인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엄마 지침서’에는 남편과 친지들이 일곱살짜리 딸을 어떻게 돌봐주기를 바라는지, 그리고 그 딸이 어떻게 자라길 바라는지가 꼼꼼하게 적혀 있다.
남부 웨일스에 사는 헬렌 하콤(29)은 2002년 유방암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유방암은 영국의 여성 암환자 가운데 30%를 차지할 정도로 무서운 질병이지만 당시 헬렌은 스물여섯살로 젊은데다 초기였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9개월 후 재검진에서 그녀는 암세포가 급작스럽게 퍼져 앞으로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헬렌은 자신의 생사보다 이제 겨우 일곱살인 딸 피온이 더 걱정됐다. 6개월밖에 함께 할 시간이 없음을 피온에게 알려주며 그녀는 이 ‘엄마 지침서’를 쓰기로 마음 먹었다.
아빠에 대한 당부도 곁들여
전체 3쪽짜리 이 지침서는 자신이 죽은 뒤 누구라도 엄마 노릇을 잘 할 수 있도록 평소 그녀의 말투 그대로 조목조목 적고 있다.
‘피온의 머리에 이가 옮지 않았는지 정기적으로 체크할 것’ ‘학부모 모임에는 빠지지 말고 참석할 것’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관심을 둘 것’ 등 보호자로서 엄마가 할 일 뿐 아니라 ‘피온이 열살이 되었을 때 욕실에 잠금장치를 달아준다면 피온이 무척 고마워할 것’이라며 혹시라도 아빠가 놓칠 수 있는 부분도 세심하게 배려했다.
이밖에도 ‘매년 자신의 생일은 물론 딸의 생일과 크리스마스·결혼기념일에는 자신의 무덤에 꽃을 가져다 주기를 잊지 말 것이며 물론 그 사이 사이 꽃을 갖다주어도 무방하다’는 애교섞인 충고도 들어 있다. 남편에게는 ‘내가 죽은 후에도 내 사진을 치우지 말고 피온을 위해 잘 보관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이 지침서를 적어 내려갔지만 헬렌은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남긴 “피온을 위해서 피온의 대부와 친구들, 특히 부모님을 자주 만나세요. 그러지 않으면 내가 귀신이 돼서 밤마다 찾아와 괴롭힐 거예요”라는 농담으로 지침서를 마무리했다.
남편 안소니 하콤은 “‘아이가 냄새나지 않게 이틀에 한번은 머리를 감기고 목욕을 시켜라’라고 적는 대신 ‘나는 내 아이가 냄새를 풍기며 다니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평소 말투 그대로 쓴 이 지침서를 읽을 때마다 그녀가 항상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고 말했다.
<런던/정수진통신원 jungsu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