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國共合作’… 중국·대만 정상회담 가능성 주목
지난 4월 29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 1층 로비에서 긴장한 듯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한 외빈이 대회당에 들어서자마자 “먼길을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라며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는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한 롄잔 대만 국민당 주석, 세계 주요 언론들이 ‘60년 만의 3차 국공합작(國共合作)’이라고 이름 붙인 역사적 순간이었다.
롄 주석은 5월 3일 8일간의 중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대만으로 돌아갔지만 이틀 뒤인 5월 5일 다시 쑹추위 대만 친민당 주석이 대륙 방문에 나섰고 대만 분리주의자인 천수이볜 대만 총통과 후진타오 주석의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양안(兩岸)으로 불리는 대만해협에 반세기 만에 최대 ‘격랑’이 일고 있는 것이다.
![[월드리포트]대만해협 화해의 물꼬](https://images.khan.co.kr/nm/624/e3-1.jpg)
뜻밖의 ‘3차 국공합작’ 최근 몇년 새 양안관계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올 들어서도 지난 3월 14일 중국이 반국가분열법을 통과시키며 대만을 압박했고 이에 반발한 대만에서는 같은 달 26일 대규모 반중시위가 벌어졌다.
그렇다면 무엇이 ‘3차 국공합작’을 이끌어냈을까. 몇가지 변수를 들 수 있다. 첫번째는 동북아시아의 미묘한 역학관계다. 2004년 안보협의위원회를 통해 처음 대만 문제를 공식 거론한 미국과 일본은 지난 2월 워싱턴에서 외무·국방장관의 2+2 회담을 갖고 대만 문제에 간섭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밝혔다. 대만 통일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중국 공산당은 이같은 움직임에 충격을 받았고 뒤이어 국공합작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공산당과 함께 ‘하나의 중국’을 지향하는 대만 야당 국민당을 파트너로 선택한 것이다.
롄잔 주석에게도 국공합작은 뿌리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이었다. 최소한 국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뉴스메이커가 되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다면 개인적 업적으로 남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민진당을 이끄는 천수이볜 총통에게 두번이나 대선에서 패해 오는 연말에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확실한 이벤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롄잔 주석은 4월 26일 대만의 독립추진단체들로부터 “중국 공산당과 손잡고 대만을 팔아넘기려는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으며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출국했다.
이와 함께 친여 사업가로 알려진 대만의 유력인사 쑤웬룽이 최근 은퇴하며 ‘하나의 중국’을 강조한 점, 양안의 경제통합을 강렬히 원하는 대만 경제, 그리고 정치적 안정을 희구하는 대만 민심 등도 배경으로 꼽을 수 있다. 일본이 왜곡 역사교과서를 승인함으로써 중국과 대만의 공적(公敵)으로 대두된 점도 시점상 절묘했다.
긍정적 기류 국민·공산 두 당이 군벌과 제국주의 열강에 맞서기 위해 만났던 1924년의 1차 국공합작, 중·일전쟁을 계기로 일본 제국주의에 함께 맞섰던 1937년의 2차 국공합작만큼이나 이번 3번째 국공합작도 민심을 등에 업고 있다.
대만 주요 신문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만인 60%가 후 주석과 롄잔 주석의 회담이 양안 긴장해소에 기여했다고 응답했다. 일간 애플 데일리 조사에서는 응답자 50%가 대만 정부는 이번 회담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시보 조사에서도 56%가 베이징 회담 결과에 만족을 표시했다.
여기에는 ▲양안 적대 청산 ▲대화 회복 ▲경제협력 교류 등 국-공 5개 합의사항 이외에 중국 당국이 롄잔 주석의 방중에 대한 예우로 안겨준 ▲본토인의 대만 여행 규제완화 ▲대만산 농산물 무관세 확대 ▲판다곰 한쌍 기증 등 푸짐한 선물이 한몫 했다.
집권당인 대만 민진당은 베이징 합의가 도출된 지난달 29일만 해도 ‘(국민당이) 중국의 통일전선전술에 놀아난 것’이라며 강력 비판했지만 이같은 민심을 간파한 뒤 변화조짐을 보이고 있다.
천수이볜 총통은 5월 1일 “중국 당국이 어떤 개인이나 정당을 선호하든지 결국은 타이완 정부, 집권당 지도자와 교섭해야 한다”며 쑹 주석을 통해 후진타오 주석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2일에도 “양안의 대화와 협상의 문은 영원히 열려 있다”며 중국과 대화를 희망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대만을 통해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 역시 양안 정상회담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애덤 어럴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29일 “중국은 천수이볜 총통과도 대화해야 한다”고 촉구한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후진타오 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 제4대 지도부도 강경 일변도로 치달리던 전임 장쩌민 주석 세대에 비해 대만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한결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월드리포트]대만해협 화해의 물꼬](https://images.khan.co.kr/nm/624/e3-2.jpg)
만만찮은 장애물 그러나 넘고 건너야 할 산과 골도 적지 않다. 중국이 천 총통과 직접 만나기보다는 롄잔 주석 등 야당 쪽에 힘을 실어줘 천 총통을 흔들고 압박할 확률이 높다는 관측이다. 적을 통해 적을 제압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이다.
중국은 실제 지난 3일, 천 총통의 회담제의에 민진당이 정강에서 대만독립 조항을 삭제할 때까지는 회담을 원치 않는다며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왕자이시 중국 공산당 대만사무판공실 부주임은 이날 롄잔 국민당 주석 귀국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천 총통 정부는 먼저 1992년 대만과 중국 간에 공동선언된 ‘하나의 중국’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 총통을 독립국가 수반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개별 정당의 리더 자격으로만 상대하겠다는 심사를 드러낸 것이다.
물론 천 총통은 정부 대 정부 차원의 협상과 대화라야 중국을 만나겠다는 지금까지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천 총통과 함께 대만독립을 추진하는 세력을 달래는 문제도 남아 있다. 리덩후이 전 총통은 천 총통이 롄잔 주석과 쑹 주석의 방중에 적절한 공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결국 쑹 주석 방중 등에 대만 민심이 향후 어떻게 반응하느냐, 그리고 중국 정부가 천 총통을 얼마나 ‘대우’해주느냐, 미국이 중국을 어느 정도 자극하느냐 등에 따라 양안 정상회담 성사 여부가 달린 것으로 점쳐진다.
<국제부/이상연기자 lsy7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