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참회 ‘사랑의 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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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민간의료진, 천연가스 약탈해오던 동티모르에서 자원봉사 활동

[월드리포트]과거사 참회 ‘사랑의 의술’

2002년 5월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동티모르는 근해에 약 130억달러어치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다. 이를 노린 주변 강대국과의 싸움으로 국토는 황폐해지고, 지금까지도 기근으로 고통받는 것이다. 특히 호주는 동티모르가 인도네시아 식민지로 있을 때 맺은 조약을 근거로 이 천연가스를 오랫동안 정식(?)으로 약탈해 국제사회로부터 큰 비난을 받아왔다. 즉 정부는 병을 주고 민간에서는 약을 주는 꼴이다.

‘사랑의 의술’을 베푸는 호주의 의료진은 현업에서 휴가를 내고, 자비를 들여 참가한 순수한 ‘자원 봉사자’들이다. 이들은 외과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안과의사까지 포함된 전문 의료팀을 구성, 각종 전문 의료장비들을 이용해 동티모르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천명의 동티모르 어린이가 안과 수술을 통해 시력이 회복되었다.

올해 10살의 마리아노 아마랄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 호주 의사의 도움으로 광명을 되찾았다. 자신의 아들이 호주 의사의 도움으로 시력을 되찾는 것을 옆에서 지켜 본 아버지 실베르토는 눈물을 흘리며 호주 의사들에게 고마워했다.

수천명 안과수술로 시력 회복

외과의사 존 키어니의 기억에 남아 있는 환자는 파푸아 뉴기니에서 눈수술을 하기 위해 동티모르에 온 36살의 남자다. 그는 수술 후 시력을 회복해 자기 아이의 얼굴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키어니는 “그가 아이를 보고 미소짓던 얼굴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동티모르 병원에는 과거 식민지 시절 인도네시아 군에 의해 장비가 파괴되거나 약탈되어 지금은 가장 큰 병원에도 수술용 의료 현미경 하나 없는 실정이다. 동티모르에서 행해지는 모든 수술 장비는 의료진과 함께 호주에서 보낸 것으로 그 비용은 자선기관인 ‘AusAid’와 일반 호주 시민의 기부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호주 의사들의 국경을 떠난 사랑의 의료봉사활동인 ‘동티모르 시력찾기 운동’은 5년 전인 2000년부터 이뤄진 것으로, 다윈에서 호주 애보리진들의 눈수술을 무료로 해주고 있는 의사 니틴 버마가 시작한 일이다.

니틴 버마 박사는 처음에 WHO(세계보건기구)의 소개로 동티모르의 의료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는 동티모르의 의료 실태를 본 후 곧바로 국제 적십자사에 도움을 구했다. 그리고 동티모르에서 단기간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집하며 호주 기업들에는 동티모르의 의료활동을 지원해줄 기부금을 요청했다. 처음에는 약 100명의 지원자를 기대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원자가 넘쳐났다. 그는 “지금은 약 200명의 의료진이 매년 동티모르를 방문한다”고 전했다.

이들의 의료 활동에는 호주 왕립 외과대학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현재 눈수술은 물론 피부암 수술, 노인들의 백내장 수술도 무료로 해준다. 기부금을 제공하겠다는 호주의 민간 단체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시드니/김경옥통신원 kelsy0312202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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