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맡긴 여권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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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이민부에 접수한 외국인 여권서류 행방불명

뉴질랜드 이민서비스는 이민부 산하의 정부기관으로 외국인 방문객에 대한 비자 및 체류허가 발급을 전담하는 정부기관이다. 단순 관광으로 뉴질랜드를 방문해서 3개월 미만 체류하다가 가는 한국인은 뉴질랜드 이민서비스를 상대할 일이 없다. 그러나 체류기간을 연장하려는 사람, 관광하러 왔다가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 이곳에서 취직이 된 사람은 다르다. 체류허가 변경 신청서를 작성해서 여권과 함께 뉴질랜드 이민서비스에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뉴질랜드 이민서비스는 전국의 주요 도시에 대민창구가 있다. 그중 제일 바쁘고 붐비는 것이 오클랜드 시내에 있는 오클랜드 지점이다. 업무를 보려는 사람은 새벽부터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은 다음에 대기실에 앉아서 몇시간씩 기다리거나, 아니면 대강 눈치를 봐서 자기 순서가 늦춰질 것 같으면 다른 일을 보다가 오후에 다시 와서 기다린다.

이런 불편 때문에 이민성에서 약간의 친절을 베푸는 마음으로 고안해놓은 것이 접수함이다. 서류 준비가 완벽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신청자는 구비서류와 여권을 봉투에 넣어서 던져놓고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매일 저녁 접수함에 든 서류를 수거해서 자기들이 처리한 다음에 그 결과는 우편으로 보내주도록 되어 있다.

뉴질랜드는 국가 청렴도가 세계 2, 3위를 다투는 나라다. 이렇게 청렴하기로 유명한 나라의 이민서비스에서 관리하는 접수함이니 한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에서 온 신청자들이 의심 없이 접수함을 이용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접수함에 넣어둔 여권이 없어졌다. 작년 2월 27일에 접수함에 떨어뜨린 외국인들의 여권이, 그것도 무려 44개나…. 뉴질랜드 이민서비스에서는 작년 3월 11일에야 이 사실을 확인했다. 아마 신청서를 제출했던 사람들이 진행상태를 물어 보면서 알게 된 것 같다. 여권이 없어진 사실을 알게 된 이민서비스는 그 사실을 바로 경찰에 알리지 않고, 두달 동안이나 쉬쉬했다.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자체조사로 해결하려던 두달 동안의 자체조사가 무위로 끝나자 할 수 없이 경찰에 알렸지만 1년이 넘은 지금까지 범인은 잡지 못했고, 사라진 여권도 찾지 못했다.

사건발생 1년 만에 밝혀져

한 국회의원의 폭로로 1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 사실이 밝혀졌는데, 보고에 의하면 뉴질랜드 이민서비스는 그렇게 접수된 신청들에 대한 접수대장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국회에서 심각하게 추궁을 당한 뒤에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보완 조치를 취했다고 이민부 장관은 답변했지만, 여권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어떤 보상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잃어버린 44개는 중국, 대한민국, 홍콩, 남아프리카, 캄보디아, 러시아, 말레이시아, 영국인의 여권이다.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체포를 하지 못했지만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던 사람은 당시에 이민서비스에 계약직으로 고용되었던 여성. 경찰은 그 여성이 도박벽이 있으며 범죄의 동기는 돈이었던 것 같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수색영장을 받아 그녀의 집을 뒤지고도 아무런 물증을 발견하지 못한 경찰은 그 정도로 수사를 마무리지어야 했다. 없어진 여권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갔는지, 국제 밀입국 조직에서 사들였는지….

앞으로 뉴질랜드에서 체류허가 조건을 바꾸려는 이는 새벽부터 이민서비스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릴 것인지, 잃어버릴 위험을 무릅쓰고 여권을 접수함에 넣어놓고 갈 것인지를 두고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오클랜드(뉴질랜드)/권태욱통신원 twkw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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