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쓴소리 작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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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사회 비판자 역할 자처한 톰슨 자살로 생 마감


기자의 주관적이며 참여적인 보도를 강조하는 ‘곤조(gonzo) 저널리즘‘으로 유명한 헌터 S. 톰슨(67)이 지난 2월 미국 콜로라도주 애스펀 근처 자택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반체제 문화의 영웅으로 군림하던 톰슨은 특유의 진실 추구 방법으로 미국사회의 모순을 그려 그를 흠모하는 작가와 팬, 그리고 언론계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헤밍웨이의 소설을 직접 타자하면서 그의 문체를 이해하려 했던 그는 동료작가 게이 탤리즈, 톰 울프와 더불어 1960년대에 주관적 기사 보도 양식을 개척한 문학계의 3인방으로 꼽혀 왔다.


주관적 보도 ‘곤조 저널리즘‘ 개척자

그의 초창기 작품은 여러 면에서 오늘날의 블로거(Blogger: 뉴스와 개인적 견해 및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자칭 시사해설자)를 반영한다. 블로거처럼 톰슨은 기자 출신 작가로서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미국사회를 그려나갔다.

그의 작품세계의 주제는 마약과 술의 영향으로 가득 채워진 익살과 권위와의 충돌. 1971년작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공포와 혐오‘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오토바이 경주를 취재하는 동안 본인이 직접 겪은 마약 환각으로 인한 재난을 다룬 반(半)실화적 소설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으며, 98년 조니 뎁이 출연한 동명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권력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72년의 미국 대통령선거를 다룬 ‘선거유세에 관한 공포와 혐오‘에서도 잘 나타난다. 여기서 그는 닉슨 전 대통령을 “엉큼하고 타락한 구제불능의 잔학함을 가진 미국인“이라고 쏘아붙였다. 최신 저서인 ‘공포의 왕국‘에서는 현 부시 정권의 관료들을 “인종차별주의자에 선동자이며, 소위 쿠 클럭스 클랜(the Ku Klux Klan)“이라 했는데, 이것이 가장 정중한 표현일 정도였다.

그가 장년기에 구축한 이미지-조종사용 안경을 쓰고 술-담배-마약을 즐기며 총기를 휴대하고 사는 독설적인 사회비평가-는 문자 그대로 만화 주인공이다. 실제 톰슨을 모델로 한 시사만화 ‘둔스베리‘에 ‘듀크 아저씨‘라는 인물이 있다.

그동안 톰슨은 등 수술과 다리골절로 많이 쇠약해졌다. 유족들도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기를 “순간적인 격한 감정이나 우울증“이 아니라 건강 악화로 보고 있다. 그는 유언장에 자신을 화장한 뒤 유해를 대포로 발사해달라고 부탁하는 글을 남겼다.

동료작가 탤리즈는 “톰슨은 너무나도 남을 즐겁게 하는 재능이 있지만, 불행하게도 현 도덕적 기준에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며 “남을 의식하지 않는 지나치게 솔직한 의사표현주의자라는 것이 내가 고인에 대해서 가장 그리워 하는 점“이라고 추모했다. 평생을 분노의 화신이 돼 미국사회의 부패와 위선에 경고 신호를 보내며 살다가 떠난 톰슨. 그의 노란 조종사 안경을 통해 세상보기에 익숙했던 미국인들은 오랫동안 그를 그리워할 듯하다.

유진(미국 오리건주)/조민경통신원 mcg9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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