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사! '보모게이트'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최근 사임한 데이빗 블런켓 전 내무부장관에 대한 이야기로 영국 전역이 시끄럽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으로 안내견을 동반한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인 데이빗 블런켓 전장관은 가난한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2001년 총선 후 내무부장관에 지명됐다. 취임 이후 국민 ID 카드제 도입, 각종 경범죄 처벌 강화 등 영국 내 정치-교육-사회적 이슈에서 강한 추진력을 보이면서 토니 블레어 정권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지난 11월 그의 탄탄한 정치경력에 빨간불이 켜졌다.

옛 애인 킴벌리 퀸의 보모인 리온시아 카살머가 영주권을 취득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언론이 제기한 것이다. '보모 게이트(Nanny Gate)'라 불리는 이번 사건이 보도되는 과정에서 블런켓 전장관과 킴벌리 퀸이 3년여 동안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사실도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킴벌리 퀸은 '더 스펙테이터(The Spectator Magazine)'의 발행인으로, 남성 잡지로 유명한 'GQ'의 발행인인 스티븐 퀸이 그녀의 남편이다. 그러나 출판계의 파워 커플로 이름을 날리는 부부가 이번 사건에 연관됐다는 사실은 영국 내에서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부부 사이에서 탄생한 첫째아이도 블런켓 전장관의 아이일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지만 남편이 아내를 무조건 용서하겠다고 밝히면서 쉽게 진화됐다.

하지만 보모가 영주권을 얻을 수 있도록 블런켓 전장관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은 갈수록 증폭됐다. 우리나라 기준에 맞춰서 본다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지만 사생활보다는 직권남용이 국민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힌다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사고가 작용한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보모 카살머가 처음 영주권을 신청한 것은 2003년 3월로 당시 그녀는 노동허가서를 취득한 후 4년이 지나야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카살머를 고용하고 있던 퀸이 블런켓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 결과 일반적인 경우보다 120일여나 빠른 52일 만에 영주권 신청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지난 3년간 부적절한 관계 유지

블런켓 전장관은 시종일관 개입설을 부인했지만 지난 12월 15일 전격 사임했다.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후에 나온 '보모 게이트' 조사 보고서는 "블런켓 전장관이 카살머가 영주권을 취득하는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나 정황일 뿐 명확한 물증을 찾지 못했다"는 최종 결론을 내놓았다. 결국 유죄냐 무죄냐에 대한 최종판단을 국민들의 몫으로 돌리고 있는 셈인데 우리나라의 각종 '게이트' 수사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아 실소를 자아낸다.

한편 BBC나 '스카이 뉴스'를 비롯한 미디어들은 블런켓의 사임이 옳은 선택이었는지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주목된다. 현재 "직권남용이 명확히 증명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름대로 정치력과 행정력을 보여준 장관이 사임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의견과 "공인으로서 사적인 문제에 공적인 지위를 이용해 개입한 것에 책임을 지는 것은 마땅하며 나아가 토니 블레어 총리도 사임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커뮤니티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노동당의 지지도는 39%로 34%의 보수당을 여전히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보모 게이트'가 정국의 흐름을 바꿀 만큼 큰 사건이 되지는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런던|정수진 통신원  jungsujin@hotmail.com

월드리포트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