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와 요가, 명상의 나라 인도가 최근 철부지 고등학생들의 포르노 동영상 유포사건과 잇단 여성 동성애 파문으로 떠들썩하다.
첫번째 사건의 발단은 지난 10월 인도 델리 남부의 한 명문교에서 발생했다. 이 학교 11학년생(17세)인 한 남학생이 사귀던 동급 여학생(16)으로부터 오럴 섹스를 받는 장면을 '순전히 재미삼아' 자신의 카메라폰으로 찍었다가 유포시킨 것이다.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알려진 이 남학생과 퇴역군인의 딸인 여학생은 카메라폰으로 촬영할 때까지 철부지 연인 사이였지만 촬영 며칠 뒤 여학생의 결별선언으로 헤어지면서 원수 사이로 돌변했다. 여자친구의 배신에 화가 난 남학생은 복수 차원에서 포르노 동영상을 친구들에게 팔기 시작했고 2분37초짜리 이 동영상은 델리는 물론 인도 전역과 해외로까지 퍼져나갔다.
휴대폰과 인터넷 타고 확산
같은 학교 학생들은 문제의 남학생이 이 동영상을 한번 전송하는 데 100루피(약 2,700원)씩 받고 동급생 50여명에게 팔았다고 말했다. 또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남학생은 동영상 판매로 상당한 용돈을 벌었다고도 털어놨다.
이 학교 남학생 친구 중 한명은 현지 '인디아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그 아이들은 카메라로 성행위 장면을 찍으면서도 서로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며 남학생이 여학생 몰래 찍은 것은 아니라고 남학생을 변호했다.
과거 한국의 'O양 비디오'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의 동영상은 휴대폰과 인터넷을 타고 삽시간에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베이'가 지난 8월 5천만달러를 주고 인수한 인도의 대표적인 온라인 경매사이트 '바지닷컴(Baazee.com)'에도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사건이 언론보도를 타면서 경찰 수사도 시작됐다. 인도 경찰은 지난 12월 14일 인도 명문 'IIT 카라구퍼 대학' 엔지니어 전공 4학년생인 라비 라즈(23)를 음란물 판매혐의로 체포한 데 이어 처음 여자친구와의 성행위를 찍은 남학생과 돈을 받고 다른 이들에게 동영상을 팔았던 또다른 남학생 2명도 잇따라 검거했다.
경찰은 라즈가 바지닷컴에 동영상을 올려 다운로드 한번에 125루피씩 받고 모두 8명에게 팔았으며 온라인으로 판매 대금을 송금받았다고 밝혔다. 지방관리의 아들인 라즈는 이전에도 앨리스라는 가명으로 포르노물을 판매한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이 확산되자 불똥을 피하기 위해 가족들과 네팔로 순례여행을 떠났던 문제의 남학생은 현재 학교에서 퇴학당했고 경찰에 자진출두한 뒤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락되는 듯했던 사건은 경찰이 12월 19일 바지닷컴 사장까지 구속하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바지닷컴 사장 구속이 미국과 인도 양국간의 외교문제로 비화한 것이다.
인도 경찰은 "바지닷컴이 사이트 관리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바람에 음란물 판매가 근절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 회사 아비나스 바자즈 사장의 책임을 묻고 있다. 하지만 회사측은 성명을 통해 "해당 음란물은 직원들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경매된 것"이라고 강조하고 "특히 그동안 전적으로 협조해온 회사 사장을 구속한 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인도 태생이지만 하버드대 MBA 출신이고 미국 시민권자인 바자즈 사장의 구속은 뉴델리 주재 미국 대사관을 통해 즉각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에게 보고됐다. 파월 장관은 그가 구속된 당일 사태의 추이를 지켜본 데 이어 다음날 아침 참모회의 석상에서도 사건의 진전상황을 점검했다. 미국 정부의 실세로 차기 국무장관 지명자인 콘돌리자 라이스 역시 이와 관련해 인도 정부에 항의전화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인도 외무부는 공식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강경 입장을 고수하던 인도 고등법원도 외교마찰을 의식한 듯 한발 물러나 20만루피(약 540만원)를 기탁하는 조건으로 바자즈의 보석을 허가했다. 하지만 인도 야당과 사회단체 등은 미국의 내정간섭을 비난하고 나서는 등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는 상태다.
동성애 결혼 마을서 추방당해
사건이 확대된 직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인도에는 음란물 유포를 막기 위해 2000년 제정된 '정보기술법'이 있지만 비슷한 사건이 재발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기술(IT) 강국인 인도에서는 이미 4500만대의 휴대폰이 있고 1년에 휴대폰 숫자가 2배씩 늘어날 만큼 폭증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신문은 '정보기술법'도 음란물 유포와 판매는 범죄로 처벌하지만 제작과 소지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는다고 허점을 지적했다.
이 사건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영국 일간 '스코틀랜드 온 선데이'는 12월 20일 핍박받는 인도 동성애 여성들의 사례를 특집기사로 게재해 또다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신문에 따르면 현재 북인도 비하르주(州) 한 교도소에는 푸자 싱이라는 젊은 미망인이 수감돼 있다. 푸자 싱의 죄목은 동성애와 불법결혼이다. 푸자는 동성애가 인도에서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최근 인근 마을의 19세 처녀 사리타와 동거하기 위해 함께 야반도주한 뒤 다른 마을 사원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하지만 현지 경찰은 어렵지 않게 '남편과 아내'로 행복하게 살고 있던 두 여인을 찾아냈고 이들의 도피행각은 결국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북부 펀자브주에서는 이달 초 레즈비언인 라주 싱(25)과 말라 카우르(18)라는 젊은 여자 2명이 결혼 사실을 발표해 지역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두 사람은 가문에서 파문당했고 살던 마을에서도 쫓겨났다. 라주의 부친 타르셈 싱이 두 사람을 처벌해달라고 경찰에 신고한 탓에 이들은 아슬아슬한 도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레즈비언을 소재로 한 볼리우드(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 영화 '여자 친구(Girlfriend)'가 뭄바이에서 개봉됐으나 힌두교도들이 격렬히 반발하는 바람에 경찰이 영화관을 24시간 경호하는 해프닝까지 빚어졌다. 이 영화를 제작한 카란 라즈단 감독은 "시위대가 극장 바깥에서 포스터를 찢고 화형식을 벌였다"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여성단체 '산기니 트러스트'의 직원인 베투 싱은 인도에도 남녀 동성애자가 있지만 특히 여자가 남자보다 더욱 핍박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매체에서도 키스 사진이 실리지 않을 만큼 보수적인 인도의 여성들은 밤중에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심지어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자신의 성 정체성을 털어놓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에이즈 후원단체인 'NAZ재단'의 안잘리 고팔렌은 "인도 여성들은 인간이기에 앞서 아내와 어머니, 자매로 간주되고 있다"며 '동성애 문제로 자살하는 젊은 여성들도 적지 않다"고 실상을 고발했다.
이상연[국제부 기자] lsy7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