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용서하지 않는 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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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8개월 된 아내와 뱃속의 태아를 살해해 지난 1년8개월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스콧 피터슨(30) 살인사건이 결국 배심원들의 사형권고로 막을 내렸다. 미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시 법정에 모인 배심원단(남녀 각 6명씩 모두 12명)은 지난 12월 13일 만장일치로 피터슨에 대한 사형을 권고했다.

제2의 O.J 심슨이라 할 수 있는 피터슨에게 사면없는 종신형이 적당할지, 아니면 사형이 적당할지 무려 사흘간 격론을 벌인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이날 사건당사자인 피터슨은 사형결정에 별다른 감정변화를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발단 사건은 2년 전인 2002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발생했다. 캘리포니아주 중부 모데스토 라 로마지역에 살고 있던 명랑쾌활한 성격의 임시교사인 레이시 피터슨(27)이 실종된 것이다. 당시 그녀는 한 달 뒤에 첫째 아이를 출산할 만삭의 몸이었고 실종과 관련해 주위 사람들에게 아무런 단서를 남기지 않았다.

남편인 피터슨은 사건 당일인 12월 24일 아침 집에서 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버클레이로 혼자 낚시여행을 떠났으며 오전 9시 30분 아내를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밤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는 모바일폰과 지갑도 집에 두고 사라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아내 레이시가 인근 쇼핑센터에서 장을 보고 기르던 리트리버종 개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기로 돼 있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건이 보도되자 친지뿐 아니라 자원봉사자 수천명이 나서 모데스트와 캘리포니아 중부 전역에 실종전단을 붙이고 수색에 나섰다. 실종 며칠 만에 포상금은 50만달러(5억5천만원)까지 뛰었고 사람들은 헬기, 보트, 말 등을 동원해 호수, 숲속까지 이잡듯이 훑었지만 레이시의 행방은 묘현했다.   

드러난 범행 사건 전날(12월 23일) 밤 딸과 전화통화를 했던 레이시 어머니 샤론 로차는 딸이 얼마나 아기를 원했는지 결혼생활이 얼마나 행복하다고 말했는지 설명하며 가출 가능성을 일축했다. 실제 피터슨과 레이시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코너'라는 이름까지 지어놓았다. 피터슨이 용의선상에 오르자 사건 초기 TV 등에 출연한 피터슨과 레이시 부모 등은 "그 아이들(피터슨 부부)은 결혼 5년째를 맞았지만 신혼부부처럼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면서 "피터슨이 사건에 관련됐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경찰은 처음부터 남편인 피터슨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먼저 경찰 수색견팀은 현장조사를 통해 레이시가 걸어서 집을 나간 게 아니라 차를 타고 떠났다는 것을 알아냈다. 피터슨은 낚시를 했다고 했지만 낚시터 등에서 그를 보았다는 이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 통화기록 등을 검색한 끝에 피터슨이 마사지사 에임버 프레이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도 포착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이웃사람이 그날 아침 피터슨이 트럭에 뭔가 싣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고 레이시 사망시 피터슨이 25만달러 규모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사실도 드러났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피터슨은 ABC방송 다이앤 소이어와 인터뷰하며 "레이시도 정부(情婦)인 프레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며 자신의 외도가 두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또 보험 역시 사건 발생 2년 전에 부부가 합의하에 들었던 것이라고 항변했다.   

엽기적 범죄 미궁에 빠지는 듯했던 사건은 이듬해인 지난해 4월 리치몬드 인근 샌프란시스코 해변에 다 자란 상태인 태아의 사체와 한 젊은 여자의 사체가 떠오르면서 전기를 맞았다. DNA 조사결과 레이시와 그녀의 아들 코너였다. 전문가들은 레이시 사체가 부패하면서 발생한 가스로 인해 아기 사체가 모체에서 분리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사체 발견 직후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 있던 스콧 피터슨을 긴급체포했고 그의 집에서 마약 등 여러 증거를 찾아냈다. 결국 피터슨은 범죄를 시인했고 아내 레이시와 아기를 질식시킨 뒤 미리 준비한 시멘트 닻에 묶어 바닷물 속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피터슨의 범행 동기에 대해 애인과의 전화 통화내용 등을 근거로, 아내와 아이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부담을 지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독신으로 살려는 욕구였다고 말했다.

현재 32살인 스콧은 비료 세일즈맨이었다. 스콧의 변호인들은 그의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사형보다는 종신형을 권고해줄 것을 배심원들에게 호소했었다. 피터슨의 변호사인 마크 게러거스는 배심원들에게 "당신들의 결정을 비판하지 않는다"면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이 사람도 가치를 지닌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러거스는 사형이 언도된다면 불복해 항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해리스 검사는 종신형이 사형보다 심한 형벌이라는 주장을 일축하면서 "그가 독방에 앉아 책을 읽고 편지를 쓴다면 여전히 삶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스 검사는 이어 다른 사람들이 레이시와 그녀의 아기가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을 때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던 이 사람은 웃으면서 거짓말을 했다.... 정말 악랄한 괴물이다"고 말했다.

담당 알프레드 델루치 판사는 내년 2월 25일 최종 선고를 내린다. 그는 배심원들의 사형권고를 종신형으로 감형시킬 수 있지만 캘리포니아주에서 현실화될 확률은 극히 낮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델루치 판사가 배심원들의 사형권고를 받아들일 경우 피터슨은 아내와 아이의 사체가 발견된 샌프란시스코만이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주립교도소의 사형수 감방에 수감된다.

흥미로운 점은 스콧 피터슨이 사형을 선고받는다 해도 집행은 몇십년 후에야 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캘리포니아주 사형수 감방에는 남녀 650명이 사형을 기다리고 있고, 항소심을 시작하는 데만도 몇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주는 1978년 사형제도를 다시 도입했고 이후 지금까지 사형이 집행된 사람들은 10명에 불과하다. 최근의 사형집행은 2002년에 있었다.

한편 아내를 살해하는 남자의 심리와 관련해 미 워싱턴 포스트는 1997년 영화 [남자들 속에서]를 감독한 네일 라뷰트의 말을 인용했다. "남자들은 결혼 후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의 규칙이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느낌에 매료된다." 자신이 원했던 결혼이라 할지라도 이에 따른 책임감을 굴레라고 느낄 수 있으며 마음 속 깊은 한켠에는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잠재한다는 것이다.

이상연[국제부 기자] lsy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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