늬들이 '빌리어네어'를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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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현존하는 최고의 부자들은 하루하루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 매거진]은 최근 특집판에서 전세계에서 대략 600명 남짓한 10억달러(1조1천억원) 이상의 재산가 즉, 빌리어네어(Billionaires)들의 삶을 엿보았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꽃핀 지 100년도 더 지난 21세기에서도 '슈퍼 리치(the super-rich)'들이 보유한 거대한 부는 그 자체로 막강한 권력이며 세계와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빌리어네어의 삶 10억달러. 과연 10억달러의 구매력은 어느 정도일까. FT는 이를 다음과 같은 간단한 예로 설명하고 있다. 루이비통이 자랑하는 호박빛 프랑스 샴페인 크뤼그 그랑 쿠베(Krug Grande Cuvee)를 9백만병 살 수 있거나 아니면 알이 굵은 은회색빛 러시아산 최상급 벨루가 캐비어(철갑상어알) 500t을 구입할 수 있는 돈.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이런 비유도 가능하다. 가뭄으로 고통받는 지역에 신선한 우물 1백50만정(井)을 새로 파거나, 사하라사막 남부에 사는 헐벗은 아프리카 사람들 수억명을 1년간 먹여살릴 수 있다. 수백만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공장을 17만개 짓거나 저개발국가 어린이들을 위해 교과서 2억권을 찍을 수 있는 액수이기도 하다.

이 정도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사실 거의 모든 일을 마음먹은 대로, 원하는 대로 이루어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8세에 1백30억달러(약 15조원)의 거부를 쌓은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2002년 영국 명문 프로축구 클럽 '첼시'를 통째로 사들였다. 버진 애틀랜틱 항공이 속한 영국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이 캐리비안 군도(群島)를 재산목록에 올린 일도 좋은 사례다. 이들은 또한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미술-골동품 경매시장의 '큰손'이다. 약 6조원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럽의 미니 왕국 리히텐슈타인 왕자인 한스 아담스 2세는 지난 12월 10일 영국 런던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1726년산 이탈리아 장롱 한 점을 가구 사상 최고가인 4백억원에 낙찰받아 화제를 모았다.

FT 기자 토니 무어는 그러나 거대한 부가 내뿜는 가장 신비로운 힘은 초음속 스텔스 전폭기처럼 보통 사람의 눈에 띄지 않고 완벽하게 그들만의 별세계에서 존재하는 능력이라고 비유했다. 억만장자들은 줄을 서지 않으며 군중 속에 휩쓸리지 않는다. 단지 돈이 많은 부자(the very rich)들과 그들(the super rich)은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르다.

백만장자라면 비행기 1등석을 타고 전세계를 돌며 특급호텔 로열스위트룸에 머물고 최고급 프랑스산 요리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전용 요리사들과 비서진, 재무팀, 의료진을 이끌고 주방, 욕실, 회의실이 딸린 전용 제트기를 몰며 전세계를 누비지는 못한다. 빌리어네어들은 또한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움직인다. 그들이 머무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보통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a private village)'가 세워진다.

억만장자인 윌모트 시트웰 영국 투자은행 카제노브 회장은 "빌리어네어들이 가장 크고 비싸며 사치스런 것을 원할 것이라는 일반인의 고정관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만의 할 수 있는 것, 즉 완벽한 '꿈의 현실화'라는 귀띔이다.

상상해보자. 여름휴가 중 어느날 북아프리카 칼라하리사막 한가운데 누워 눈부신 별을 헤아리다 다음날 훌쩍 전용기를 타고 남아메리카 갈라파고스 푸른 바다에서 요트를 타고 바다낚시를 즐기는 여유를.

[월드리포트]늬들이 '빌리어네어'를 알아

빌리어네어의 힘 시체말로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거나 신(神)의 아주 특별한 은총이거나, 천재적 능력이거나 그 원인이 무엇이냐에 상관없이 일단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라서면 그들은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엄청난 돈은 단순히 무엇을 살 수 있는 능력, 구매력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또 그들이 속한 분야가 무엇이건 국적이 어디이건 간에 대부분의 빌리어네어들은 나라 안팎에서 '권력(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 중 가장 큰 부류는 인류를 신세계로 이끄는 신문명의 개척자들이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49세, 빌리어네어 순위 1위, 추정자산 4백66억달러)를 선두로, 인텔 공동창업자 고든 무어(75세, 5위, 38억달러), 애플 컴퓨터 창업자 스티브 잡스(49세, 6위, 26억달러), 온라인 서적사이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40세, 10위, 43억달러),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39세, 15위, 1백42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폴 앨런(51세, 18위, 2백억달러), 온라인 마켓인 e베이 창업자 피에르 오미드야르(37세, 20위, 1백4억달러) 등이 그들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컴퓨터 문명과 인터넷 세계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폭스TV 등 5개 대륙에 미디어 왕국을 건설한 루퍼트 머독(73세, 2위, 69억달러), 최고의 경제 뉴스서비스 블룸버그통신의 마이클 블룸버그(62세, 8위, 50억달러), CNN 창업자 테드 터너(66세, 9위, 19억달러) 등은 수십억 인류의 눈과 귀, 여론을 주무르는 거물들이다. 머독의 폭스TV가 ABC, NBC, CNN 등 미국 주요 방송사들을 제치고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재선에 기여한 것이나 최근 머독의 보수일간지 [뉴욕 선]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아들 비리를 폭로하며 아난 총장 흔들기에 나선 것은 이들의 힘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헤지펀드 제왕이라 불리는 조지 소로스(74세, 3위, 72억달러), 장기투자 귀재인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워렌 버핏(16위, 4백10억달러) 등은 말 그대로 타고난 '돈의 승부사'들이다. 이들의 위력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 말 한국, 태국, 러시아, 남미 등을 덮친 외환-금융위기 '악몽'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68세, 4위, 1백억달러), 태국 총리 탁신 시나와트라(55세, 21위, 14억달러) 등은 거대한 부를 발판삼아 한 나라의 최고권력까지 거머쥔 이들이다.

FT 수석 경제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역사를 돌아볼 때 인류 1천만명당 1명꼴로 존재하는 빌리어네어의 힘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대한 부(great wealth)는 늘 막강한 힘(great power)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인류 문명의 물꼬를 트는 원동력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상연[국제부 기자] lsy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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