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계를 보면 약 20년 후 한국은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고 한다. 자연히 낮아진 출산율과 더불어 노인 문제는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공자와 맹자를 숭상하던 시대에는 노인의 목소리가 큰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사실 평균수명이 짧았던 그 시대의 노인은 현재의 중년층 나이에 불과했다. 더욱이 농사의 비법을 노인이 독점하고 있는 농경사회였고, 반복적인 암기를 통해 중국의 문헌을 한자로 익히는 것이 고등교육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이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을 이겨내고 사회의 주도세력이 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산업사회, 정보지식사회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10대 사업가가 나올 정도로 나이와는 무관하게, 정보의 활용도에 따라서는 나이가 어린 사람들도 엄청난 사회적 경쟁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근래에 일어난 벤처기업의 붐도 젊은층이 주도했고, 사회 각 분야에서 그동안 나이 든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가 젊은이들의 활동무대가 되어버렸음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새로운 틀로 움직이는 사회에서는 노인들이 마치 정체성 위기를 겪는 청소년과 같이 '존재이유'에 대한 심각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사회통합적 측면에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위기상황의 실체이다.
그럼에도 이 상황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반적 인식은 노령화 사회의 문제가 남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조차 혼동하고 있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학문적 연구의 대상 정도에 그치고 있으며 실질적인 대책 수립 없이 우려의 목소리만 크다. 국가 차원의 심각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해법을 마련할 것인가? 최근 내한한 미국의 노인 전문가가 제안한 것처럼 정년 연장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대학을 막 나온 생기발랄한 젊은이도 취직이 안 되는 판에 무슨 나이 든 사람들의 정년을 연장해"라는 반론이 금방 나올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젊은이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오늘의 젊은이도 결국은 노인이 되며, 좋든 싫든 간에 그들이 직접 월급봉투에서 또는 세금을 통해 간접으로 부양해야 할 사람도 그들의 부모를 포함한 노인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복지예산이나 시설이 빈약한 국가에 태어난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우리의 업보가 될 것이다. 따라서 국가와 사회가 지혜를 발휘해 노인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내는 것이 오히려 더 경제적이고 덫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인들이 그동안 인생 경험을 통해 확보한 각종 지혜를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보지식사회에서 사실 지혜는 정보나 지식보다 한 수 위의 부가가치를 지닌다. 우리 나라를 휩싸고 있는 '노인경시' 풍조는 그런 면에서 국가자원의 낭비이다.
젊은이들만의 일방적인 양보와 희생이 필요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노인들도 이제는 젊은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배워야 한다. 유교사회의 수직적 관계를 향수에 젖어 맹목적으로 강요해보았자 설득력도 없고 통하지도 않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는 이제 우리의 현실이다. 눈을 가린다고 해서 지워버릴 수는 없다. 정치적인 체면을 차리기 위해서 약간의 입법조치, 다소의 정책적 배려를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노인 문제는 이미 우리 생활 안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시한폭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