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픈 사람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밥을 주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도, 옷도 배고픈 사람의 허기를 달래지는 못한다. 게다가 현실의 상황은 훨씬 더 복잡 다양하다. 허기가 달래진 사람들은 자기의 취향에 따라 식사를 하기를 원한다. 오래간만에 한식을 먹고자 하는 사람에게 양식을 사주는 경우, 비용은 비용대로 치르면서도 고객의 만족도는 높지 않게 된다.
이와같이 공급자가 수요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그 효과는 거의 없거나 반감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정책이나 정부의 혁신도 마찬가지이다. 정책이나 혁신의 고객이 누구인지를 알고, 고객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고 고객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고객의 눈에서 보아야 한다. 정책 효과나 생산성 측정도 고객의 입장에서 평가하여야 한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 대신 좋은 책을 열심히 권해놓고 스스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자위해서는 곤란하다.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 교장선생님의 고객들은 학생, 학부모, 교직원이 될 수 있다. 학생에게는 가고 싶은 학교를, 학부모에게는 보내고 싶은 학교를, 교직원에게는 근무하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 학부모, 교직원보다는 교육청의 공무원들을 고객으로 생각하면 생각이나 서비스의 내용과 지향하는 바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각자의 톱5 고객이 누구이고, 그 고객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이 혁신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한편, 그동안 공무원들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수요자의 요구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러한 노력이 공무원과 민간 부문의 돌발적인 유착관계 발생이나, 그러한 의심을 피하려는 것 때문에 추진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따라서 국민과 기업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투명하고 체계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그 방안은 시민사회를 담당하는 특정부서에 국한하기보다는 국민과 기업을 상대하는 정부의 모든 부서가 시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기적으로 전화를 통한 컨퍼런스 콜(conference call)을 통해 금융당국은 시장의 목소리를, 기업과 산업을 담당하는 부서는 해당 산업과 기업의 의견을 듣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모이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면서 투명하게 보다 현장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GE에서는 QMI(Quick Market Intelligence)라는 방식을 통해 수요자에게 가까이 다가 가고 현장의 정보를 즉시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또, 업무에 따라서는 정부 부처간 또는 부처 내 직원들이 고객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행정자치부의 인사나 조직을 담당하는 부서는 고객이 다른 부서의 공무원이 될 수 있다. 이들을 고객이라고 볼 것이냐 아니면, 통제 및 관리의 대상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행해지는 서비스가 달라진다. 한 부처의 장관이 총정원 범위 내에서 신축적으로 일이 많은 곳에 더 많은 인원을, 일이 적은 곳에는 더 적은 인원을 보낼 수 없는 현 제도는 통제 및 관리 시각에서 보는 대표적인 것이다. 그래서 항상 야근을 하는 곳은 정해져 있다.
혁신이 일회성으로 끝나느냐, 아니면 지속적인 형태로 되느냐는 고객에게 달려 있다. 고객이 편하고 원하고 혜택을 받으면 그 제도는 지속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이현승 [GE코리아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