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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 許, 許! 이제야 나섰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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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8일 증권가에 의미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LG로부터 떨어져나온 (주)GS홀딩스의 최대주주가 구본무 LG 회장 외 49명에서 허창수 LG건설 회장 외 47명으로 변경됐다는 공시가 있었던 것이다. GS그룹이 허씨 가문의 손으로 완전히 넘어간 셈이다. 이는 구씨 가문의 LG그룹과 허씨 가문의 GS그룹 간 법적 계열분리의 신호탄으로 평가되고 있다.

구씨와 허씨 양가는 지난 7월 1일, 57년간의 동업체제를 접고 '아름다운 이별'에 돌입했다. LG그룹의 지주회사인 (주)LG에서 에너지-유통업에 대한 출자 부문을 분할해 GS그룹의 지주회사인 (주)GS홀딩스로 출범시킨 것이다. (주)GS홀딩스에는 LG칼텍스정유-LG유통-LG홈쇼핑 등 9개사가 자회사로 편입됐다. 또 LG건설과 한무개발(인터컨티넨탈 호텔 운영)이 계열사로 들어왔다. LG그룹으로부터 분리된 GS그룹은 단숨에 재계 서열 7위(공기업과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에 올랐다.

LG-GS간 법적 계열분리 신호탄

GS그룹의 수장은 허창수 LG건설 회장이다. 지주회사인 (주)GS홀딩스의 회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오래 전부터 LG그룹에서 허씨 가문의 좌장 역할을 해왔기에 예정된 절차였다. 일각에서는 허씨 가문의 수장, 즉 GS그룹의 회장이 누가 될 것이냐에 대해 설왕설래했다. 사촌형인 허동수 LG칼텍스정유 회장의 활약이 워낙 눈부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허씨 가문의 실상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허창수 회장이 구씨 가문의 대표인 구본무 회장과 비견되는 허씨 가문의 수장자리에 오른 것이 9년 전인 1995년이다. 그때 LG그룹 회장에서 물러난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허씨 가문을 대표하는 허준구 당시 LG전선 회장이 자신과 동반 퇴임하자, 그 자리에 허준구 회장의 장남인 허창수 LG산전 부사장을 앉혔다. 3단계나 수직 상승한 파격 인사였다. 허씨 가문의 리더로서 구본무 회장과 쌍두마차를 이루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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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LG그룹의 2인자'였던 허창수 회장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그래서 '베일 속의 인물' '은둔의 경영자' '얼굴없는 경영자'로 통해왔다. LG그룹의 사사인 'LG 50년사'에도 허창수 회장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몇 장의 사진에서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 이유에 대해 LG 유원 부장은 "나서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행보를 이해하려면 LG 창업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경영은 구씨 집안이 알아서 잘 할 테니 돕는 일에만 충실하라."

해방 이듬해 젊은 사업가 구인회 창업회장에게 자본을 투자한 만석꾼 고(故) 허만정씨는 자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이 말은 허씨 일가에게는 '금과옥조'와 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래서 구씨 가문은 대개 사업확장, 공장건설 등 바깥일을 담당하면서 경영을 주도하고, 허씨 가문에서는 재무, 영업 등 안살림에 주력하는 역할 분담이 돼 있었다. 구자경 명예회장과 허준구 명예회장 간에 이어 구본무 회장과 허창수 회장 간에도 이러한 '룰'은 그대로 지켜졌다. 허씨 가문 사람들은 이처럼 앞에 나서지 않아 그 흔한 자서전이나 회고록 한 권 펴낸 사람이 없다.

이런 이유로 허창수 회장은 '무색의 행보'를 걸어왔다. 그저 LG그룹 내에 허씨 가문을 대표하는 2인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온 셈이다. 이에 따라 허 회장은 지금껏 뚜렷한 경영스타일을 내보인 적이 없다. 특히 나서기를 매우 꺼리는 탓에 불필요한 말과 행동을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 회장이 LG화학 부사장 시절 3년간 함께 일했던 LG화학 고위 관계자는 "과묵하지만 아랫사람에게는 자상하고 격려를 잘 해주는 편이었다"고 회고했다.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챙기는 스타일이라는 얘기다. 허 회장은 또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LG건설 관계자는 "허 회장은 원칙주의자이며 정도 경영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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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동 LG강남타워로 집무실 옮겨

그러나 GS그룹의 수장이 된 상황에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일단 서경석 (주)GS홀딩스 사장에게는 대형 투자나 사업방향 등 큰 줄기 외에는 알아서 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뒤집으면 대형 투자나 사업방향을 철저하게 챙기겠다는 얘기다. 김성규 (주)GS홀딩스 상무는 "허 회장이 에너지-유통 등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적절하고 조화롭게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좀더 집중력 있고 세세하게 챙길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김 상무는 "허 회장이 세세한 것도 깊이 생각한다"고 말해 앞으로는 큰 줄기 외에도 작은 흐름까지 철두철미하게 경영해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현재 허 회장의 집무실은 LG트윈타워 동관 30층이다. 구본무 회장 등과 나눠서 쓰고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이별'로 허 회장은 8월 30일부터 집무실을 (주)GS홀딩스가 있는 서울 역삼동 LG강남타워로 옮긴다. LG강남타워는 앞으로 GS그룹의 사옥이 된다. 이 빌딩 23층은 허 회장 집무실 인테리어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 허 회장은 집무실을 옮긴 후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허창수는 어떤 사람?

LG 계열사 두루 거쳐 실무경험 '탄탄'

허창수 회장은 1948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경남중-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세인트루이스대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77년 LG그룹 기조실에 입사해 LG상사-LG화학-LG산전-LG전선 등 LG그룹 내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1995년 LG전선 회장으로 선임됐으며 2002년부터 LG건설 회장을 맡고 있다.

훤칠한 용모에 깔끔한 매너로 인해 '영국형 신사'로 불리기도 하는 허창수 회장은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알려져 있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전날 읽은 책의 내용에 대해 정리하고 난 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 운동량이 부족한 임원들에게 만보기를 직접 사서 나눠주며 운동을 권하는 자상한 면도 있다.

허 회장은 성격이 소탈하고 스스로 나서거나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을 세심하고 배려해주는 스타일이어서 주변 사람을 항상 편하게 하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허 회장과 함께 일해본 부하직원이나 그를 접해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허 회장에 대해 온화한 성품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LG 정상국 부사장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면서 "부하직원이나 비서들이 불필요한 긴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등산을 좋아해 안 가본 산이 없을 정도다. 그는 특히 등산할 때 옷을 여러 벌 가지고 가서 중간에 갈아 입는다. 허 회장은 축구에 대한 관심도 남달라, 1998년부터 안양LG축구단 구단주를 맡고 있다. (주)GS홀딩스 관계자는 "최근 'FC 서울'로 구단 명칭을 바꿔 서울 입성에 성공한 것도 허 회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골프는 80대 중반이며 자주 라운딩하는 편은 아니다. 술은 맥주를 좋아하고, 맥주를 마시면서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주량은 위스키 반 병 가량. 음식은 가리지 않지만 육류보다는 야채와 생선류를 좋아하는 편이다.

조완제 기자 jw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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