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계와 장관의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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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준비하는 사람은 씨앗을 뿌리고 10년을 내다보는 사람은 나무를 심고 100년 앞을 준비하자면 사람을 키운다는 얘기가 있다. 2세를 키우고 가르치는 일을 흔히 백년대계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2세 교육은 백년대계는커녕 십년대계라는 말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자주 바뀐다.

8월 말로 임기가 끝나는 유인종 서울시 교육감은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이 재직하는 8년 동안 교육부 장관이 11번이나 바뀌었다는 말로 우리 교육정책의 혼선을 비판했다. 8년 동안 11명이라면 백년대계를 책임진 교육부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이 1년도 안 된다는 얘기다. 새로 취임한 장관은 우선 전임자와는 뭔가 다르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또는 대통령이나 국민들에게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정책을 내어놓게 마련이다.

따라서 8년 동안 교육부 장관이 11번이나 바뀌었다는 것은 입시제도를 비롯한 교육정책이 그만큼 자주 바뀌었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5년마다 새 정권이 출범하면 그때마다 교육관련 위원회를 만들어 교육정책을 뜯어 고치는 것도 문제지만 장관이 바뀔 때마다 개혁한답시고 이것 저것 일선교육 현장을 뒤흔들어놓는 것도 나라의 백년대계를 흔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나라의 백년대계를 책임지는 교육부 장관이라고 해서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마르고 닳도록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새 정권이 출범하면 장관을 새로운 인물로 바꾸는 것은 책임정치를 위해서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교육정책처럼 전문성이 요구되고 정책과 행정의 일관성이 필요한 부서의 장관은 적어도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한다는 전통을 세울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교육장관이 바뀔 때마다 아침에 세운 교육정책이 백지화되고 입시제도가 춤추는 조령모개(朝令暮改)도 사라진다.

관료제도가 정착된 일본처럼 장관이 자주 바뀌어도 관료조직이 안정되어 있으면 개각 때마다 정책이 춤추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새로 부임한 장관이 맨 먼저 손대는 것은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를 통해 전임장관의 인맥을 정비하여 자기 사람을 심는 일이다. 물론 능력위주의 적재적소 인사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신임장관이 인사로 뭔가를 보여 주어야 장관의 권위도 서고 부처 장악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2001년인가, 중앙인사위원회가 중앙부처 실-구-과장급 공무원 1,84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들의 평균 재임기간이 1년 2개월 15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교육인적자원부나 재정경제부 등 전문성과 행정의 일관성이 요구되는 부처의 고위 공무원일수록 재임기간이 채 1년도 안 될 정도로 짧았다는 점이다. 장관도 나그네처럼 스쳐 지나가고 국장-과장도 과객처럼 들렀다 지나가고, 그래서 '터줏대감'도 없고 '지킴이'도 없는 관료조직에선 백년대계커녕 최소한의 행정일관성도 유지될 수가 없다.

1924년 연방수사국장에 올라 1972년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던 미국의 에드가 후버는 물론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그리고 27년 동안 국무원 총리를 했던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도 우리가 본받을 만한 경우는 아니다. 이렇게 되면 자칫 국정이 매너리즘에 빠지고 관료조직이 침체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너무 잦은 장관교체와 그에 따른 관료조직 흔들기는 국정의 시행착오와 함께 행정의 신뢰를 무너뜨리기 십상이다. 매화꽃 향기를 즐기려면 화분을 자주 갈면 안 된다. 매화가 잘 자라게 하려면 분갈이가 필요하지만 너무 자주 갈아주면 뿌리를 제대로 못 내리고 꽃도 피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8년 동안 교육부 장관이 11번이나 바뀌고 그때마다 입시제도가 달라지고 교육정책이 흔들렸다는 서울시 교육감의 통렬한 비판은 우리나라의 백년대계가 얼마나 허구에 찬 구호인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이유는 지난 50년 동안 밟아온 전철(前轍)을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할 것 같아서다.

이광훈〈경향신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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