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가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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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싸움을 건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승리하기 위해서. 승자가 갖는 이득은 싸움으로 소모하는 시간과 노력보다 훨씬 클 테니까.

올 봄 미국 코닥은 일본의 소니가 자사의 디지털 카메라 특허 기술을 침해했다고 고소했다. 소니는 이에 질세라 오히려 코닥이 자신들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맞고소로 대응했고 이는 곧 뜨거운 법정 분쟁으로 이어졌다. 그런가 하면 최근 검색 사이트인 구글과 야후 사이에 벌어진 '광고주 검색어 권리 입찰시스템 특허' 분쟁의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구글이 패소할 경우 야후에 수억 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할 형편이기 때문이다.

코닥과 소니의 싸움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왜 그토록 싸움에 몰두하는지를 알 수 있다. 올 들어 7천만대 규모가 예상되는 전 세계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이미 경쟁이 첨예해진 상태다. 경쟁이 심화되면 자연 가격인하와 수익 악화에 대한 부담이 뒤따르게 된다. 이러한 때 특허권 침해 보상과 로열티 지급 등 소송에서 승리한다면 수익 증대는 불 보듯 훤한 일이 될 것이다. 야후와 구글의 싸움도 그러하다. 야후가 구글을 상대로 3배수 손해배상을 요구했으니 승소한다면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벌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승자에게 주어지는 이익은 단지 그러한 수익만은 아니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2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한 소니를 향해 코닥이 법정 싸움을 펼치는 것은, 승패를 떠나 소송 그 자체만으로도 소니의 브랜드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 되는 것이다.

미국 세탁기 시장의 분쟁을 보면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세탁기 기업인 월풀(Whirlpool)은 미국에 출시한 LG전자의 '트롬' 등이 자사의 절전-절수 기능 등 몇 가지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미 연방 법원에 해당제품의 판매 금지와 회수, 특허침해에 따른 손실분 보상 등을 요구했다. 월풀은 세탁기 시장에서 세계 3위에 등극한 LG전자가 미국 시장에 침투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특허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미국 시장은 신뢰와 투명성이 중요해 특허소송이 걸렸다는 것만으로도 브랜드 가치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LG전자는 이에 맞고소로 대응했을 뿐 아니라 추후 월풀을 상대로 다른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IBM도 한국 PC 제조업체들이 저가로 미국 시장을 잠식하자, 이들이 IBM의 특허를 160여 건이나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특허청에 따르면 문제소지가 있는 특허는 한 건에 불과했고, 그것에 대해서만 특허료를 지불하는 선에서 협상은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160건의 특허를 조사하고 대응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고 국내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IBM은 특허를 보유한 덕분에 후발주자의 시장 진입을 늦추고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번 셈이다. 이렇게 특허는 기업들이 자기 시장을 지키고 후발 업체를 견제하는 수단이 된다. 또 소비자 쪽에서는 특허 소송을 먼저 제기하는 기업을 '원조'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니, 기술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표명하는 것이기도 한 특허 소송의 효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 듯싶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보유하는 일이 기업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개발한 기술을 '특허'로 만들고 적절히 활용하는 일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함을 말해주는 사례는 많다. 특허가 곧 경쟁력이다.

이유재〈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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