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이 된다. 중학교에서 대학 초년시절까지도 진행되는 청소년기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이다. 내가 누군지를 알기 위한 고민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어려움 사이에 끼어 오늘도 우리의 청소년들은 마음의 격동을 겪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격동과 혼돈은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같이 보인다.
청소년기에는 묘한 특징이 있다. 우선 청소년들은 세상을 흑과 백의 세계로 파악한다. 그들에게는 회색지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좋으면 완전히 좋고 나쁘면 완전히 나쁘기에 중간지대가 없다. 세상의 사물을 양극화시켜 파악하는 심리는 청소년의 마음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양극화되어 파악된 사물은 서로 융합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다. 타협하려는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스스로 그 자체를 심약하거나 성실하지 못한 증거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내 사전에 타협이란 없다!" 식의 인생관이 가능해진다.
세상을 양극화된 시각으로 보면 자연히 편을 가르게 된다. 나와 남, 내부와 외부, 가족과 타인, 좋은 편과 나쁜 편, 기성세대와 신세대, 보수와 진보 식의 명확한 구분을 짓고 그 구분을 통해 마음의 질서와 평온을 얻는다. 이러한 청소년식 집단주의는 여러 형태의 집단행동으로 나타난다. '왕따' 그리고 학교 폭력에서 고교야구와 같이 매우 경쟁적인 학교간 대항전으로까지 나타나기도 한다.
청소년은 이상주의자이다. 그리고 순혈주의에 매달린다. 그러니 혼탁한 세상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한다는 강박적 생각을 가진다. 우리가 그동안 겪어온 학생운동의 뿌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포장이 어떻든지간에 청소년 심리에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대한 부정과 새로운 가치의 추구는 청소년의 특징이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도 처음에는 부모를 닮으려고 노력하다가 어느 단계에 가면 부모와 달라지려고 애써서 독립적인 개체가 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자식과 부모 간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명제는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되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되살아난다. 청소년기의 자기정체성은 혼자만의 힘으로 잘 이루어진 것이기보다 부모를 부정함으로써 생겨난 상대적 의미의 정체성이니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세상을 보는 눈이 "이것 아니면 반드시 저것" 식으로 양극화되고 이상주의에 치우쳐 있으면 세상을 전체로 보기는 대단히 어렵다. 먼지가 있어야 빛이 있고 오물 속에도 푸른 숲을 가꾸는 자양분이 있음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청소년은 열정적이다. 자신이 흥미를 느끼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정신없이 몰두한다.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좌절될 기미가 보이면 극렬하게 상대를 공격하거나 아니면 모습을 감추고 숨어버린다. 청소년은 일단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천천히 시간을 두고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워한다.
청소년기는 자기 발견을 위한 여행과정이다. 그 길고 격동적인 여행의 동반자는 절대적 가치의 추구, 이상주의, 세상을 보는 양극화된 시각, 열정과 공격성, 예측 불허의 행동, 불안정한 기분 상태 등이다. 이러한 특성들이 적절한 좌절을 통해 현실감 있게 숙성되고 성인기로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청소년기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책임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기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해 장래를 준비하는 시기일 뿐이다. 그것이 오늘을 살며 나라를 걱정하는 우리 모두의 불행이라면 어떻게 현명하게 헤쳐나갈 것인가?
정도언〈서울의대 교수-정신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