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과 동남아, 홍콩은 물론이고, 중국대륙에서도 한류 (韓流)가 한창인 모양이다. 한국 연예인과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대만과 홍콩, 중국 대륙의 젊은이들을 보면 은근히 우리 연예인과 우리 대중 문화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우리가 선진국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도 또 다른 의미의 중국 붐인 한류(漢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너도나도 중국으로 중국으로 달려가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기업인은 기업인대로 새로운 투자와 활로를 찾아 중국으로 가고,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이런 저런 명분으로 중국을 방문, 한반도의 안정과 미래를 위해 한몫했음을 과시하려고 한다. 여기에 중국의 대학들은 그야말로 청운의 꿈을 안고 온 우리 나라 유학생들로 넘쳐 나고 있다.
최근의 통계가 이런 한국의 중국 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교역 규모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 2003년 말 현재 중국은 한국의 2대 교역 대상국이 되었다. 또한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1위 직접 투자 대상국이 되었고, 최대 수출 대상국이 되었다. 한국과 중국간의 인적 교류도 역시 폭증해서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우리 국민의 제1위 방문국이 되었다. 중국 자료를 보면 2003년 말 현재 중국 내 한국 유학생은 3만5천여 명으로, 전체 외국인 유학생의 45.5%를 차지해 일본과 미국에서 온 유학생을 제치고, 단연 중국 내 외국인 유학생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 붐은 지리적, 문화적, 경제적 제반요인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러나 탈냉전과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중국은 경제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안보적인 차원에서도 한국에 대단히 중요한 존재가 되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해서도 그렇고, 북한의 안정적 개혁과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서도 중국과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중국은 실용적인 경제 협력의 대상이라는 차원을 넘어 미래를 위한 동반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국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인식은 우리 국민들과 여론 주도층간에 나타나고 있는 중국에 대한 호감도와 기대감의 상승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미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앞으로 가장 중시해야 할 나라'로 꼽히고 있으며, 미국-일본-중국 등 세 나라에 대한 국가 호감도 조사에서도 호감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20세기가 한미 동맹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한중 협력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 그리고 평화 통일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중국에 대한 기대감에 대해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동안 도외시해왔던 부강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부강한 중국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회의 측면에 지나치게 매혹된 나머지, 우리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었던 중국과 한반도 간의 긴장과 갈등, 중국의 압박과 간섭을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면이 있다. 다행히 고구려사 논쟁은 우리 사회에서도 중국 기회론과 중국 위협론이 균형을 찾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중국은 경제적 차원에서도 우리 경제와 상호 보완적인 측면도 많지만, 동시에 경쟁적인 측면도 있다. 전략적으로도 현 단계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북한과의 공존을 위해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점에 이론이 없지만, 통일과정에 한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언제나 일치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협력의 동반자임과 동시에 경계 대상이란 점을 인식하고, 균세자강 (均勢自强)의 지혜를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미국 대신 중국이란 단순한 양자 택일의 접근보다는 미국과 중국을 활용하여 자강(自强)을 도모하는 성숙된 균형 감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진영〈고려대 정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