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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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한국사 미스터리

평생을 현장고고학자로 살아온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이런 이유로 고고학이 어려운 것임을 토로한다.

이렇게 어려운 고고학을 조 전 소장은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경향신문]에 1년간 연재되었던 '한국사 미스터리'를 수정-보완해 책으로 낸 것이다. [한국사 미스터리]에서 조 전 소장은 우리 역사의 의문점들을 속시원하게 밝혀낸다. 이 작업은 그가 30여 년간 현장에서 직접 발굴조사에 참여한 학자이기에 가능했다. 

유적발굴에서는 유적을 발굴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발굴과정도 신중히 해야 하며 그것을 보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심각하게 훼손되어가는 공주의 무령왕릉이 그 좋은 예이다.

1971년 7월 5일 '고대사의 블랙박스를 열었다'는 무령왕릉이 훼손된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취재경쟁 때문에 벌어진 졸속 발굴 때문이었다. 특종에 눈이 먼 기자들의 무분별한 '돌격'에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기자들을 '단속'하지 못한 발굴단에 그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령왕릉의 졸속 발굴에서 얻은 수확이 있다면 그 이후부터는 철저한 현장관리와 보도통제 속에서 발굴작업을 하는 '보안전통'이 생긴 것. 그러나 '보안전통'을 얻기 위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고고학책이면서 이 책이 흥미로운 까닭은 우선 발굴작업에서 얻은 유적을 통해 우리 역사의 미스터리를 콕콕 짚었기 때문이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17.5㎝ 목제남근은 무엇을 뜻할까. 남근숭배신앙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신라에서 근친혼과 사통-통정관계가 예사였다는 사실을 알면 출토된 목제남근은 여성들의 자위행위기구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백제의 700년 역사에서 우리가 배우고 기억한 시기는 겨우 200년간의 웅진(공주)-사비(부여) 시대이다. 그보다 2배 이상 많은 시기를 보낸 500년의 한성백제 시기는 거의 잊고 있다. 난개발공사 중 발견된 풍납토성은 500년 한성백제 시기의 위용을 증명한다.

미군 병사와 한국 처녀의 데이트가 없었다면 전곡리의 구석기 유적은 발견되지 못했을지 모르며 신문배달을 하는 고등학생과 역사를 전공한 지국장이 아니었다면 가야 시대의 함안 마갑총 역시 영영 묻혀 있었을지 모른다.

이처럼 이 책은 우연과 필연, 역사가 어울려 있다. 여기에 경향신문 문화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공저자 이기환이 각 꼭지마다 맛깔스러운 얘깃거리를 실어놓은 것도 흥미를 더한다. 조유전-이기환 지음, 황금부엉이 14,500원.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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