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체제 구축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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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관계는 언제 보아도 혼란스럽다. 경의선 철도가 연결된다고 하고 개성공단 추진이 급물살을 타는 것 같더니, 북한은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 조문단 방북을 막았다고 트집을 잡으면서 최근 우리 학자들의 방북을 막았다. 북방한계선 부근 해상에서 교신체제에 합의해 우발적인 사태의 발발을 막게 됐다고 하더니, 불과 며칠 후 사정이 생겨 교신을 시도했으나 북측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6·15 남북정상 공동선언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언급해 통일의 의지를 보이는 것 같더니, 얼마 안 가 제2차 서해교전이 발발했다. 요새는 남북간에 교류와 협력의 기운이 전보다 나아지고 있는데도 통일 이야기는 쑥 들어간 채, 개성공단 설치나 남북철도연결 등 남과 북이 더불어 사는 길을 찾는 데 관심이 높은 것 같다. 사실 통일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원하면 원할수록 통일은 멀어진다는 말도 있다. 그렇다고 통일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통일을 염두에 둔다면, 공주 부근으로 수도를 옮기는 것은 그리 현명한 일이 못된다. 서독은 ‘본’을 임시수도로 했다가 통일이 되자 베를린으로 옮겼다. 독일 통일이 국제적인 조건이 성숙해 갑자기 왔듯이, 한반도 통일도 국제적인 조건의 성숙으로 갑자기 오게 된다면, 수도를 공주로 옮기는 데 쏟아부은 국력은 낭비가 될 것이다. 독일 통일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동·서독간에는 전쟁이 없었던 데다가 통일을 향한 의지가 대단했고, 서독이 막대한 경제력에다 통일을 위해서 동독에 투자를 대대적으로 지속했기 때문에, 국제적 여건이 성숙하자 금방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다. 우리도 경제력을 강화하고 북한에 대해서 궁핍에서 헤어나도록 물심양면 원조를 아끼지 않으면서 국제적인 여건이 성숙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통일은 서두를 일도 아니다. 남북 예멘은 군대를 그대로 둔 채 서둘러 이른바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비슷한 통일을 했지만, 얼마 안 가 전쟁이 재발해 결국 무력에 의한 통일이 되고 말았다. 남북 양측 군대를 그대로 둔 채 통일을 하자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한 어정쩡한 통일은 몸 하나에 머리가 둘인 기형아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휴전체제하에서 남북한 관계는 교류협력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교전단체’다. 대법원 판례도 역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교전단체간에는 특정 목적을 위해 조약도 체결하고 교류도 하지만, 피차간에 상대방의 국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류와 협력의 증대는 신뢰구축에 기여할 것이고 신뢰구축은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변경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휴전체제와 동맹관계를 근간으로 하여 유지되고 있는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한다면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  휴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바뀌려면 긴장완화와 불가침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야 하는데, 북핵 문제 등 국제 정세로 보아, 그러한 전망은 불투명하다. 북한이 대미 생존권 항쟁을 계속하고 미국이 북한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부산 아시안게임에 왔던 북측 미녀응원단원이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는 하나’라고 손짓하고 갔지만, 그들이 말하는 ‘우리는 하나’라는 말은 당연히 북한 체제를 뜻한다. 

휴전체제는 언젠가는 평화체제로 변경돼야 한다. 올해는 1954년 제네바 한반도평화회의가 개최됐다가 결렬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전쟁 참가국 20개국 대표가 회동해 “‘남북한 총선거’가 먼저다” “‘외국군 철수’가 먼저다”라고 하면서 한 달 반이나 평화적 통일 가능성을 논의했다. 지금도 북핵 문제가 걸려 있고 남북한간에 어려운 문제가 많지만, 제네바 평화회담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변경하고 남북간에 평화를 정착시켜 통일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적절한 시기에 이를 재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상면〈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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