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민노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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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에 대한 걱정

[유인경이 만난 사람]노회찬 민노당 의원

6월 개원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 7층 사무실에 막 입주한 그는 "국회에서 푹신한 소파를 준댔는데 SOFA(한미 주둔군 지위에 관한 협정)가 개정되기 전까지는 소파에 앉기 싫어 방송출연료 모은 돈으로 회의용 탁자를 샀다"며 사랑스러운 듯 탁자를 어루만졌다. 그 탁자에 `원래는 셀프지만 '특별히 타왔다'는 냉녹차가 놓였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의 보수-개혁 발언에 대한 노 의원이 지적이 기억나 운을 떼니 그는 쇠고기산적 다지듯 자근자근 `'말날'로 대통령을 다지기 시작했다.

"나 같은 진보주의자도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은 그 경계선 넘나들이가 너무 심해 지켜보기도 아찔아찔하다. 보수-개혁 구분만이 아니라 이번 보궐선거를 앞두고 한 말도 그렇다. 지금이 백제와 신라가 싸우는 삼국시대인가? 왜 영남필승을 강조하나? 그건 열린우리당 영남 선거대책본부장 정도가 할 말이지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고 가슴죄며 살아야 할지... 노 대통령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글로 써서 다섯 번 정도 읽어보고 난 후에 말을 하면 좋겠다. 참,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盧라고 하지 말라고 주문했지만 난 魯라고 줄여도 된다."

그렇게 질타를 하면서도 얼굴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다. 그래서 모든 말이 농담처럼 들리고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매력이 있다. 그런데 덩달아 웃다보면 그 속에 뼈가 있어 은근히 가슴이 아리다. `어조는 어눌하지만 '논리와 비유는 촌철살인'이란 평을 듣는 그는 계속 미소지으며 정치권에 대한 과격한 발언을 멈추지 않는다.

"노동운동가 출신이라 삼성그룹은 싫지만 이건희 회장이 정말 옳은 말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경제는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란 비유다. 기업을 우리나라 정당처럼 운영했으면 그 회사는 하루에 두 번은 망했을 게다. 

각 정당이 운영비만 1천억 이상 들어가는데 연경비 1천억원짜리 회사가 생산성은 둘째치고 어찌 그리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지 한심하다. 자기당 자산 규모를 정확히 아는 정치인이 있나? 그저 자기개인 금고의 돈처럼 펑펑 쓰지 않는가? 모 정당이 선관위에 보고한 영수증 보면 아무개 총장 동창회비, 모임의 와인구입비도 있더라. 뿐인가? 이거 밝혀지면 곡괭이 들고 뛰어올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단체로 유흥가 출입한 영수증도 있더라. 스포츠, 영화, 경제 등은 평균 2류는 되는데 정치만 4류다. 정치판에서도 재빨리 바뀌는 세력은 살아남고 저항세력은 사멸할 거다."

첼리스트와 노동운동가

[유인경이 만난 사람]노회찬 민노당 의원

"그냥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래서 나도 내가 한 말이나 비유를 잘 기억못할 때가 많다. 평소에도 잘 웃고, 잘 웃기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노동운동을 하면서 익힌 말솜씨다. 지친 노동자들에게 정치건 경제건 재미있고 쉽게 이야기해줘야 그들도 이해하고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서민들과 호흡하며 자연스럽게 익힌 표현들이다. 그런데 그동안 총칼로 권력을 얻고 차떼기로 돈 나른 이들이 무슨 푸근한 유머를 구사할수 있겠나?"

함경도 출신인 노 의원 부모는 한국전쟁 때 피난와 부산에 정착, 그를 낳았다. 부산중학을 졸업하고 경기고로 진학한 그는 문화적인 부모 덕에 당시로선 드물게 첼로를 배운 음악도였다. 집에 돌아오던 버스에서 들은 라디오방송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국회를 해산한다는 뉴스였다. 학교에선 우리나라가 대통령중심제라고 배웠는데 왜 내각제에서나 가능한 국회해산을 할까 의아해서 집에 돌아와 책을 찾아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았다. 그날 가판 신문엔 `'국회해산'이라고 하더니 다음날 아침 신문엔 '10월 유신'이라고 제목이 바뀌었다."

모범생은 명백히 `헌법을 위반한 정부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후 대학입시 공부는 않고 `[사상계] 등의 책을 읽고, 함석헌 선생 등의 강의를 찾아다니고, 유신반대 유인물까지 제작해 뿌렸다. 그리곤 군대를 다녀와 `'데모를 제일 잘 하는 대학'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려대(정외과)에 들어갔고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따면서 인맥도 끈도 없이 노동현장에서 자생적으로 노동운동가가 되었다. 89년엔 인천지역 민주노동자연맹 사건으로 구속돼 3년간 옥살이도 했다. 진보정치연합, 국민승리21 등 정치활동도 했고 `[매일노동뉴스]란 언론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결혼도 진보적이다. 이미 15년 전에 요즘 트렌드인 연상녀연하남 커플로 두 살 연상인 노동운동가 김지선씨와 결혼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일을 결혼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아내의 정신적인 면이 마음에 들어서 청혼했다"며 "20대였으면 분명히 어리고 예쁜 여자를 찾았을 텐데 철들어서 늦게 결혼한 게 무척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아내 외의 다른 여자들도 외모보다 정신적인 면만 중요시하냐"는 유치한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노동운동하는 남편을 대신해 여성의 전화에서 일하며 매달 8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는 아내는 노 의원이 타올 의원 세비를 잔뜩 기대하고 있단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각서를 써서 1백80만원밖에 못받겠지만 그것도 거금이라면서. 

JP의 못다한 꿈을 이루겠다?

국회의원 생활도 노동운동가답게 해보겠다는 준비와 각오도 대단하다. 재벌과 금융분야를 담당할 그는 경제전문가와 박사출신 보좌관을 영입했고 전문서적도 많이 구입해 공부 중이다.

"이번 선거에서 막차로 간신히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국회의원이 목표가 아니었으니 안 됐어도 크게 상처받지 않고 자신있게 내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 정리를 마친 상태여서 막상 당선되었을 때 아주 기쁘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당과 나 때문에 의원에서 탈락한 분(김종필 전 의원)의 못다한 꿈을 이뤄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10선의 꿈이건 집권당의 꿈이건 말이다. 일단 4년짜리 정규직장을 얻었으니 다행이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노회찬 민노당 의원

민주노동당의 인지도와 위상이 높아졌지만 당론을 결집하고 제대로 알리는 일에도 그의 몫이 크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2003년 1년간 KBS 9시 뉴스에 민주노동당이 일곱 번 언급되었는데 독립된 내용으로 다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편 자민련, 민노당 등에서는..." 등으로 살짝 처리되던 민주노동당이 이제 주목받고 있으니 정책과 당의 이미지를 부드럽지만 바르게 알리고 싶단다.

요즘은 민주노동당의 취약계층인 주부와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에 주력하고 있지만 다시 방송에도 나갈 예정이다. 토론프로그램에서 스타가 된 그가 꼽은 최고의 토론자는 뜻밖에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다. 자신은 아마추어이고 홍 의원이 진정한 프로란다. 검사 출신답게 상대방을 코너에 몰아넣기도 하고, 주제에 맞는 자료들도 잘 찾아와 팩트가 확실하고, 쇼맨십도 뛰어나 보는 즐거움을 준다고 평한다. 또 유시민 의원은 `'남의 말 안 듣고 중간에 자르는 능력과 남이 한 번 말할 때 세 번 말하는 재주'가 감탄스럽고 전여옥 의원은 눈감고 달려드는 투우 같은 저돌성이 느껴진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워낙 여자에게 약하고 여자가 때리면 맞자는 성격이어서 토론프로그램에서 대결하게 될 것 같지는 않단다. 그리고 "지금까지 텔레비전에서 자신이 보여준 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며 "앞으로 진면목을 보여주겠다"고 웃는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노동운동하느라 국민연금도 체납한 신용불량자였던 그가 이젠 [경향신문]을 비롯한 각종 설문조사에서 차세대 리더,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사리판 같은 정치판에서 견고한 성을 쌓은 재벌들과 겨루며 그 미소와 유머를 잃지 않고 정치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선배들처럼 갈수록 얼굴이 좋아져서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명랑유머당'을 창당하면 어쩌나....

글[유인경 편집장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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