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안 들면 그냥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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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면서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 수는 없다. 눈에 거슬리거나 불쾌하거나 화나게 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대개 불편한 감정은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갈등의 산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자기 마음속의 갈등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마음 밖의 대상을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소극적인 성격의 사람들은 "안 보이면 그만"이라는 식의 생각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적극적인 사람들은 그 대상을 없애버리려고 한다.

자, 그러면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공교육을 위협하는 사교육, 강북에 위화감을 주는 강남의 집값, 지방에 비해 지나치게 팽창해버린 수도권, 소위 일류대학교, 의견이 다른 방송, 마음에 안 드는 신문, 효율성이 떨어지는 국회, 상대 정당, 여중생을 해친 주한미군, 술 마시고 어머니를 괴롭히는 아버지, 말이 통하지 않는 직장 상사 등등....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다르지만, 없어졌으면 하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의식적으로 소망하는 대상은 무한하다. 결론은? 덮어놓고 그냥 없애버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소위 일류고등학교가 있고 고등학교 입학시험, 각 대학이 주관하는 입학시험이 있었던 시절로 잠시 기억을 되돌려보자. 과외열풍-치맛바람-형평성 등의 이유로 세칭 일류고교들을 없애고 현재의 범국가적 행사인 수능시험까지 참을성 있게 옮겨왔지만 제반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악화되었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고 부정할 수 없다. 사교육은 기업형으로 확장되었으며, 솔직히 이제 공교육에서조차 소속 학생들의 대학 입학률을 올리기 위해서 학생들이 사교육 받기를 은근히 때로는 명시적으로 바라는 지경이 되었다.

대학 서열화를 막는다는 명분하에 교육정책은 매우 경직되어, 이제 학원에서 제시하는 배치표가 없으면 입학이 가능한 학교를 선택하기 어려운 형편에 이르렀다. 대학별 점수가 공개되면 '줄 세우기'가 되니 수능시험 성적분포 내역을 절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은 전형적인, "문제가 있을 때 안 보이게 하면 그만"이라는 발상이다. 풀숲에 머리를 박고 포수의 총을 보지 않는다고 위험에 처한 꿩이 그곳을 벗어날 수는 없다. 주민들이 경비원 아저씨의 눈치를 보며 선생님을 몰래 불러들였던 '과외금지'도 결국 폐지되지 않았던가. 왜 재수생의 수능시험 성적이 재학생보다 좋은지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지경에서 사교육을 없애버리면 공교육이 살아난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거의 망상적인 생각이 될 것이다.

동일한 논리로 강남의 집값이 오르니 세금을 엄청 늘려서 강남을 없앤다? 강남에 살지 않는 분들에게 잠시 약간의 스트레스 해소책을 제공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억울하게 당한 우리 국민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주한미군은 집으로 가라"고 외친다면 이 역시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밖으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밖의 문제를 잘라내서 없애버린다고 안에 남아 있는 핵심적 문제까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아주 단순하고 명백한 진리가 21세기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우리 모두 밖을 향해 "이건 모두 너 때문이야!" 하지 말고 내가 안에 지니고 있는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갈 수 있다. 그것만이 근본대책이다. 참고로 덧붙이면 지울 수 없는 문제를 지우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은 강박신경증 환자가 보이는 경직된 사고의 특성이다.

정도언[서울대 의대 교수-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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