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작가 / 강윤중 기자
공지영은 단편집 <인간에 대한 예의>(1994)와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1989),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1991), <고등어>(1994)로 이어지는 초기 작품활동의 여정에서 386세대 여성의 후일담이라는 뚜렷한 자기 세계를 구축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3)는 이 여성 후일담의 자장에 있으면서 1987년 이후 이루어진 사회 전반의 개혁과 민주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식민지로 남은 여성의 현실에 대한 고발장이자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선언문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1990년대 페미니즘 문학의 약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93년 상반기 출간된 이 소설은 그해 말 여성문화예술기획에 의해 연극으로 상연됐으며, 1995년에는 영화로 개봉돼 비평계와 미디어의 조명을 받으면서 ‘공지영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학 시절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여성들이 결혼과 육아, 직장생활과 같은 사적·공적 영역에서 남성 동성 사회의 공고한 장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결국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길’을 선택한다는 스토리는 당시 20·30대 여성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실패와 절망이 여성 인물들의 정동 지배
소설의 주인공인 혜완과 그의 친구들인 영선, 경혜는 중산층·이성애·고학력 여성들로 87년 체제로 사회에 평등과 정의, 민주주의가 도래했지만 여성에게는 그 과실이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 좌절한다. 대학 시절 동기였던 남편이나 운동권 선배들은 87년 체제의 안정된 국면 속에서 대학교수가 되고, 유명한 영화감독이 되고, 이제는 훼절해 선정소설을 출판하는 출판사 사장이 됐다. 이들은 민주화 세대 남성 지식인들의 비교적 순탄한 성공담을 공유한다.
그렇다면 같은 대학에 다녔고, 자아실현과 사회진출을 꿈꾸었던 이 여성들의 현재는 어떤가. 결혼 후에도 자기 일을 원했던 혜완은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고 그로 인해 이혼하고 소설가가 됐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이혼녀에 대한 편견에 시달린다. 영선은 남편 박 감독에게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줘서 감독 데뷔를 시키지만, 정작 자신은 육아와 가사노동에 치여 우울증을 앓는 알코올중독자가 됐다. 두 인물에 비해 속물적인 경혜조차 남편의 외도를 감내하면서 현모양처를 연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소설은 이 재능 있는 여성들의 절망을 극적으로 보여주려는 듯 혜완이 영선의 자해 시도 소식을 전화로 듣는 것으로 시작해 다시 한번 집안의 천사가 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던 영선이 끝내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고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으로 끝난다. 때문에 이 소설은 실패와 절망, 모욕감과 수치심이 여성 인물들의 정동(심리적 상태)을 지배하는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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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혜완, 경혜, 영선이 결혼과 육아, 사회생활에서 겪는 좌절은 ‘젠더화된 수치심’이라는 프리즘을 경유해서 보면 더 예리하게 드러난다. 정동이론가들은 모욕감이나 수치심, 경멸과 같은 부정적 정동이 자연적이고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권력 관계를 구성하는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욕감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와 젠더 규범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여성은 자신을 결함 있고 불결하고 나약한 존재로 여기는 타자의 시선을 내면화하면서 자기혐오와 우울증, 깊은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수치심과 모욕감은 혜완과 영선이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감정이자 소설 전반을 흐르는 정동이다.
자신의 모든 재능과 커리어를 남편에게 헌납하고, 집안의 천사로 남은 영선은 “목욕탕 앞의 발닦개처럼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밟고 가도록 내버려”두도록 자신을 방기한다. 남편에게 빌다시피 관계를 가진 후의 모욕감, 자신이 ‘벌레’와 같아서 스스로를 죽여버리고 싶었다는 지독한 혐오감을 혜완에게 고백한다. 선우와 헤어지라는 말을 선우의 누이로부터 들은 혜완이 느끼는 감정은 “모든 것이 치욕”이라는 모욕감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뺨이 씰룩이고, 입술이 덜덜 떨리는 것은 모욕감과 수치심에서 발현된 강렬한 신체적 반응이다.
처음부터 그들이 모욕감과 수치심으로 점철된 삶을 예측했던 것은 아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세 여성은 비슷한 문화·문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대학 시절 이들은 경쟁적으로 시집이나 평론집을 사들이고, “책값이 그들이 지불하는 모든 돈의 가치를 재는 척도인 시절”을 공유했다. “오전엔 여성문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오후에는 누군가가 자신들을 멀리 떨어진 햇빛도 찬란한 섬으로 데려가게 해달라는” 소망, “진정한 여성해방을 위한 여성지를 만들기 위해 돈 많은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소망조차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활력과 당당함을 가진 존재였다. 혜완이 소설가가 되고, 영선이 한때 시나리오를 썼던 경력에 비춰볼 때 이들은 중산층 지식인 여성으로서 충분한 문학·교양 자본을 갖추고 있다. “베티 프리단, 로자 룩셈부르크, 시몬느 베이유 혹은 클라라 제트킨, 그도 아니면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같은 도서목록에서 볼 수 있듯이 1980년대 사회과학과 페미니즘 이론의 유입을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지식과 문화적 감수성, 올바른 정치적 지향성을 갖추고 더 나은 미래를 함께 기획했던 그들이 지금은 “각자의 절망으로 울부짖고” 있다.
87년 체제 유산, 남녀에게 불평등 분배 지적
87년 체제를 경유한 이 여성들은 평등과 민주화라는 이상을 실현한 경험이 있기에 사회민주화가 달성되면 여성해방도 함께 성취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이 세대가 공유했던 가치와 이상은 여성 문제에 한해서는 예외였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여성의 생애사적 주기에서 한국의 여성들이 겪을 법한 차별과 억압의 경험을 펼쳐 보인다. 소설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온갖 여성 문제의 집합체라 할 만하다.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같은 일을 하는 동료나 선배 문인들의 일상적인 성희롱, 남아 선호와 여아 낙태,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등이 이들이 마주한 모욕적인 현실이다. 더 문제적인 것은 혜완이나 영선과 유사한 정치적 성향을 지니고 사회변혁에 앞장섰던 남편들이 ‘직장’과 ‘가정’ 중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하고, 자녀 돌봄과 가사에만 충실하라고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세대는 “우리의 어머니들은 딸들에게는 자신과 다른 생을 살라고 가르쳤고, 그리고 아들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라고 가르쳤던” 남녀불평등의 역사적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소설은 87년 체제의 유산이 남성과 여성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았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고통받는 여성들이 서로 연대할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는다. 경혜처럼 현실과 타협하거나 영선처럼 자기를 버리는 길은 결국 실패와 모욕으로 되돌아올 터이기 때문이다. “여성 해방의 깃발을 들고 오는 남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 역시 진보적 여성 지식인의 허위성에 다름 아니기에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서 따온 소설의 이 마지막 문구는 혜완이 87년 체제의 남성 동지들과 연대하는 대신 ‘혼자서’ 가는 길을 택했음을 의미한다.
여성은 선하고 남성은 악하다는 마니교적 이분법, 감정 과잉의 문체는 오랫동안 소설을 지탱해온 대중성의 원천이자 작품의 한계로 지적돼왔다. 그런데 출간된 지 30여 년이 지나 여성 주체의 홀로서기를 선언했던 이 소설이 페미니스트 서사로 다시 소환되고 있다. 이 의미심장한 현상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사적 영역의 민주화가 적어도 젠더 영역에서만큼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김양선 한림대학교 일송자유교양대학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