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작품의 뛰어난 점은 상황과 설정, 캐릭터의 깊이다. 이번에 픽사가 완성도 높은 가족영화를 내놨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저마다의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영화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목: 엘리오(Elio)
제작연도: 2025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98분
장르: 애니메이션, 어드벤처, 판타지
감독: 매들린 샤라피안, 도미 시, 아드리안 몰리나
목소리 출연 : 요나스 키브레브, 조 샐다나, 레미 에저리
개봉: 2025년 6월 18일
등급: 전체 관람가
제작: 디즈니 픽사
수입/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코스모스>. 1980년대 초반 탐독했던 책이다. 누런 갱지에, 당시에는 보기 드문 총천연색 삽화가 들어 있었고, 책 표지에도 그 점을 강조한 문구가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디즈니 픽사의 신작 <엘리오>는 여러모로 <코스모스>, 그리고 책의 저자 칼 세이건에게 빚지고 있는 영화다. 영화의 시작 장면부터 등장하는 골든레코드는 칼 세이건의 주도로 보이저 1호와 2호에 실려 있던 원반이다. 영화에서 보이저호 옆면에 붙어 있는 것으로 묘사돼 있는데, 찾아보니 정말이었다.
외계인 ‘납치’를 기다리는 소년
일곱 살 소년 엘리오는 고모 올가 솔리스와 살고 있다. 부모를 잃었지만 어떤 ‘사고’가 있었는지 영화에서는 자세히 언급되진 않는다. 고모는 미군기지에서 일하는데 주요 임무는 지구 궤도를 순환하는 우주 파편들을 추적 감시하는 일이다. 영화는 골든레코드를 싣고 우주를 순항 중인 보이저호를 누군가 ‘납치’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친구도 없고 부모도 없는 엘리오는 외계인들이 자신을 ‘납치’해줬으면 해 바닷가에 무작정 누워 기다리곤 했다. 고모가 자신을 거둬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천방지축 사고뭉치인 자신 때문에 고모의 앞날도 덫에 걸리게 됐다고 엘리오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느 날, 외계로부터 온 메시지가 기지의 전파망원경에 포착된다. 보이저호에 실린 골든레코드 메시지를 읽는 방식으로 지구인을 초대한 것이다.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 그리고 소설 <접촉>(국내에 처음 번역됐을 때 제목)과 조디 포스터 주연 영화 <콘택트>(1997)에서 그렸던 외계문명과 지구인의 첫 만남이다. 기지 책임자인 고모는 시시껄렁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소집된 긴급회의를 해산하는데, 우연히 쓰레기통에 숨어 그 회의를 목격한 엘리오가 마이크를 잡고 그 메시지에 응답한다. 그리고 얼마 후. 기숙학교 여름 캠프에서 왕따가 돼 폭행당하는 순간, 지구를 대표하는 대사(Ambassador) 엘리오를 맞이하기 위해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픽사 애니메이션 작품의 사려 깊은 철학
픽사 작품의 뛰어난 점은 상황과 설정, 캐릭터의 깊이다. 엘리오가 가게 되는 ‘커뮤니버스’는 ‘우’(캐릭터의 영문 표기는 ‘Ooooo’다)라는 슈퍼컴퓨터가 시리나 빅스비 같은 음성 인식비서처럼 따라다닌다. 2025년 현재 상상할 수 있는 챗GPT나 퍼플렉서티, 클로드 등 인공지능(AI)의 궁극적인 진화 모습이 아니던가! 인간과 전혀 다른 종, 굳이 따지자면 갑각류 외계인 소년 글로든과 엘리오가 우정을 쌓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과정은 ‘종 차별주의’ 반대로까지 진화한 디즈니 픽사의 ‘PC(정치적 올바름)주의’의 현재 모습을 보여준다. 이 세련되고 사려 깊은 영화를 보고도 ‘PC 묻었네’라고 침 뱉을 사람은 아마도 편 가르기에 머리가 절은 사람일 것이다. 보통 픽사 오리지널 작품은 도입부에 자신들이 제작한 단편영화 한 편을 보여주며 시작하는데, 엘리오는 올해 11월 개봉 예정인 <주토피아 2>의 단편 예고편으로 대체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주토피아>(2013)가 반PC주의 진영의 주요 공격 수단으로 사용된 적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픽사의 29번째 장편영화로 <토이 스토리>나 <더 카>,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 <코코> 같은 높은 완성도를 지닌 또 한 편의 가족영화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저마다의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다. 가족동반 극장 관람 추천한다.
칼 세이건의 주장으로 보이저호에 실린 골든레코드

/NASA
보이저 1호와 2호는 1977년에 발사됐다.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인데, 보이저 1호는 약 240억㎞ 떨어진 성간 우주에, 보이저 2호는 태양계 바깥쪽으로 나가 공작자리 방향으로 208억㎞ 거리를 비행하고 있다. 1호는 2013년에, 2호는 2018년 12월에 각각 태양계를 벗어났다. 보이저호의 동력원은 플루토늄이다. 대략 2020년대 중반에는 동력원을 다 써서 지구와 교신이 끊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2019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일부 장치의 보온장치를 껐다고 발표했다. 보이저 2호의 경우 현재 선체 전압 안전장치용 예비 동력을 활용해 우주 항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렇게 연장한 수명 연한이 2026년이니, 조만간 지구와의 교신이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외계문명과 접촉 시 인류문명을 소개하기 위해’ 골든레코드(사진)를 싣는 아이디어는 NASA의 자문위원이었던 칼 세이건에게서 나왔다. 골든레코드라지만 순수 금은 아니다. 12인치짜리 구리 LP 디스크 표면에 금박을 입힌 것이다. 보들레르의 시 ‘비상(飛上)’과 당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음성메시지, 55개의 세계 각 나라 인사말(“안녕하세요”라는 한 여성의 한국말 인사도 있다), 모차르트·베토벤 등의 클래식 음악, 자연풍광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사진들도 실려 있다. 레코드 뚜껑의 그림은 무슨 뜻일까. 당연히 언어가 다를 외계문명인도 이 레코드를 ‘해독’할 수 있도록 설명한 그림이다. 상단 왼쪽의 원과 2개의 선은 이진법을 형상하고 있다. 수학은 우주 공통의 언어라는 믿음이다. 오른쪽 2개의 원과 그걸 잇는 하나의 선은 우주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원소인 수소를 표현한 것이다. 음반 하단 오른쪽엔 우라늄 238을 전기도금으로 입혀놓았고, 왼쪽엔 태양계 기준 펄서(방사능 파장)를 그려놨는데 이 정보를 조합하면 대체로 이 우주선이 어디에서 왔는지 특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걸 알아차릴 지적 수준을 갖춘 외계문명이 발견했을 경우의 이야기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