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부역자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지난 6월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선 기묘한 광경이 벌어졌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그간 무수한 거부권 행사의 대상이 됐던 내란 특검법, 채 상병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등 윤석열·김건희의 범죄 혐의를 규명하기 위한 특검법들이 마침내 심의를 거쳐 공포 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 국무회의 구성원 중 이재명 대통령을 뺀 나머지 회의 성원은 전부 얼마 전까지 윤석열, 한덕수, 최상목의 거부권 남발에 거수기 역할을 해주던 윤석열 정권의 장관들이었다. 이날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은 몇 달 전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법안에 대한 의견을 번복해 대통령의 재가를 요청한 셈이다. 게다가 이날 회의장에 앉아 있던 장관 대부분은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한 인원들로 내란 특검법의 수사 대상에 속한다. 회의장 속사정이 어땠는지까지는 알 수 없으나 여러모로 불편한 분위기였으리라.

국무위원들만 문제겠는가. 내란죄 주요 피의자가 서울경찰청장을 맡고 있고, 국회 앞에서 시민들과 대치하던 경찰 기동대장들이 서울 시내 주요 경찰서장으로 포진 중이다. 윤석열을 풀어준 심우정도 아직 검찰총장이고, 군대 내에도 계엄이나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에 연루된 특검 수사 대상자들이 자리를 그대로 꿰차고 있다.

법을 우습게 보고 시민을 배반한 공직자들은 하루도 그 자리에 앉아 있어선 안 된다. 인적 청산을 머뭇거리는 과오를 반복해선 안 된다.

박근혜 탄핵 이후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가 임명했던 이철성 경찰청장을 2018년 6월까지 유임시켰다. 이철성 청장은 취임 직후 고 백남기 농민을 유족 동의도 구하지 않고 강제 부검하려 했고, 박근혜 탄핵 시위 초기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집회를 방해하거나 일선 경찰들에게 부적절한 엄포를 놓았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는 정권이 바뀌자 납작 엎드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힘을 쏟던 문재인 정부는 그를 경질하지 않았고, 임기를 보장했다. 그랬던 그는 임기가 끝난 뒤 2016년 총선에서 박근혜 청와대와 공모해 여당 승리를 위해 정보 경찰을 움직여 불법사찰을 한 사실이 드러나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는 개혁 대상인 정치경찰의 우두머리를 데리고 경찰개혁의 포문을 연 셈이다.

기무사 계엄 문건을 만들었던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도 문재인 정부에서 반년간 자리를 지켰다. 그는 군 내 사조직인 알자회 핵심 멤버로 최순실 국정농단의 한 축으로 등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퇴임 후 미국으로 갔고, 얼마 뒤 계엄 문건이 폭로돼 6년간 도주생활을 하다 윤석열 정권 출범 후 귀국해 재판을 받고 있다. 기무사는 군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곳이다. 문재인 정부는 계엄령을 검토하던 조현천을 기무사령관에 앉혀두고 첫 군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이런 자들은 정권이 바뀌면 일단 고개를 숙인다. 자기에게 얼마나 많은 정보가 있는지, 그것이 새 정권에 얼마나 유용할지 설명하려 애쓴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서 개혁의 시계를 늦추거나 진실을 파묻는다. 이들에겐 틈을 줘선 안 된다. 법을 우습게 보고 시민을 배반한 공직자들은 하루도 그 자리에 앉아 있어선 안 된다. 사람 잡던 칼을 날이 잘 섰다고 정갈한 음식 하는 데 써서야 되겠는가. 인적 청산을 머뭇거리는 과오를 반복해선 안 된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오늘을 생각한다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