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한국 민주주의는 또 다른 내란을 막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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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5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주식시장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5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주식시장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의 내란 시도 후 6개월 만에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다. 힘든 시기를 보낸 시민들은 이제야 안심하며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광경은 마치 2017년의 데자뷔 같지 않은가? 박근혜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고, 5월 대선에서 문재인이 당선되자, 시민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기가 열리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던 윤석열이 그다음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결국 군사쿠데타라는 오래된 악몽을 재소환했다. 미래에 2025년 대선은 어떤 사건으로 기록될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대선을 거치며 내란이 남긴 메시지가 다소 희석된 것처럼 보인다. 작년 12월 3일의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가 여전히 자기 안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지금 한국 시민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한국 민주주의는 또 다른 국정농단이나 내란을 막을 수 있는가?’이다. 새 정부가 한국 민주주의의 커다란 진전을 이뤄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민주주의의 안정성은 확보해줄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대선의 의미

누구나 아는 사실 몇 가지를 확인하자. 지금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극우-보수 집단은 민주주의 제도를 정상적이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의지와 역량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을 동원해 여론조작을 벌이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화계 인사들을 감시했다. 박근혜와 윤석열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사건으로 탄핵당했다. 이들은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불법적 수단도 가리지 않는 악당이거나, 권력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도 갖추지 못한 무능력한 바보들이었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은 예외적이거나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이 집단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결과다.

한국의 실질적 민주주의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즉 보편적 자유와 평등이라는 원칙이 현실에서 얼마나 구현되고 있는지는 별도로 따져야 할 문제지만, 적어도 법과 제도를 비롯한 형식적 민주주의는 꾸준히 발전해왔다. 군사독재 시절의 세계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극우-보수 세력이 민주주의 제도를 이해하고 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과거 체제로 회귀할 수도 없다. 한 번 자리 잡은 제도는 정권의 성격에 따라 간단히 뒤집힐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극우-보수 세력이 집권하면 민주주의에서 허용될 수 없는 온갖 꼼수와 비정상적 수단을 동원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보통 시민의 상상을 벗어나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이번 대선은 한국 민주주의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다. 국민의힘은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않았지만, 41%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국정농단과 내란 사태를 경험한 뒤에도 이들의 고정 지지층은 여전히 견고하다. 이준석과 개혁신당에서 제3당의 가능성을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들은 극우-보수 세력의 한 분파이지 대안 세력이 아니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1%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내란, 탄핵, 대선을 거치면서도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치명적인 위험 요소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와 ‘내란 심판’을 외쳤다. 이들은 자신의 집권이 안정적 민주주의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민주당의 승리는 해법이 될 수 없다. 그들의 영구집권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극우-보수 세력이 아무리 무능하고 비정상적이라도, 민주당 정부가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더라도, 정권은 거대 양당 사이에서 오고 갈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이 이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언젠가 (당명은 바뀌겠지만)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다시 승리할 것이고, 그 후에는 지금까지 경험한 것과 비슷한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상과 비정상

당연한 말이지만 누가 집권하든 민주주의 제도는 안정적으로 운용돼야 한다. 국정농단과 내란 사태가 보여준 것은 한국이 여전히 이런 기초 조건을 충족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런 안정성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정상과 비정상의 명확한 구별이다. 정치 진영에 상관없이, 민주주의의 정상적 범위 안에 있는 세력이 그것 밖에 있는 비정상적 세력을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이는 극우와 분리된 보수의 등장을 요구한다. 국민의힘이 정상적 보수와 비정상적 극우로 분화되지 않는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정상화되기 어렵다. 40% 이상의 고정 지지층을 가진 거대 정당이 비선 실세의 하수인이나 쿠데타를 꿈꾸는 음모론자를 사전에 차단하지 못하는데, 민주주의가 어떻게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이 보수와 진보라는 대립 구도를 통해 한국 정치를 이해한다. 하지만 지난 십수 년의 역사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이 더 결정적임을 보여준다.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국민의힘 등으로 불렸던 집단이 민주주의를 위협했던 이유는 보수라는 이념이 아니라 그들의 비정상성에 있다. 위에서 이들을 극우·보수라고 부른 이유도 이것이다.

문제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을 주도할 헤게모니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정치 진영에 상관없이 모두가 따라야 하는 공통의 기준을 수립할 세력이 없다. 민주당은 민주주의의 정상적 범위 안에서 움직이지만 정상성을 확고히 수립하고, 비정상을 명확히 배제할 이념과 지식 역량이 없다. 보수·진보의 대립과 정상·비정상의 구별이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 역시 수시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음모론과 비합리적 믿음을 재생산할 때도 있고,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위성정당을 만들기도 한다. 이들이 항상 ‘심판’의 언어에 의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통의 원칙에 따라 정치 지형 전체를 재편하는 것이 아니라 극우·보수 세력의 실패를 기다렸다가 재집권을 노리는 것이다. 민주당은 항상 과거 사건에 대한 심판을 외칠 뿐 미래의 난장판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는 말하지 못한다.

지금은 내란의 종식을 기뻐할 때가 아니라 미래의 또 다른 혼란을 우려해야 할 때다. 2017년에도 이런 우려를 말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등장과 함께 모두 잊혔다. 이번에도 같은 망각을 반복한다면, 2030년 또는 2035년에 박근혜나 윤석열 같은 인물이 재등장하지 말란 법이 없다. 지금 필요한 작업은 정상성의 수립, 즉 근대 민주주의의 원리가 헤게모니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는 집권 세력의 교체나 일부 제도의 개선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수준의 변화를 요구한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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