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나는 광주에 없었다>·<미궁의 설계자>

광주 5·18 메모리얼 투어와 연계해 관객 몰입도를 높인 연극 <나는 광주에 없었다>의 관객참여 장면 / 아시아문화전당(ACC) 제공
스탈린 사망 직후 발표한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0번은 근현대사를 축약한 논쟁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60분도 안 되는 짧은 곡이지만 4개의 악장으로 구성돼 독재하의 암울함과 고통, 억압에서 벗어난 정체성의 회복과 냉철한 현실 인식 등을 담아냈다. 지난 5월 30일 서울 GS아트센터에서 전방위(경계 없이 모든 분야에서 활약) 예술가 윌리엄 켄트리지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과 연동된 필름콘서트 <쇼스타코비치 10: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었더라면>(로더릭 콕스 지휘·서울시립교향악단)은 불과 6개월 전 12·3 내란을 겪었음에도 온갖 역경 끝에 민주주의를 회복해가는 동시대 한국을 응원하는 공연이었다. 세대와 젠더 사이 불화를 인식하고, 서로의 사정을 돌아보며 민주주의 감수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같은 맥락에서 역사를 재인식하고 현재를 냉철하게 돌아보게 이끄는 새로운 개념의 관객참여형 공연이 주목을 끈다.
관객참여형, 역사 재현 마당놀이
연극 <나는 광주에 없었다>(김경주·안준원·고선웅 작, 고선웅 연출, 서정완 협력연출, ACC·극공작소 마방진·아이엠컬처 제작)는 역사를 재현한 관객참여형 공연 중 큰 규모다. 전 전남도청 앞에 있는 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 예술극장은 매년 5월 15일 전후부터 5월 18일까지 <나는 광주에 없었다> 전용관으로 변모한다. 레트로풍 모니터와 천장까지 쌓은 탑, 빛바랜 대형 LED 모니터, 군부독재를 상징하는 대형 퍼펫 등으로 계엄군의 묻지마 폭력을 시각화했다. 헬기로 공중에서 발포해 시민들, 심지어 노약자들까지 희생된 상황 그대로이다.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열흘간 섬처럼 고립된 광주에서 국가폭력에 맞서 들불처럼 일어난 민주주의 수호의 역사를 마당극 형식으로 재현했다. 관객들이 5·18 시민군으로 직접 참여해 45년 전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가 된다. 국내외 각지에서 온 여러 연령대, 다국적 시민군과 어깨를 맞대는 순간 관객들은 특별한 연대 의식을 체험한다. 과거의 시민군과 현재의 관객들이 서로의 존엄에 대해 돌아보는 순간이다.
올해에는 주관인 ACC에서 1박2일 광주 5·18 메모리얼 투어 패키지와 연계해 감동의 깊이가 남달랐다. 1980년 5월의 상황을 자세히 돌아본 후 관람하는 형식이다. 국립5·18민주묘지, 5·18자유공원,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전일빌딩245(당시 계엄군이 헬기에서 쏜 245개의 탄흔을 상징) 등을 해설사 안내로 되새기니 극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캐릭터 한 명 한 명이 눈에 들어온다. 부상자 치료를 위해 헌혈하고 귀가하다 희생된 여고생과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에 남아 항전한 교련복 입은 청소년들, 만삭인 임신부 등 시민군의 면면에 목이 멘다.
관객 이동형, 기념비적 공간 자체가 주인공
연극 <미궁의 설계자>(김민정 작·안경모 연출·윤현종 음악·이경은 안무·도현진 무대·김영빈 조명·연극집단 반)는 구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화운동기념관)이 주인공이다. 한국 현대건축을 상징하는 김수근이 자신의 역작인 ‘공간 사옥(현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과 거의 유사한 구조로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과정과 이유를 추적하는 미스터리 서사다. 한쪽은 시민 참여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곳으로, 한쪽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스러진 고문실로 유명하다. 고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현장으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이 두 건물은 사람 머리 하나 들어가기 어려운 좁은 창문과 건물을 수직으로 잇는 좁은 나선형 계단, 검은 전벽돌로 마감한 외관까지 유사한 쌍둥이 건물이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에는 설계자 이름이 없다.

관객이동형 장소 특정 연극 <미궁의 설계자>가 민주화운동기념관(구 남영동 대공분실) 내에서 과거를 재현하고 있다. 김명집 작가·연극집단 반 제공
2023년 초연부터 김수근이 설계해 같은 구조의 좁은 나선형 계단이 있는 아르코 소극장에서 상연된 <미궁의 설계자>는 관객들이 관람한 후 해당 나선형 계단을 직접 오르며 고문실로 끌려가는 민주화 운동가들의 고통을 체험하게 했다. 올해 처음으로 작품의 근원인 구 남영동 대공분실 전체를 무대로 상연하면서 이런 특정한 체험은 무의미해졌다. 한 회에 30명 정도의 관객이 중앙 마당부터 후문의 무거운 철문, 대공분실 1층 나선형 계단부터 5층까지 천천히 이동하며 실제 그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관람하다 보니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이 융합되는 순간을 저절로 경험하게 된다.
1970년대 중반 군부독재 관리(손성호 분)가 고문실이 있는 건물 설계를 의뢰하는 순간과 건축사(이종무 분)의 갈등, 1980년대 대학생(송현섭 분)이 수감돼 고문당하는 과정, 2025년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짚어가는 사진작가(이가을 분)와 해설사(전국향 분)의 논쟁 등 서로 다른 3개의 시공간이 동시에 등장하고 중첩되며 진행된다.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잔잔하고 성찰적인 사운드 디자인과 코러스들의 절제된 안내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독재와 억압의 시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가 희생됐는지 오롯이 실감한다.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역사적 고증과 미학적 재해석으로 거듭난 극장 안에서 500명 전후 관객이 연대와 공감으로 흥에 들뜨기도, 분노와 슬픔으로 오열하기도 한다.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만들어 나눈 부녀자 대표(황영희 분)의 흥에 겨운 그때 그 시절 가요 메들리와 40명 넘는 출연진의 군무는 흥과 비애의 등고선이다. <미궁의 설계자>에서는 남영동 대공분실 5층 고문실 안에 관객들이 두세 명씩 들어가 당시 고문당한 이들의 소회와 목소리를 낡은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듣는 순간이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공간 특유의 소리와 테이프의 소리가 어우러져 시공간이 중첩된다. 관객 대부분은 이유 모를 고통과 슬픔에 오열한다.
<나는 광주에 없었다>의 마지막 장면은 극장의 벽이 온전히 개방되면서 구 전남도청 앞마당과 이어진 공간에 500여명 관객과 50여명 출연진이 함께 쏟아져 나오며 한바탕 요란한 천도재를 벌인다. 수많은 희생자의 관을 상징하는 오브제가 천장에 매달리고 관객들은 근조 배지를 착용하고 손에 촛불을 들고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위무한다. <미궁의 설계자>의 첫 장면은 남영동 대공분실 마당 한가운데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다 스러진 혼령들에게 지금부터 발자취를 따라가겠다고 보고하는 듯 제례의 퍼포먼스를 더한다.
‘예술가들의 예술가’로 불리는 70세 노장 윌리엄 켄트리지는 지울수록 흔적이 남는 목탄 애니메이션 기법을 통해 ‘기억’, ‘역사’, ‘망각 불가능성’을 시각적으로 탐구한다. 예술이란 역사의 기억과 흔적을 모아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며 “지우고 다시 그리는 과정에서 남은 흔적은 잊힐 수 없는 과거를 상징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매년 4월 말부터 ACC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미궁의 설계자>는 오는 12월 경기도 안산에서 재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