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은 하야오라는 장인이 스튜디오 지브리를 통해 오랜 시간 섬세하게 직조하고 다듬어온 세계관을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정리하는 데 꽤 믿을 만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목: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Miyazaki: L’Esprit de la Nature)
제작연도: 2024
제작국: 프랑스
상영시간: 86분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레오 파비에
출연: 미야자키 하야오, 스즈키 토시오, 미야자키 고로,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개봉: 2025년 5월 28일
등급: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와 이곳을 운영하는 실질적인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이 갖는 가치는 단순히 애니메이션계라는 굴레 안에 머물지 않는다. 현대 대중문화의 중요한 한 축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고전으로 보는 것이 옳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1985년 설립됐다. 평생의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두 감독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 두 사람의 운명적 파트너십과 언론인 출신의 제작자인 스즈키 토시오의 영업 능력이 만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 입지의 판타지 공장을 튼튼히 구축한다.
일반 관객들에게 지브리 작품은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예쁘고 따뜻한 판타지 영화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끊임없이 제기돼온 논란 또한 묵과할 수는 없다.
<반딧불이의 묘>(1988·타카하타 이사오 감독), <바람이 분다>(2013) 같은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인 일본을 옹호하고 군국주의를 미화한다는 민감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실제 지브리의 모든 영화가 그렇게 낭만적이거나 낙관적이지 않다. 모순적이지만 동글동글하고 해맑은 그림체의 내면을 채우고 있는 현실적 문제의식이나 철학적 사색의 깊이야말로 그들의 작품이 오랜 시간 변함없이 관객들을 사로잡은 진짜 이유일지도 모른다.
동양을 바라보는 서양 시선의 한계
<미야자키 하야오: 자연의 영혼>은 냉정하게 평가해 기교적으로 흔쾌히 잘 만든 영화라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특히 평소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를 애정하고 오랫동안 추종해 많이 알고 있는 팬들에게는 실망이 더 클 수도 있다.
일단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이 약점으로 보인다. 기존의 오리엔탈리즘과는 또 다른 이질적 문화권에서 바라보는 인물과 작품에 대한 이해란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하야오 감독의 출생 배경부터 시작해 작품들의 소개를 연대기적으로 배열한 매우 정직한 형식과 구성 역시 좀더 내밀하고 심도 있는 인물 분석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도식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특성이 아직 정보가 부족한 관객들에게는 되레 장점으로 다가갈 수가 있겠다. 하야오라는 장인이 스튜디오 지브리를 통해 오랜 시간 섬세하게 직조하고 다듬어온 세계관을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정리하는 데는 꽤 명확하고 믿을 만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을 아직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입문작으로, 작품들의 소극적 감상을 통해 막연한 느낌만 있는 이들에게는 좀더 체계적인 작품 이해에 한발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로서 충분히 요긴한 작품이 될 수 있겠다.
환경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지브리 작품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를 소개·정리하는 목표와 함께 또 다른 중요한 축이 존재한다. 부제인 ‘자연의 영혼’에서 엿볼 수 있듯 그의 작품들을 관통해 녹아 있는 애니미즘(Animism·자연계의 모든 사물과 무생물적 자연 현상에도 생명이 있다고 보고, 그것의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 세계관 또는 원시 신앙)과 그것이 자연파괴와 환경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시대에 얼마나 중요한 시선이자 가치인지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화 속에는 동료 애니메이터는 물론이고 작가, 인류학자, 생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인터뷰이로 등장한다.
영화의 결말 역시 이 작품의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2008년 작인 <벼랑 위의 포뇨> 이후 작품들의 언급은 형식적이며, 급작스럽게 마무리하는 것 같아 한참 몰입하고 있던 입장에선 당황스러운 느낌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하고 불가피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이후 작품들은 하야오 자신의 과거와 내면에 좀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주제적 맥락에서 벗어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전설’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창의력과 그가 창조해가는 세계는 아직도 진행 중이니 말이다.
6월에는 지브리의 첫 장편영화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도 재개봉할 예정이다.
‘지브리 스타일로 바꿔줘’

/나무위키
유행의 속도와 주기가 워낙 빠른 시대이다 보니 지금은 급속히 열기가 잦아든 듯 보이지만,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AI를 이용해 자신이 가진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의 삽화로 변형하는 것이 큰 유행으로 번져 사회적 이슈까지 됐다.
이를 바라보는 다양한 보도가 나왔는데, 저작권 문제와 상업적·정치적 이용에 대한 우려는 심각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지브리 측의 공식 반응은 최근까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2023년 영국의 ‘파 아웃’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림을 만드는 AI에 대해 ‘삶에 대한 끔찍한 모욕’이라고 답한 것으로 볼 때,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할 리가 만무하리라는 단정이 지배적이다. 하야오 감독은 심지어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진 거 같다. 인간들은 자신감을 잃었다’라는 우울한 소회를 덧붙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스머프>, <슬램 덩크>, <심슨>, <드래곤 볼> 등 다른 유명작품의 다양한 화풍의 변환이 가능하지만, 유독 지브리 스타일의 선호가 화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브리 스타일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수 전문가가 공통으로 지브리 작품 특유의 서정적 분위기로 변환된 결과물이 당사자에게 직접적인 휴식과 여유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주목한다. 더불어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봐왔던 화풍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과거에 대한 향수가 정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를 통해 ‘스튜디오 지브리’가 21세기 문화 영역에 있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가가 명백히 증명됐다는 사실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