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SW의 노예가 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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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우리 모두 배달 앱의 노예가 됐다.” 심심치 않게 들리는 자영업자와 라이더들의 탄식이다. 일을 하면 할수록 남는 것이 점점 없는 기분이다. 띠링띠링 알림에 따라 정신없이 앱이 시킨 일을 처리하다 보면 단골이 누군지도 알 수 없다.

자의에 의한 사인 간의 계약이 무슨 ‘노예 계약’이냐며 할 말 없다고 할는지도 모르지만, 손님도 시장도 그 소프트웨어 속에만 있다면 다른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소프트웨어는 편리하다. 하나같이 우리 사회의 불편함을 타파한 덕에 널리 퍼져 우리에게까지 알려진 셈이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편한 것에 길들다 보면 의존적이 된다. 과의존이란 장기적으로 위험한 일임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게다가 플랫폼은 고객이 두 종류다. 공급자든 소비자든 둘 중의 한 고객군만 확실히 길들여 놓으면 다른 쪽의 노예 계약은 알아서 쏟아져 들어온다.

소프트웨어는 선의로 만들어졌을 터다. 하지만 포커판에 처음 앉을 때의 불안하고 겸손한 마음과 이기기 시작할 때의 기분은 같을 수가 없다. 잡은 물고기에게는 미끼를 주지 않는 건 자본주의를 떠나 인간 심리이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법인데, 자본은 손이 바뀌고 주인이 바뀌기도 한다. 의존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부정적 변화는 사회의 약한 곳부터 느껴진다. 지금은 소상공인이나 체감할 수 있는 이러한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나를 소프트웨어가 쥐고 움직이는 시대는 곧 현실이 될 터다.

한국의 첨단 기간 산업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구글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잘 살려주는 하드웨어를 만든다거나, 엔비디아가 만든 칩을 잘 살려주는 메모리를 만드는 식으로 커왔던 이들이다.

칩은 하드웨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에 의해 차별화된다면 의미가 달라진다. 엔비디아의 반도체가 삼성전자의 반도체와 다른 점은, 엔비디아의 반도체에만 돌아가는 소프트웨어를 엔비디아가 제안했고 전 세계가 이에 의존해버렸기 때문이다.

SD(Software-Defined)라는 용어가 있다. ‘소프트웨어로 규정된’이란 뜻이지만, 이 접두어를 온갖 곳에 붙어 그 대상이 소프트웨어에 의해 차별화되는 세태를 이야기한다. SDV(Vehicle), 즉 소프트웨어에 의해 정의된 차량은 이미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와중에 국산차의 소프트웨어 완성도 문제는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소프트웨어에 답답해하는 건 전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은 더 걱정해야 하는데, 경제 구조 자체가 공산품 수출에 의한 외화 획득 능력에 과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공산품이 지금 맹렬히 SD화 해가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종의 신사적 국제 분업에 의해 대만이나 한국과 같은 후발 공업국은 충실한 ‘협력업체’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가 언제까지나 한껏 길들여 놓은 노예에게 배려해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공산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소프트웨어가 규정할 수 있는 세상에서 소프트웨어는 마음껏 청구서를 쓸 수 있다. 이번 주 구글은 월 250달러의 AI 울트라 요금제를 내놓았다. 세상에 매월 35만원이라니, 그리 낼 수 없는 생활에 우리 개인이 씁쓸해하듯, 앞으로는 기업도 비슷한 느낌의 부담감 앞에 비슷한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일이 없을 리 없다.

<김국현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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