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경남 남해 화방사-붉은 꽃으로 채워진 미더운 절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정태겸의 풍경](87) 경남 남해 화방사-붉은 꽃으로 채워진 미더운 절

경남 남해를 여행하면서 남들이 좀처럼 가지 않는 사찰을 찾았다. 화방사. 남해 하면 보리암을 즐겨 찾고 용문사도 유명하다. 화방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당시에는 연죽사라 불렀다고 한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화방사는 남해를 대표하는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옛 명성에 비해 다소 초라한 면이 없지 않다.

이 사실은 화방사에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의 승군이 주둔했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노량해전에서 활약한 승군의 적잖은 수가 화방사에서 동원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란 이후 불이 나 전소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복원했지만, 화방사는 그 시대 남해안 일대를 지키는 아주 중요한 요충지였던 셈이다. 승군의 흔적은 구시통(구유)으로 남아 있다. 원래 구시통은 말의 먹이를 주는 커다란 통나무 그릇이지만, 사람이 많이 머무는 시대에는 여기에 밥을 담아 여럿이 함께 먹었다고도 한다. 화방사는 개인적으로 인연이 많은 절이어서 어릴 적부터 숱하게 올랐다. 얼추 40년. 이제는 이 절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수백에 달하는 승군은 사라졌지만, 그 수만큼이나 많은 철쭉이 절을 가득 메운다. 우리가 몰랐던, 이제는 울긋불긋한 꽃을 곁에 두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이 절이 마냥 미덥다.

<글·사진 정태겸 글 쓰고 사진 찍으며 여행하는 몽상가>

정태겸의 풍경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