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 좀 그만 매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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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의제가 실종된 이번 대선에서도 2030 여성은 뒷전이 된 것 같다. 이준헌 기자

진보 의제가 실종된 이번 대선에서도 2030 여성은 뒷전이 된 것 같다. 이준헌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에 소속된 김문수 민주당 의원이 언급한 ‘출산 가산점 공약’이 논란이다. 김 의원은 이재명 후보의 ‘군 복무 경력 호봉 반영 공약’이 성차별적이라며 항의한 문자에 “여성에겐 출산 가산점과 군 가산점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출산 가산점 공약을 보고 기분이 나쁜 이유를 곱씹어보다 고등학교 때가 생각났다. 학구열이 높은, 아니 입시 경쟁이 심한 고등학교에 다녔다. 선생들도, 학생들도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기에 바빴다. 21세기인 것이 무색하게 모의고사를 보면 1등부터 100등까지 등수가 벽에 붙었다. 100명 남짓이 같이 배우는 선택과목 내신 시험에서 1등급(상위 4%)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은 딱 4명이었는데, 성적이 나오면 학생들은 1등급을 받은 4명이 누군지 궁금해하며 찾았다.

출산 여부에 따라 가산점을 주겠다는 출산 가산점 공약이라는 발상 자체가 현실성 없고 성차별적인 것에 더해, 마치 고등학교처럼 거의 모든 청년정책에 점수가 매겨지는 것 같아 암울했다. 모두가 1등급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자원이 한정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해결책이 너무나 쉽게 점수 매기기로 귀결되는 것이 답답하다.

자원이 한정돼 있으니 점수에 따라 자원을 나누겠다는 공약은 국민보다는 정부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일자리나 안정적인 주거 환경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 정부가 미안해하고 분발해야 할 일이다. 일자리를 더 만들든가 청년들이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집값을 내릴 방법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닌가.

그에 비해 군대에 다녀오면, 아이를 낳으면 가산점을 주겠다는 공약은 아무리 봐도 청년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눈속임하는 게으른 정책 같다. 점수를 매기는 정책 앞에서 청년은 정부가 아니라 내가 부족해서 혜택을 못 받는다는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이미 청년들은 많은 것을 점수대로 하고 있다. 청년을 겨냥한 각종 주택정책도 모두 점수에 달렸다. 결혼하면 점수를 주고 아이를 낳으면 점수를 더 준다. 군대도 안 가고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은 30대 여성인 나의 등수는 까마득하게 저 밑에 있겠구나 짐작해본다. 그럼 군 가산점도, 출산 가산점도 받을 일이 없는 취업을 하지 않은 청년들은 아예 열외인가.

‘출산 가산점 공약’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일자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출산 가산점제에 대해 검토하거나 논의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논란이 된 발언을 한 김 의원은 당 선대위 유세본부장직에서 사퇴했다. 하지만 찝찝함을 지울 수 없다. 이재명 후보가 눈에 띄는 여성 공약이나 청년 공약을 내놓지 않아서 더 그렇다.

지난겨울 정치권은 2030 여성이 탄핵 집회 광장을 주도했다며 추켜세웠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도 2030 여성은 뒷전이 된 것 같다. 입시에 비유하자면 비교과 활동은 열심히 했는데, 성적은 잘 못 받은 학생이 된 것 같달까.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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