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 이국적 핑크빛으로 물든 ‘청춘극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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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이러스>의 발단과 골격은 원작 소설 <청춘극한기>를 따르지만, 본격적인 전개와 분위기는 다른 노선을 선택한다. 강이관 감독은 자신만의 생경한 유머와 호흡으로 영화를 이끈다.

㈜바이포엠 스튜디오

㈜바이포엠 스튜디오

제목: 바이러스(Virus)

제작연도: 2025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98분

장르: 코미디, 드라마

감독: 강이관

출연: 배두나, 김윤석, 장기하, 손석구

개봉: 2025년 5월 7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연출을 맡은 강이관 감독의 영화 이력은 꽤 오래됐다. 그러나 시작부터 난관이 많았던 감독이기도 하다. 장편 데뷔작인 <사과>는 문소리, 김태우, 이선균 주연으로 한 리얼리티 멜로드라마로 호평을 받았다.

기획부터 많은 연인의 인터뷰를 통해 쓰인 시나리오는 특별히 과장되거나 미화되지 않은 현실적인 상황 전개와 배우들의 담백한 연기로 큰 지지를 얻어냈다. 2005년 9월 토론토 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돼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고 전 세계 유수영화제에 초대받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 여러 상황과 우여곡절로 공개가 미뤄지다 3년이나 지난 2008년 10월에야 정식 개봉이 이루어졌다.

2012년 발표한 <범죄소년>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제작에 참여한 사회성 드라마로 그나마 순탄하게 공개됐다. 보호관찰 중인 한 소년이 자신을 버렸던 엄마와 상봉하면서 맞게 되는 낯선 일상을 감독 특유의 담담하지만, 섬세한 분위기로 풀어놓는다.

이 작품 역시 비평적으로는 찬사를 받았는데, 도쿄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남우주연상 등 다수 수상을 하고, 2014년 미국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상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한국 영화 출품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중간에 단편영화 작업이 있었지만, 오랜 숙고 후 13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장편영화가 <바이러스>다. 그런데 이 작품도 개봉까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6년 만에 빛을 보는 13년 만의 신작

촬영은 2019년 7월부터 3개월가량 진행됐다고 전해진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이다.

팬데믹이 영화산업 전반에 큰 위기를 가져왔지만, 이 작품의 제공(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고, 제작사와 함께 영화를 완성하는 주요 투자사)에 이름을 올린 ‘에이스메이커 무비 웍스’에게는 특별히 가혹한 재난이 됐다. 그리고 그들이 보유한 작품 중에서도 하필 제목부터 <바이러스>로 작명한 이 작품에는 더 큰 악재가 됐다.

결국 이 영화는 개봉 자체가 묘연해졌고, 거의 6년의 세월이 지나서, 배급사가 바뀌고서야 개봉이 성사됐다.

어쩔 수 없이 영화의 여기저기서 시간의 괴리를 실감한다. 거리 풍경이라던가 배우들의 모습이 그러한데, 특히 뽀송뽀송한 외모가 새삼스러운 손석구의 모습과 생기발랄한 연기는 의도치 않게 이 영화의 흥미로운 볼거리 중 하나가 됐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던 번역가 택선(배두나 분)은 소개팅으로 만난 연구원 수필(손석구 분)로 인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그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백신 연구가인 이균(김윤석 분)의 손에 달려 있다.

재미나 공감의 호불호를 떠나 <바이러스>가 기존 한국 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영화임은 분명하다. 바이러스라는 생물학적 소재를 사랑이라는 감정과 병치시킨 아이디어부터가 이색적이다.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상징적 소동극

이는 당연히 원작이 된 소설 <청춘극한기>로부터 기인한다. 소설가이면서 시나리오 작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지민 작가는 <서울의 봄>, <남산의 부장들>, <천문: 하늘에 묻는다>, <마약왕>, <밀정> 등 굵직한 흥행작들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작가는 <청춘극한기>에서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주인공을 통해 찬란한 청춘의 시기에 더불어 피할 수 없는 아픔과 성숙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는 발단과 골격은 소설을 따르지만, 본격적인 전개와 분위기는 다른 노선을 선택한다.

강이관 감독은 자신만의 생경한 유머와 호흡으로 영화를 이끈다. 1990년대 미국 독립영화나 유럽 상업영화를 접했을 때 느꼈던 이국적 정서가 영화 근저에서 느껴진다.

혹자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배경으로 한 30~40대의 로맨스 코미디 자체가 어색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의 나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솔직히 연기력과 별개로 캐스팅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일종의 판타지인 만큼 좀더 그 세계에 어필하는 이미지의 배우들이 연기했다면 폭넓게 관객들을 소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역사가 된 배급사 ‘에이스메이커 무비 웍스’


에이스메이커 무비 웍스

에이스메이커 무비 웍스

<바이러스>는 원래 주식회사 ‘에이스메이커 무비 웍스’(이하 에이스메이커)가 제작 투자에 참여한 작품으로 배급도 진행할 영화였다.

2018년 6월 설립된 에이스메이커는 2019년 첫 번째 작품으로 마동석, 김무열이 주연한 범죄 액션물 <악인전>을 공개했다. 뒤이은 공포 스릴러 <변신>, 정지영 감독의 사회고발 드라마 <블랙머니>까지 첫해 내놓은 세 작품 모두 BEP(손익분기점)를 넘기며 영화투자업계의 다크호스로 등장했다.

에이스메이커가 주목받았던 다른 이유는 그들이 투자하는 작품들의 색깔이었다. 독특한 설정과 적절한 예산으로 승부를 건 스릴러 영화가 많았고, 이중 상당수가 과감한 신인 감독들의 등용을 통해 이루어졌다. 추후 공개한 <침입자>(손원평), <사라진 시간>(정진영), <소리도 없이>(홍의정), <앵커>(정지연), <보호자>(정우성) 같은 작품들이 그랬다.

그러나 이듬해 촉발된 코로나19 사태는 회사의 내실에 균열을 초래한다. 개봉 일정이 흔들렸고, 그나마 어렵게 개봉한 작품들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 2022년부터 BEP를 넘긴 작품이 단 한 편도 안 나왔고, 특히 롯데 엔터테인먼트와 공동으로 312억원을 투자한 <노량: 죽음의 바다>의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은 직격탄이 됐다.

결국 지난해 10월 개봉한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영화사업을 철수하면서 남은 영화들의 배급은 ‘바이포엠 스튜디오’가 진행하고 있다.

공교롭게 배우 리스크로 인해 개봉이 묘연했던 <소방관>과 <승부>가 악재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관객 동원에 성공함으로써 바이포엠만의 안목과 마케팅 방식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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