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썬더볼츠*>의 주인공들은 완벽한 영웅이 아닌, 어딘가 하나씩 결핍된 자들이지만, 자신들도 상처를 안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서로를 의지할 때 진짜 영웅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설파한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목: 썬더볼츠*(Thunderbolts*)
제작연도: 2025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27분
장르: 액션, 어드벤처, SF
감독: 제이크 슈레이어
출연: 플로렌스 퓨, 세바스찬 스탠, 와이어트 러셀, 올가 쿠릴렌코, 제럴딘 비스워너선, 크리스 바우어, 웬델 피어스, 데이비드 하버, 해나 존 케이먼, 줄리아 루이스 드레이퍼스
개봉: 2025년 4월 30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어떤 영화는 삽입된 노래 하나가 절반쯤 점수를 따고 들어가기도 한다. 얼마 전 다른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을 때 나오던 <썬더볼츠*> 예고편에 깔리던 노래 ‘낫싱즈 고나 스톱 어스 나우(Nothing’s gonna stop us now)’. 제퍼슨 에어플레인에서 제퍼슨 스타십으로, 다시 업그레이드를 거듭한 스타십의 1980년대 히트곡이었다. 노래 덕분에 잊고 있었던 10대의 추억이 밀려왔다. 그리고 가사 한 소절마다 맞아떨어지는 이 ‘하자 있는 과거 시리즈 조연들’의 분투 액션 장면들.
킬러에게 떨어진 마지막 임무
미국 CIA 국장 자리까지 올라간 악덕 기업 옥스(Oxe)의 전 회장 ‘발렌티나 알레그라 드 폰테인’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임무를 막 마친 엘레나에게 마지막 미션을 준다. 그 임무란 옥스의 비밀기지에 침입하는 누군가를 쫓아가 죽이라는 것인데, 그곳에 가보니 과연 침입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격투가 벌어지는데 같은 임무를 받은 사람은 엘레나만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서로 죽이라는 임무였던 것.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격투 와중에 그곳 실험실에 유폐돼 있던 밥이라는 인물이 뜬금없이 등장한다. 이 모든 일은 CIA 국장이 자신의 악행을 은폐하고자 서로 죽인 뒤 한꺼번에 소각해 증거를 은폐하려는 계획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다. 이들이 탈출하는 와중에 밥은 각성해 최강의 빌런 센트리가 된다. 엘레나의 가짜 아버지 레드 가디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이들은 의회에서 CIA 국장 탄핵의 증거로 삼고자 뒤쫓는 윈터 솔저 버키 반즈의 추격을 받는다. 이들 모두는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말 그대로 흑화(黑化)해 세상을 어둠으로 삼키는 센트리·보이드와 맞선다.
앞서 ‘하자 있는’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과거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이번 영화의 주인공들은 다 ‘빌런이었지만 개과천선한 쩌리들’이었다. 러시아의 암살 첩보조직 레드룸이 만들어낸 인간병기 엘레나 벨로바(플로렌스 퓨 분)나 앤트맨의 숙적이었던 고스트(해나 존 케이먼 분), 냉전 시절 미국의 캡틴 아메리카에 맞서 소련이 만들어낸 레드 가디언이자 블랙 위도 엘레나 남매의 가짜 아버지였던 알렉세이 쇼스타코프까지. 캡틴 아메리카 관련 인물은 더 있다. 캡틴 아메리카의 숙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됐던 ‘윈터 솔저’ 버키 반즈, 그리고 존 워커. 비브라늄 방패를 받아 스티브 로저스를 잇는 캡틴 아메리카가 됐으나 친구의 죽음에 분노한 존 워커는 방패로 악당을 내리찍어 살인을 저지르고 방패를 회수당했다. ‘캡틴 아메리카’ 자격이 박탈된 거다. 이번 <썬더볼츠*>에서 탄핵심판을 받는 CIA 국장이 그에게 부여한 새 이름이 ‘US 에이전트’이지만, 시리즈의 팬들은 그에게 ‘짭틴 아메리카’라는 별명을 부여했다. 이들로 다시 어벤져스를 만든다고? 어벤져스를 만들기엔 영웅으로서 자격이 한참 미달인 자들이 아닌가.
상처의 극복과 연대가 영웅을 만든다
영화는 노골적으로 이걸 셀링포인트로 삼았다. 과거 DC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인 <블랙 아담> 리뷰에서 이 ‘히어로물’에 대한 상식적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슈퍼맨> 시리즈에서 연인 로이스 레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신문기자 클라크 켄트가 안경을 벗고 짠! 가슴에 S자가 적힌 쫄쫄이를 입고 나타나 구할 수 있다 치자. 그런데 사건·사고라는 건 슈퍼맨이 로이스를 구하고 있는 와중에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인과로도 벌어지고 있을 텐데? 요컨대 영웅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행을 막는다는 거, 애당초 가능한 일이었을까. 의문을 확장한다면 완벽한 히어로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웅뿐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 누구나 그렇다. 누구든 진저리치며 떠올리기도 싫은 흑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막강한 빌런 센트리·보이드는 그 약점을 파고든다. 신(神)적 존재인 센트리는 말 그대로 흑화되면서 ‘보이드’가 됐고, 그의 눈에 띄는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마치 핵폭발 순간 증발하는 것처럼 그림자만 남는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죽는 게 아니라 자기 인생의 가장 쪽팔리는 순간이 되풀이되는 무간지옥에 갇히는 것이다. 그리고 완벽한 영웅이 아닌, 어딘가 하나씩 결핍한 그들이 남들처럼 자신도 상처를 안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서로를 의지할 때 진짜 영웅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영화는 설파한다. 극장 문을 나설 때 오랜만에 가슴 뛰는, 짜릿한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마블이 슈퍼히어로물 영화의 초심으로 돌아갔다.
‘뉴 어벤져스’에서 K팝 그룹 뉴진스 개명 소동을 떠올리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들이 만든 ‘새로운 어벤져스’가 과연 어벤져스 이름을 사용할 자격이 있을까. 아이언맨이나 헐크,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등에 비하면 너무 ‘하바리’ 아닌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영화들의 특징은 보통 2개의 쿠키 영상을 제공하는데 앞서 쿠키 영상이 그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의 이야기를 커버에 올린 ‘롤링스톤스’나 ‘뉴요커’ 등의 표지 기사는 아마도 그 논란을 다룬 모양이다. 미국의 대표 주간지들이 이들에게 붙인 별명은 B벤져스. 어벤져스(Avengers)의 ‘A’를 B로 대체해 이들이 B급 영웅들이라고 조롱·야유하는 것이다. 심지어 바로 직전 영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2025)에서 하위호환이었던 팔콘 샘 윌슨이 캡틴 아메리카로 이미 등극한 참이다. ‘짭틴’이 중심인물로 참여하는 어벤져스의 정통성은 의심받게 마련이다. 설상가상으로 이 덧붙여진 쿠키 영상에 따르면 샘 윌슨은 특허청에 어벤져스 상표권을 이미 등록했고, 이들 ‘뉴 어벤져스’를 상표권 침해로 소송까지 걸었다. 이들이 생각해낸 고육지책은 Avengers의 s를 z로 바꾸는 것. 그러니까 이 새로운 어벤져스는 어벤져즈가 되는 셈이다. 아마도 K팝 팬덤에겐 민희진 퇴출 이후 뉴진스가 이름을 바꾼 뉴진즈(NJZ) 소동이 떠오르리라.
<썬더볼츠*>가 한국 팬에게 기대를 모았던 대목 중 하나는 기대작 <어벤져스: 둠스데이>(2026년 개봉 예정)의 닥터둠과 맞설 센트리·보이드 역을 맡을 예정이었던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의 출연이었다. 코로나19와 배우조합 파업으로 계약은 어긋나고, 그 자리는 유명 배우 빌 풀먼의 아들 루이스 풀먼에게 돌아갔다. 영화를 보면서 스티븐 연이었다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했는데 모든 캐릭터엔 거기에 맞는 배우가 딱 한 명 있다는 격언처럼 루이스 풀먼의 연기는 훌륭했다. 배역을 못 맡게 된 스티븐 연이 무척 아쉬워했다고 하는데 지금처럼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아간다면 머잖아 다른 마블 영화에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