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인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군인들이 국회 본청으로 이동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주요 장성급 지휘관들이 군의 명예와 양심을 실추시켰으나, 영관급 장교들이 군의 자존심을 지키는 버팀목 역할을 했다.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단장(대령)과 김형기 육군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중령), 김문상 전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대령) 등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에서도 일관되고 확고한 증언으로 군의 명예를 지켰다.
고위 장성들은 불법 계엄에 ‘맹종’했으나 이들 영관 장교들은 상부의 명령이 ‘부당한 지시’임을 직감했다. 그들의 상관들은 긴박한 상황을 핑계로 명령의 불법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군인 누구도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불법 명령을 거부했다.
■“위법입니다”
군의 법무 조직에서도 상부 지시가 불법 명령이라며 병력 이동을 막은 법무관들이 있었다. 법무관 윤비나 대령(육사 60기)과 류가영 중령(법무 77기)이 그들이다.
12·3 비상계엄 당시 방첩사령부 법무실장이었던 윤 대령은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압수 지시에 대해 “포고령 발령 전의 행위로 압수 등 수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로 반대했다. 윤 대령을 포함한 방첩사 법무관 7명 전원은 “헌법 및 계엄법에 위반된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방첩사 법무관들은 “계엄령이 선포됐다 하더라도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범죄 혐의를 특정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위법한 증거 수집행위가 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 결과 방첩사 작전요원들은 거리를 배회하는 등의 태업으로 임했다. 과천청사 인원들은 선바위역 인근에서, 관악청사 인원들은 사당역 인근에서, 수원연수원 인원들은 의왕휴게소에서, 여론조사 꽃 인원들은 잠수교 인근에서 대기하다 계엄 선포 다음 날 새벽 1시 40분쯤부터 복귀해 3시 18분에 모두 귀대했다.
당시 육군 1군단 상황도 비슷했다. 1군단은 상급 부대인 지상작전사령부 지시가 헌법을 어긴 불법 계엄령에 근거한 위법 명령이라고 판단해 일체의 병력 이동 준비를 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1군단 법무실장인 류가영 중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류 중령은 병력을 동원한 군경합동상황실 구성 자체가 위법 사항이라고 주성운 1군단장(중장)에게 보고했다. 류 중령은 계엄 발령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자체가 헌법을 위반한 행위이기 때문에 계엄령 선포에 따른 군경합동상황실 구성 역시 합법적인 지시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1군단은 사령부가 서울과 바로 인접한 경기 고양시에 있고, 예하 1·9·25사단본부 역시 고양시와 파주시에 걸쳐 있어 1군단 병력이 움직일 경우 그 파장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불법 계엄 사태에서 1군단의 움직임은 주목할 부분이었다.

지난 2월 27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제81기 졸업 및 임관식이 열리고 있다. 문재원 기자
그러나 3군단 예하 21사단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병력이 완전무장을 한 채 양구군청 통합방위상황실과 CCTV 관제센터에 진입해 물의를 빚었다. 3군단 측은 “통합방위법 규정에 따라 사전준비 지시가 있어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던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1군단 조치와는 대비된 행위였다. 당시 육군 2군단도 계엄상황실 설치를 위한 준비 활동을 하다 계엄령이 해제되면서 상황을 종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강호필 육군 지상작전사령관(대장)은 계엄령이 선포되자 예하 부대 군단장들과 사단장을 긴급 소집해 화상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강 사령관은 경계태세 2급 격상에 따른 군사대비태세 유지를 지시했다. 그는 “각 군단장과 사단장들은 경계태세 2급 발령에 따른 상황 등을 확인하고 필요사항을 조치한 후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강 사령관의 지시에는 2급 경계태세에 따른 군경합동상황실 구성 준비도 포함됐다.
결과적으로 강 지작사령관의 지시는 계엄령 해제와 함께 철회됐지만, 헌법을 위반한 불법 계엄령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 만큼 지작사령부 법무실장(대령)은 계엄령 수행을 위한 계엄상황실 설치가 불법적인 행위라는 점을 강 사령관에게 보고했어야 했다. 그러나 법무실장이 비상계엄에 관한 법무 조언을 사령관에게 했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육군 법무 조직의 최고 책임자인 김모 법무실장(준장·법무 66기)은 한술 더 떴다. 군검찰 공소장을 보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육사 46기)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육본 참모진에게 계엄사령부 지원 인력을 서울로 이동시키라고 지시했다. 이에 육본 참모 34명이 계엄 선포 이튿날인 지난해 12월 4일 오전 3시 3분쯤 대형 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를 출발했다. 이때는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결의한 시점보다 2시간이 지난 뒤였다. 버스에는 전시 군사작전과 지휘사항을 송·수신할 수 있는 전장망(군합동지휘통제체계) 운용 장비도 실려 있었다.
버스에 탄 34명 중에는 김 법무실장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비상계엄이 불법인 것은 물론 계엄령이 해제된 이후의 계엄사령부 참모진 구성과 이동 자체가 불법임을 박 전 육군총장에게 주지시킬 의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그는 박 전 육군총장의 불법 지시를 수행했다. 그런 법무실장을 보고 다른 육본 소속 부장과 실장 등 장군들은 불법성에 대한 별다른 의심없이 버스에 탑승했을 것이다.
■참모로서의 ‘군 법률가’
미 육군 교리는 제1의 핵심가치인 충성의 대상을 헌법, 군, 부대, 전우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군도 헌법이 충성의 대상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동원된 특전·수방·정보·방첩 사령관은 헌법보다 상관에 대한 충성을 앞세웠다. 반면 수방사 1경비단장과 특전사 1특전대대장 등은 헌법의 수호대상인 국민을 택했다.
헌법과 계엄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군 법무 조직에서 최고 책임자를 포함해 일부 법무 참모들은 12·3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지적하기는커녕 지휘관의 위법적인 지시를 따랐다. 불법적인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군 법무 기능과 법무관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군에서 법무관 역할은 사회 법조인이 하는 일과는 매우 다르다. 법무관에게는 군내 사건·사고에 대한 군사재판보다 법무 참모 역할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법무관은 전투 작전이나 교전규칙 해석과 같은 전쟁법은 물론 외국군과의 연합작전을 위한 국제법에도 해박해야 한다. 이는 지휘관이 올바른 결심을 하는 데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국가안보실 국방개혁 비서관을 지낸 강건작 예비역 중장은 최근 발간한 <강군의 조건>에서 한국군이 벤치마킹하는 미군에서 법무관의 역할을 소개했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군 법무관은) 지휘관의 명령과 지시의 준법성을 확인하고 평시 작전, 훈련, 부대 활동, 행정 등에서 법적 조언을 해 미군의 활동이 법치주의 틀 안에서 행해지도록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대와 장병 개인이 법적 문제에 관여했을 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법무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군대는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만 움직이게 되고, 불법 계엄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