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징계를 두려워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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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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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얼굴에는 깊은 수심이 있었습니다. 공무원 B와 크게 다투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손에 잡힌 문구류를 집어던진 일 때문에 ‘특수공무집행방해’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으로 기소됐기 때문입니다. ‘특수’라는 단어는 A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A는 필자와 대면 상담했습니다. “변호사님, 저… 정말 감옥에 가게 되는 건 아닐까요?” A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사건 기록을 검토하던 변호사의 눈빛이 반짝였습니다. 사건의 이면에는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피해자인 공무원 B 역시 민원인 A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여러 차례 퍼부었던 것입니다. 변호사는 여기에 집중해서 치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공무원 B와 함께 그 욕설을 당직실 바로 옆에서 들었던 동료 공무원 C를 나란히 증인으로 신청했습니다.

드디어 공판일, 법정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증인들은 오른손을 들고 진실만을 말할 것을 엄숙히 선서했습니다. 먼저 증인석에 앉은 것은 피해자 B였습니다.

“증인(B), 피고인에게 욕설한 사실이 있습니까?” 변호인이 차분하게 물었습니다.

“아니요, 없습니다.” B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정말 욕설한 사실이 없습니까?”

“네. 없습니다. 물론 말을 좀 짧게, 반말로 한 적은 있습니다만, 욕은 절대 안 했습니다.”

“피고인은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소정의 피해 배상을 받고 원만히 합의할 의사는 없으신가요?”

“없습니다!” B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저 사람, 엄중히 처벌해주십시오!”

변호인은 B의 퇴정을 요청하고, 곧바로 동료 공무원 C를 증인석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증인(C), 공무원 B가 피고인에게 욕설하는 것을 들었습니까?”

“네.” C는 차분하지만 분명하게 답했습니다.

“동료 B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는데, 증인은 들은 것이 확실합니까?”

“네. 여러 번 욕하는 것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변호사는 재판장의 허락을 받아 추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 욕설을 들었다면, 듣는 사람의 기분이 어땠을 것 같습니까?”

“… 좋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법정 안의 공기가 순간 차갑게 얼어붙었습니다. C가 굳이 동료인 B를 모함하기 위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어 보였습니다. 반면 B는 자신의 불리한 행동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할 동기가 충분했습니다. B의 증언은 위증일 가능성이 높았고, 더욱 심각한 것은 단순 위증을 넘어 피고인 A를 불리하게 만들려는 ‘모해위증죄’에 해당할 수 있었습니다.

징계 대신 합의를 선택한 이유

변호인은 이 모든 상황을 B에게 정중하게 전달했습니다. 즉 C가 B와 정반대의 증언을 했다는 사실, 모든 증언이 재판부에 녹취돼 있다는 사실(법원이 법정 녹음하고 증언 녹취서를 제작합니다), 그리하여 ①모해위증죄 형사처벌의 위험 ②그리고 위증과 욕설로 인한 품위손상(지방공무원법 제55조) 위반 징계 가능성 등입니다. 자신이 파놓은 함정의 깊이를 깨닫게 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며칠 후, B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는 A에 대한 ‘처벌불원서’, 즉 합의서를 작성해주기로 했습니다. A에 대해 강경하게 처벌을 외치던 모습은 사라졌고, 오히려 B는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사과까지 했습니다.

덕분에 A는 단 한 푼의 합의금도 지불하지 않고 사건을 원만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판결문에도 “이후 피해자와 합의한 점”이 유리한 정상으로 기재됐고, 선처를 받았습니다. A는 변호인에게 몇 번이고 허리를 굽혀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몇 년 전 필자가 변호한 사건이었습니다. 만약 B가 법정 증인 선서 후 자신의 욕설 사실을 부인한다면? 위증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당시 상황을 들었던 동료 공무원 C의 증언이 있었기에 B의 위증은 탄로 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변호인으로서, 증인들의 예상 증언 시나리오를 그렸고, 실제로 들어맞았습니다.

공무원이 위증의 범죄행위를 하거나 민원인에게 욕설을 한다면, 국가공무원법 또는 지방공무원법에 따른 엄중한 징계 사유에 해당합니다. 징계는 견책, 감봉에서부터 정직, 강등, 해임, 파면에 이르기까지 공무원의 신분 자체를 박탈할 수 있는 무거운 처분입니다. 자신의 부적절한 언행을 인정하고 사건의 빌미를 제공했음을 시인할 것인가, 아니면 거짓 증언으로 위증죄 처벌과 함께 공무원 생명까지 위협받는 징계의 칼날 위에 설 것인가. B는 법정에서 A에 대한 엄벌을 탄원했지만, 동료 C의 증언과 위증 및 징계의 위험성이 명확해지자 태도가 급변했습니다.

결국 B는 A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작성하며 합의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A를 용서했다기보다는, 위증죄 처벌과 그에 따를 징계라는 더 큰 파국을 피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이지 않는 징계의 두려움이 사건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예상치 못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습니다. 공직 사회의 윤리성과 책임감 그리고 정비된 징계 절차가 왜 중요한지를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엄중해지는 징계 시스템

징계 시스템은 시대적 요구와 운영상의 필요에 따라 계속해서 정비되고 있습니다. 최근 입법된 국가공무원법 제83조 제4항(2025년 7월 1일 시행 예정)이 그 예입니다. 개정법의 주요 내용은 징계 절차를 진행하는 행정기관이 감사원이나 검찰, 경찰 등 수사기관으로부터 조사·수사 자료를 보다 구체적으로 요청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한 점입니다. 이제 기관장은 감사보고서, 문답서, 확인서뿐만 아니라 신문조서, 진술조서, 공소장, 불기소 결정서 등 징계에 필요한 다양한 자료를 공식적으로 요청할 수 있게 됩니다.

징계 사유를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 확보를 용이하게 해 보다 엄정하고 정확한 징계 심의를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만약 앞선 사례의 B가 개정된 규정하에 있었다면 자신의 위증을 덮으려는 시도를 하더라도 더욱 명백한 증거(수사기관의 진술조서·신문조서 등)에 의해 좌절될 가능성이 커졌을 것입니다.

일반 공직자에 대한 행정적 통제로서 징계가 있다면, 헌법과 법률은 국가 운영의 정점에 있는 최고위직 공직자라 할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중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엄중한 절차와 기준을 마련해두고 있고, 실제로 최근 헌법재판소 결정들이 그렇습니다.

헌재는 2025년 4월 4일, “대통령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해악이 중대하여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커야 한다”는 기준을 다시금 확인했고,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행위”라고 판단해 파면이라는 징계양정이 적정하다고 선언했습니다(2024헌나8).

“두려워하는 마음은 매우 중요하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사람은 한 발 한 발 전진할 수 있다”(만화 <닥터 노구찌> 중에서)고 합니다. 징계를 두려워하는 마음과 조심스러운 행동은 결국 사회를 이롭게 할지 모릅니다.

<한용현 변호사 lawyer_h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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