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관세 직격탄 속 중국의 ‘반미 전선’에 응하기도 어려워 난감
누구 편도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고난도의 외교 묘수 찾기 부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지난 4월 16일 푸트라자야 총리 관저에서 악수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기 행정부(2017~2021년) 때 벌어진 1차 미·중 무역전쟁의 가장 큰 수혜자는 동남아였다. 중국은 미국의 무역 규제를 피하면서 대미 의존도도 줄여야 했고, 미국은 여전히 저렴한 상품을 필요로 했다. 제조업 공급망은 동남아 국가에 자리를 잡으며 새로운 가치 사슬을 형성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동남아 국가들에 ‘이중혜택’은 ‘이중압박’으로 돌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현지시간)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캄보디아(49%), 베트남(46%), 인도네시아(32%), 말레이시아(24%) 등 동남아 국가들에 직격탄을 날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4월 14~18일 베트남,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를 찾았다. 시 주석의 올해 들어 첫 해외 순방이자, 미국과 관세 펀치를 주고받으며 관세율을 100% 넘게 끌어올린 직후 이어진 일정이다.
시진핑 방문에 동남아 난감한 처지 더 두드러져
동남아의 난감한 처지는 시 주석 방문으로 더욱 두드러졌다. 시 주석은 올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순회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에서 “아시아 가족들이 힘을 합쳐 일방주의와 보호주의라는 반동을 극복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는 시 주석 순방 기간 중국 관영매체 CGTN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믿을 만한 파트너”라고 밝혔고, 텡쿠 자프룰 아지즈 말레이시아 무역장관은 시 주석의 순방 전 BBC에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할 수 없고, 절대 선택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우리 이익에 반하는 문제가 있으면 우리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미·중 균형외교를 추구하는 국가다.
시 주석은 앞서 사회주의 우방국이지만 미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베트남에서 중국과 ‘운명공동체’를 형성해 미국의 일방적 괴롭힘에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베트남은 공동성명에서 미국에 대한 언급 없이 철도 등 경제협력을 강화한다는 메시지만 담았다. 시 주석은 3개국 중 가장 마지막에 방문한 전통적 친중 국가인 캄보디아에서는 “힘을 합쳐 패권주의에 맞서야 한다”며 더 수위 높은 표현을 던졌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4월 21일 “누구든지 중국의 이익을 걸고 (미국과) 협상하면 반격하겠다”고 발표했다. ‘운명공동체’와 ‘아시아 가족’을 향해 들이민 청구서라고 해석된다. 이날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에서 수입하는 태양광 제품에 대해 최대 3521%의 반덤핑 관세와 상계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미국 태양광 제조업체들이 각국의 기업이 중국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며 문제 제기하면서 나온 결과다. 중국기업인 진코 솔라가 말레이시아에서 제조한 제품은 이날 언급된 업체들 가운데 가장 낮은 41.56% 관세의 대상이 됐고, 중국에 본사를 두고 타이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트리나 솔라에는 375%의 관세를 부과했다. 일부 캄보디아 업체는 미국 조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3521%의 관세를 부과받았다. 미국은 동남아 국가에 관세율 인하 조건으로 중국과의 거래 중단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동남아 국가 수출품이 주로 향하는 곳은 미국이다. 2024년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총 1366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34%,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한다. 말레이시아의 대미 수출은 총 525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16%, GDP의 12%를 차지했다. 캄보디아는 미국에 전체 상품 수출의 38%에 해당하는 99억달러를 수출했다. 중국의 ‘반미 전선’에 쉽게 응할 수 없는 이유다. 중국은 군사적 보복도 가능하다.
동시에 중국은 동남아의 가장 큰 경제 파트너다. 수출 공급망에서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 시장으로 수출되는 베트남 의류 원자재의 60~90%는 중국에서 수입한다. 중국은 16년 연속 말레이시아의 최대 교역국이고, 미국은 말레이시아의 해외직접투자(FDI) 상위 3위 안에 꾸준히 포함됐다.
미 시장 잃은 중국 상품이 동남아로 쏟아질 수도
중국이 동남아에 줄 수 있는 선물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시 주석은 순방 기간 베트남과 45건, 말레이시아와 31건, 캄보디아와 37건의 협정을 체결했다. 중국이 약속한 투자는 철도, 농업, 디지털 등의 인프라와 관련돼 있다. 경제 발전에 필수적이지만 장기 프로젝트다. 차관 형태로 지원돼 경제협력이 예속될 수 있다는 맹점도 있다.
반면 미국 시장을 잃은 중국 상품이 즉각 동남아로 쏟아질 것이라는 우려는 더욱 크다. 시 주석은 중국·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 업그레이드를 약속했지만, 미국을 대체하는 수출시장으로서의 역할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중국상품이 동남아로 더 많이 쏟아져나와 산업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도네시아에서 미·중 관세전쟁의 여파로 중국산 제품 유입에 따라 섬유 일자리만 20만개 넘게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를 인도네시아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3일 품목별로 중국의 관세율을 절반 이상 인하할 뜻을 밝혔지만, 동남아 업체 입장에서는 딜레마다. 고율 관세가 유지돼 중국이 미국 시장을 잃으면 동남아 시장이 초토화되고, 중국의 고율 관세는 인하되는 반면 동남아 국가의 관세가 크게 낮춰지지 않으면 동남아가 미국 시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광저우에서 미국에 주로 수출하는 베트남 의류업체에 부자재를 공급하는 한 한인 사업가는 “중국 농촌의 임금은 베트남 대도시보다 저렴하다. 중국에서도 내수 포화상태라 동남아 신흥 공업지구와 중국 농촌이 미국 등 수출 시장을 두고 저가·저임금 출혈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관세전쟁 결과에 따라 “경쟁이 더욱 가혹하게 펼쳐질 수 있다”고 전했다.
베트남 출신인 캉 부 보스턴칼리지 정치학과 방문학자는 미국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에서 “베트남은 (안보 문제 때문에)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미국에 맞서 중국 편을 들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베트남이 미국 편을 들기로 결정한다면 중국의 보복은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안보 및 경제적 이익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고 전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고난도의 외교 묘수가 요구되고 있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