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가 파견 나온 외국 의사와 함께 신장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최병현 제공
얼마 전, ‘대한신췌장이식외과 연구회’에 참석했다. 국내 신장·췌장이식 외과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최신 지견을 나누고 친교를 쌓는 자리다. 벌써 몇 년째 모여 부대끼다 보니 전국에서 유명한 이 분야 이식외과 교수들과 다 친해졌다. 그래서 이 모임에 가는 것이 즐겁고 기다려진다. 이식하는 사람들의 삶은 이식하는 사람들이 알아주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뇌사자 신장이식의 대기기간이 7년이 넘었다. 하지만 서울의 이식외과 선생님들에 따르면 체감 대기기간은 10년이 넘는다. 그것이 통계의 함정이다. 간혹 뇌사자와 조직형이 운 좋게 일치해 1~2년 안에 이식받는 경우가 있어 평균값을 낮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좁은 땅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유전자의 다양성이 다른 나라들보다 적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가끔 존재한다. 그렇게 운 좋은 분들이 뇌사자 대기기간의 평균을 낮추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뇌사자 신장이식을 받는 대부분은 10년에 가까워지는 게 맞는 것 같다. 물론 신장은 간과는 다르게 투석이라는 대체수단이 있기 때문에 당장 신장이식을 받지 않더라도 사망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10년씩 투석하면서 지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의 투석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고 신장내과 선생님들이 투석환자를 잘 돌보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도 투석환자의 생존율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미국의 경우 특히 당뇨로 인해 신장이 망가진 분들의 생존율은 암환자의 생존율과 같거나 오히려 더 낮은 경우도 있다. 투석하면서 아무리 열심히 건강관리를 하더라도, 삶의 질은 점점 더 나빠지며, 몸의 다른 부분에 손상이 쌓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말기 신장병에서는 신장이식만이 완치에 가까운 유일한 방법이다.
고령화로 말기 신장병의 악순환 우려
지난해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의·정 사태 때문에, 지난해의 뇌사 장기기증자 수는 397명으로 급감했다. 2012년 이후 400명 아래로 뇌사 장기기증자 수가 줄어든 적이 없는데, 2024년의 급감은 그 정도로 심각한 일이다. 그리고 올해는 체감상 지난해보다 더 적어진 것처럼 현장에서 느껴지는데, 이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뇌사자 수가 이렇게 적어지면, 뇌사자 장기이식의 대기기간은 더 늘어날 것이다. 단지 숫자만이 문제가 아니라 뇌사 장기기증자의 나이도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급속히 초고령화 사회로 바뀌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신장은 다른 장기에 비해 나이가 들수록 기능이 많이 떨어지는 장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60세 이상의 뇌사 기증자의 경우,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지병이 없더라도 ‘확장된 범주(Extended criteria)’의 기증자로 분류된다. 그런데 말기 신장병의 원인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당뇨의 경우 젊은 사람들에게 그 유병률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투석이 필요한 사람의 수가 증가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아직 기대여명이 충분히 남은 젊은 말기 신장병 환자에게 나이 든 뇌사자의 신장을 이식하면 그동안 아무리 수술 기술과 면역억제제가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이식 장기의 장기 생존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그러면 또다시 투석을 받게 되고, 그렇지 않아도 고령화로 인해 말기 신장병이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가 더 가속화될 것이다.
뇌사자의 신장은 지역별로 뇌사자의 권역이 나뉘어 분배된다. 서울과 수도권, 강원도와 제주도가 1권역, 충청도와 전라도가 2권역, 경상도가 3권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래서 권역 내에서 발생한 뇌사자의 경우 신장이 그 권역 내의 신장이식 대기자에게 우선적으로 배정된다. 그런데 의·정 사태의 영향으로 인력이 부족한 지방대학병원의 뇌사자 발굴이 특히 감소했고, 역시 이식하는 외과 의사도 줄어들어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뇌사자 신장이식의 대기기간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이번 ‘신췌장이식외과 연구회’에 참여한 부산지역의 외과 의사는 나를 포함해 2명뿐이었다. 의·정 사태로 필수의료에 지원하는 신규 의사의 수도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인지에 대한 전망은 극히 불투명하다.
지방에 이식할 의사 없어 서울행 당연시될 수도
신장이식의 경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간이나 폐, 심장이식과는 다르게 신장이식 수혜자의 신장을 그대로 놔두고 오른쪽이나 왼쪽 하복부에 이식하게 된다. 그래서 신장이 3개가 된다. 이것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이때까지 몰랐다며 신기해하는 환자가 많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다수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신장이식 수술은 다른 장기, 예를 들어 간이나 췌장이식보다는 훨씬 간단하고 빨리 끝나는 수술이다. 물론 장기이식 수술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난이도는 있지만, 상대적으로는 쉬운 장기이식이다. 그래서 신장이식을 위해 굳이 지역에서 벗어나 수도권의 큰 병원으로 옮길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런데 앞으로는 지방에 이식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서 지방에서 받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서울 쪽으로 가야 하는 경우가 생길까봐 두렵다.
장기이식을 전문으로 하는 외과 의사로서, 또 지방대학병원의 교수로서, 나는 내가 있는 자리를 사수할 것이다. 버티다 보면 새로운 해가 뜰 것이고,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현실에 대한 어떤 푸념을 해봐도 바뀌는 것은 없다. 언젠가 후배들이 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 길이 지워지지 않게 지켜내는 것이 내가 할 몫이 아닐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언젠가 이식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생명의 다리를 놓는 데 함께해주길 바란다. 장기기증에 대한 관심, 필수의료에 대한 지지, 그리고 지역의료를 지켜내는 연대가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