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군 장성 인사, ‘대선 전’ vs ‘대선 후’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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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중장 진급·보직 신고 및 삼정검 수치 수여식에서 참석자들이 삼정검을 들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중장 진급·보직 신고 및 삼정검 수치 수여식에서 참석자들이 삼정검을 들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군대에서 진급은 민간 사회의 승진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군인에게 진급이란 민간 기업이나 공무원 조직의 승진과 견주면 그 절실함이 훨씬 크다. 군인에게 진급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감과 명예, 보람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인에게는 진급 적기라는 게 있어서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 기회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인사철만 되면 장교들은 진급에 유리한 보직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진급은 전투, 보직은 전쟁’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군대에서 인사철만 되면 국립현충원과 국군교도소까지 들썩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현충원에 묻힌 군인들까지 인사 내용을 궁금해하고, 그 결과를 놓고 왈가왈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국군교도소에 수감된 군인까지 진급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있나 찾아본다는 조크다.

매년 4월쯤 단행되는 전반기 정기 장성 인사를 놓고 군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올해는 전반기 장군 인사의 실시 여부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4월이나 5월 실시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이후 연기를 주장하는 분위기다.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은 지난 4월 14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전반기 장군 인사 진행 여부에 대한 질문에 “시기적으로 4~5월에 해왔고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4~5월에 할 수 있다”며 “(육·해·공군) 총장들과 관련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에 김 의원은 “지금 하면 안 된다. 지금 군은 비상계엄에 관여돼서 국민적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며 “6월 3일 대선 이후 다음 대통령이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김 직무대행의 인사 추진 의지를 막은 것이다.

4월 이뤄지던 인사, 8월의 전례는 있어

올해 육군의 전반기 장군 인사는 보직 이동과 진급 대상이 예년에 견줘 넓게 열려 있다. 육군은 ‘불법 계엄’ 후폭풍으로 육군참모총장과 방첩·특전·수방·정보 사령관 등 핵심 사령관 직위가 공석이기 때문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후반기 인사에서 곽종근 특전(육사 47기), 여인형 방첩(육사 48기), 이진우 수방(육사 48기), 문상호 정보(육사 50기) 사령관 등을 불법 계엄에 동원하기 위해 육군 중장 인사를 하지 않았다. 이 바람에 김성민 5군단장(육사 48기) 등 중장 1차 진급자들은 중장 2차 진급을 하지 못했다. 육사 50기 소장들의 첫 군단장 진출도 이뤄지지 못했다. 과거 후반기 육군 장성 인사를 보면 2014년 5명, 2015년 7명, 2016년 4명, 2017년 10명, 2018년 4명, 2019년 5명, 2020년 6명, 2021년 6명, 2022년 3명, 2023년 7명의 육군 중장 진급자가 나왔다. 이처럼 지난해 후반기에는 중장 진급자가 없어 올해 전반기 인사를 하게 되면 대상의 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

김 직무대행은 국회에서 “군 인사라는 것이 어떻게 정치 일정에 맞춰서 할 수 있겠느냐”며 “시기를 놓치면 인사 관리에 심대한 문제가 생긴다”고 밝혔다. 공석인 직위뿐만 아니라 4월에 전역하는 장군도 있고, 전역으로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문제도 겹쳐 있다는 것이다.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 지난 1월 14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위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이 지난 1월 14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위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매년 4월 이뤄지던 군 장성 인사가 8월에 이뤄진 전례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이어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2017년이다. 그러나 당시 8월에 대장 7명이 전원 교체됐고, 중장 이하 인사는 한 달 보름이 지나 이뤄지면서 ‘육군 사격장 유탄 사망사고’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났다. 정기 인사가 지연되면서 임기를 넘긴 지휘관들의 피로도 가중과 후속 인사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부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결과였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지금의 군은 스페어(예비) 타이어로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있는 차량이나 마찬가지여서 빠른 수리가 필요한 상태”라고 비유했다. 안보 위기지수가 높아지면 한반도 안보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것도 변수다.

올해도 전반기 장성 인사가 6월 3일 대선 이후로 미뤄질 경우 새 정부의 국방부 장관이 취임하고 군 인사를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2017년처럼 8월쯤 인사가 이뤄질 공산이 크다.

군 내부에서는 정권 교체와 같은 정치적 움직임에 군이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야 합의와 관계없이 전반기 장성 인사를 4~5월에 실시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차라리 예정대로 인사를 해야 권력 핵심부나 정치권에 줄 대는 정치군인들을 배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육군참모총장만 원포인트 인사하나

야당 측에서는 군이 불법 계엄에 관여돼 있는 만큼 전반기 장성 인사를 6월 이후로 늦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선 이후 새로 취임할 대통령이 통치권 차원에서 군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정치 일정에 맞춰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인사에서) 한 달은 별 차이 없다”면서 “장군 인사를 하면 쿠데타 잔존 세력을 심는다고 국민이 의심할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 오해를 받으면서 다시 군의 신뢰를 추락시킬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총장이 모두 ‘대행’ 체제인 상황에서 정상적인 장군 인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나온다. 군 장성 인사는 각 군 참모총장의 추천과 국방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전반기 장성 인사가 대선 전에 이뤄지면 고창준 육군참모총장 직무대리의 추천과 김선호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의 제청을 거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게 된다. 직무대리와 직무대행, 권한대행으로 이어지는 인사 절차는 아무래도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게다가 아직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관련 현역 군인들의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군 내 어느 선 누구까지 가담했는지도 명확지 않아 군 인사를 하기도 부담스럽다.

군 장성 인사를 윤석열 정권의 ‘알박기’ 차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 의원이 “12월 3일부터 2월 20일까지 (정부가) 인사 공고만 53회, 3월 25일 기준 15개 기관 63명이나 임명했다”며 “국방부도 ‘알박기 장군 인사를 4~5월에 하는 것 아니냐’라는 의혹이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문제는 하염없이 늘어지는 군 인사로 인해 전방을 바라보며 ‘파이트 투나이트’해야 할 군인들이 납작 엎드린 채 고개를 돌려 용산과 여의도, 국방부 쪽으로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지휘·주목이라는 특성을 지닌 군에서 육군 수뇌부 공백으로 군령과 지휘체계가 허술해지면서 육군 사령부급 지휘관이나 군단장들도 복지부동하는 분위기다. 이런 배경에서 당장 육군참모총장이라도 원포인트 인사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경우 후보자는 3성 장군을 진급시키는 파격 인사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인 만큼 현직 4성 장군인 강신철 연합사 부사령관(육사 46기), 강호필 지작사령관(육사 47기), 고창준 현 육군총장 직무대리(3사 26기) 등이 후보군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 6개월짜리 시한부 육군총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원포인트 인사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성진 ‘안보22’ 대표·전 경향신문 안보전문기자 anbo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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