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쿼터 메가가 V리그에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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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김연경’ 별명…고국서 ‘국민 영웅’으로 불려

‘인도네시아의 김연경’으로 불리는 메가 선수가 지난 4월 6일 챔피언결정전 4차전을 마친 뒤 눈물을 보이고 있다. KOVO 제공 사진 크게보기

‘인도네시아의 김연경’으로 불리는 메가 선수가 지난 4월 6일 챔피언결정전 4차전을 마친 뒤 눈물을 보이고 있다. KOVO 제공

고희진 정관장 감독은 그날을 잊지 못한다.

2023년 4월 21일, 제주 썬호텔에서 열린 2023 한국배구연맹(KOVO) 여자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 고희진 감독은 인도네시아 출신 아포짓스파이커(Opposite Spiker·OP)인 메가를 호명했다.

아시아쿼터 제도는 아시아 배구 간 교류 활성화와 팀 전력 상승을 꾀하기 위해 도입됐다.

메가는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대표팀에 뛰었던 경력도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배구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는 수준 차이가 난다. 정관장이 메가를 선택했을 당시 인도네시아의 세계랭킹은 59위였다. 한국과 20위 이상 차이 나는 순위다.

아포짓스파이커로 선발 ‘모험’

게다가 메가의 신장은 185㎝로 엄청나게 큰 키는 아니었다. 또한 아시아쿼터를 아포짓스파이커로 선발하기란 쉽지 않은 모험이었다. 메가가 아포짓스파이커 자리를 채우면 외국인 선수를 아웃사이드 히터로 선발해야 한다. 메가가 다른 팀 외국인 아포짓스파이커만큼 폭발력이 있어야 이 같은 전제 조건이 가능한데 검증이 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고희진 감독은 메가에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고 선택을 했다.

처음 메가를 향한 시선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무슬림인 메가는 히잡을 쓰고 경기를 뛰었는데 V리그에서는 처음 보는 생소한 풍경이었다.

이 시선은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메가는 V리그 첫 시즌인 2023~2024시즌 팀의 기둥으로 활약했다.

첫해부터 리그 득점 7위이자 팀 내 1위(736점), 공격 성공률 4위(43.95%)로 맹활약하며 팀을 높은 순위로 올렸다. 정관장은 덕분에 정규리그를 3위로 마쳤고, 7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메가의 활약이 고국에 전해지면서 인도네시아에도 열풍이 불었다. 정관장은 시즌을 마치고 인도네시아 정부 초청으로 현지에서 올스타와 친선 경기를 치렀다. 당시 정관장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구단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기존 3만명에서 10배 넘게 늘었다.

메가에게는 ‘인도네시아의 김연경’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메가는 ‘국민 영웅’으로 불렸다. 한국 무대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이 조명을 받았다.

두 번째 시즌은 더욱더 빛났다. 메가는 득점 부문 3위(802점)에 올랐고, 공격 종합 1위(성공률 48.06%)를 비롯해 오픈 공격, 시간차 공격, 후위 공격 부문 수위를 차지하는 등 공격 전 부문에서 활약했다.

고희진 감독은 “메가를 뽑은 건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메가 역시 “기회를 줘서 고마운 팀”이라고 화답했다.

메가의 공격력은 봄배구에서 더 빛났다. 정관장은 정규리그 3위를 기록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2위 현대건설을 상대로 2승1패를 기록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올랐다. 메가가 중심에서 앞장섰다.

흥국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도 1, 2차전을 먼저 내주고도 3, 4차전에서 팀이 2승을 가져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3차전에서는 양팀 최다 득점인 40점을 올렸고, 4차전에서도 38점으로 풀세트 접전 끝에 팀을 5차전까지 끌고 갔다. 5차전에서는 우승이 더 간절했던 흥국생명에 우승 트로피를 내줬지만, 김연경도 메가를 인정했다.

하지만 메가와 정관장과의 동행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정관장은 진심어린 재계약 요청을 했지만, 메가는 건강이 좋지 않은 홀어머니와 함께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다. 날씨가 따뜻하고 V리그보다 상대적으로 리그가 짧은 팀들을 선택해 가족과 가까이 있으려 했다.

2024~2025시즌 정관장에서 활약한 메가 선수 / KOVO 제공 사진 크게보기

2024~2025시즌 정관장에서 활약한 메가 선수 / KOVO 제공

고희진 감독, 공항서 눈물의 배웅

메가가 한국을 떠나던 날 고희진 감독은 공항까지 나서 눈물의 배웅을 했다. 메가는 “2년간 한국에서 뛸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면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는데 잘 마무리했고, 많은 분이 저를 알게 돼 기쁘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메가는 떠났지만, 그가 2시즌 동안 V리그를 누비면서 남긴 업적은 앞으로 한국배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쿼터 제도에 대한 보완점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첫 번째 해에는 메가 외에도 위파위가 현대건설을 통합 우승에 올려놓는 등 결과물을 냈다. 적은 몸값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동남아 선수들을 향해 효율성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두 번째 해에는 대상 국가를 기존 10개국에서 이번에 64개국으로 범위를 넓혔다. 하지만 일부 팀들의 선택이 배구 강국들에 쏠려 아쉬움을 남겼다. 여자부에서는 중국, 남자부에서는 이란 국적의 선수가 인기였다.

메가가 떠난 뒤 열린 올해 아시아쿼터 트라이아웃에서는 ‘구관이 명관’이란 말이 선택에 작용했다. 흥국생명, 한국도로공사 등은 기존 아시아쿼터 선수인 피치와 타나차와 재계약했다. 메가와 작별한 정관장은 위파위를 선택했다. 새 얼굴 중에서는 호주와 일본이 대세였다.

남자부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이어졌다. 2년 전 처음으로 V리그를 밟았던 미들블로커 바야르사이한, 에디 등 몽골 출신 선수들이 각각 현대캐피탈, 한국전력의 선택을 받았다.

메가라는 성공 사례가 있지만, 동남아 선수의 인기는 그리 높아지지 않았다.

당초 KOVO는 아시아쿼터 제도 도입을 통해 동남아 시장에 해외 방송권 판매 등의 효과를 기대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각 구단이 바라는 건 해당 시즌의 성적이기에 신장이 크고 배구 강국에 있는 선수에 대해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2024~2025시즌을 마치고 KOVO는 6년 만에 태국과 한국 올스타 슈퍼매치를 부활시키는 등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지만, 동남아로의 저변 확대로 이어질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또한 한국 배구의 국제 경쟁력에 대한 과제도 함께 언급될 수밖에 없다.

메가가 훌륭한 선수임에는 분명하지만, 세계랭킹이 20위 이상 차이 나는 인도네시아 선수만큼의 기량을 보이는 국내 선수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2024~2025시즌 통합우승을 차지한 흥국생명도 김연경이 있었기에 메가와 맞설 수 있었다.

한국 배구는 지난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 이후 올림픽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2024년 열린 파리올림픽에서는 남녀 배구가 모두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번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 김연경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다. 김연경은 “많은 분들이 배구에 관심을 가지려면 국제 경쟁력이 중요한 것 같다”며 “대표팀 선수들이 성장해서 2028년 LA올림픽, 그리고 다음 브리즈번올림픽까지 생각해 미래를 보고 계획을 잘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일본, 터키, 중국 등 해외 무대에서 뛰었던 김연경은 “해외 진출 경험을 하면 좋지만, 여건이나 상황이 좋지 않으면 좋은 선수들을 우리나라로 데리고 와서 리그 수준을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그런 선수들과 함께 리그를 치르다 보면 리그 수준이 확실히 올라가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좋은 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가는 짧게 2시즌을 뛰고 갔지만, 한국 배구가 생각해야 할 점을 많이 남기고 떠났다.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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