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워싱’, 그 음험한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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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기 전 ‘자유대학’ 소속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4월 11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떠나기 전 ‘자유대학’ 소속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년 전 이 지면에 ‘여기도 MZ 저기도 MZ’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노동 분야를 담당하던 때였다. 당시 정부는 ‘주 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이나 ‘노조 탄압’ 같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MZ세대를 명분으로 내세우곤 했다. 청년들이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기를 좋아하니 노동시간을 유연화해야 하고, 노조를 싫어하니 노조를 때려잡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주장도 황당했지만 가장 동의하기 어려웠던 건 그들이 ‘청년’을 불러내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항상 정부에 쓴소리를 내지 않는, 지금의 생활이 너무나도 행복한 청년만을 선별해 무대에 세웠다. 깔끔한 오피스룩을 입은 수도권 대기업 사무직 젊은이들, 또는 이른바 ‘인서울’ 대학생들만 ‘MZ의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과로와 갑질에 시달리고, 누구보다 노조가 간절했을 대다수 청년은 MZ라 불리지 못했다. 불평등의 흔적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 이들만을 카메라 앞에 세움으로써 세상의 그을음을 말끔히 표백하려는 의도였다고 본다.

윤석열표 ‘노동개혁’이 좌초된 뒤 청년팔이도 주춤하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전 뉴스를 보던 중 더 악랄해진 청년팔이를 교통사고처럼 맞닥뜨렸다. 윤 전 대통령이 관저에서 퇴거하는 날 지지 집회가 열렸는데, 과잠 입은 청년들을 일부러 앞쪽에 몰리게 했다고 했다. 바로 다음 날에는 대표적인 ‘탄핵 반대파’ 출마자인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한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의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며 햄버거를 먹으러 가는 사진이 보도됐다. 학생이 없는 토요일이었다. 어떤 기준으로 모집됐을까.

필요에 따라 사람을 갈라치고, 선택하고 액세서리처럼 두를 수 있는 이들을 생각한다. 누가 ‘청년’인지까지도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생각한다. 2년 전 노동개혁파 관료들은 특정 청년만을 취사선택해 실재하는 불평등을 무화하려 했다. 지금의 탄핵 반대파 정치인들은 특정 세대만을 골라 자신들의 낡음을 감추려고 한다. 이쯤 되면 ‘MZ워싱’이다. 환경을 해치는 제품을 친환경이라고 홍보하는 ‘그린워싱’ 같은. 사람도 환경도 ‘활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정말 사람과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할까?

그러나 MZ워싱이 끝내 감추지 못하는 게 있다. 철저한 갈라치기, 선택적 호명의 욕망이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관저 앞 집회 ‘1열’에 대학생들을 세우려고 50~70대를 몰아냈다고 한다. 그림을 만들기 위해 매주 탄핵 반대 집회를 채워준 중장년층을 쫓아낸 것이다. 마찬가지로 청년이라는 액세서리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는 가차 없이 청년을 버리지 않을까. 비판하는 이들을 모두 ‘반국가 세력’이라 부르고, ‘수거’해 ‘처단’하겠다고 했던 사람 아닌가.

MZ워싱이 단순히 청년세대를 불쾌하게 하는 ‘쇼’로 끝나지 않을 이유도 거기 있을 테다. 선택적 호명이 어떤 끔찍함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지난겨울 우리는 봤다. MZ워싱이 모든 세대를 겨냥하는 어떤 야만의 징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운 이유다. 비판적인 눈으로 함께 지켜봤으면 좋겠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MZ워싱은 더 자주, 더 노골적으로 나타날 게 분명하므로. 워싱으로 숨기지 못한 음험한 속내 역시 그 뒤로 불쑥불쑥 드러나버릴 것이므로.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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