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불안, 한국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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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기자

이효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으로 시작하는 기사는 유통기한이 몹시 짧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트럼프는 지난 3월 4일(현지시간)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가 이틀 만에 한 달 유예를 발표했다. 정작 한 달 뒤가 되자 80여개 국가에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도 캐나다·멕시코는 대상에서 뺐다. 급기야 4월 9일에는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 각국에 부과했던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키로 했다. 세계 경제가 그의 입을 따라 춤을 춘다. 시장은 반등했는지 몰라도 신뢰는 무너졌고, 불확실성은 커졌다. 지구인 모두가 이 시기를 버텨야 한다.

두려운 점은 ‘세계구급’ 영향력을 가진 이 엉터리 지도자의 집권이 미국 시민들의 실수나 착오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트럼프의 지지기반이 된 것은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들이다. 미국 최대 노조 중 하나인 전미자동차노조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지지를 선언했다.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미국의 공장은 더 싼 임금, 더 싼 세금을 찾아 해외로 떠났고, 남겨진 노동자들의 삶은 곤두박질쳤다. 트럼프는 관세정책 등을 내세워 ‘세계화의 패배자’들이 갖는 분노를 표로 바꿨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1944)에서 “파시즘으로 인해 자유가 완전히 좌절을 맞게 된 것은 사실 자유주의 철학에서 나오는 피할 수 없는 결과”라고 했다. 데이비드 하비는 <신자유주의>(2005)에서 폴라니의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는 권위주의 또는 심지어 명백한 파시즘에 의해 좌절될 운명이다.” 수십 년 전 예견된 결과다. 약자들을 희생시킨 자유시장 만능주의를 바로잡지 않으면 트럼프가 떠나도 미국발 불안은 반복될지 모른다.

진짜 문제는 미국발 불안이 아닐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정상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외주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하위 시장으로 쫓아냈다. 국내 기업들이 미국 등으로 공장 이전을 검토하면서 한국 내 ‘세계화의 희생자’들은 더 빠르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미 파시즘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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