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엘리트 카르텔과 한국 과학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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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오른쪽)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오른쪽)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월 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연합뉴스

과학의 본질은 자유로운 탐구와 실패를 통한 혁신이다. 그러나 한국의 관료주의는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엘리트 카르텔―학벌과 고시 합격자로 구성된 폐쇄적 네트워크―은 연구 자율성을 억압하고, 권력 유지를 위한 규제와 형식주의를 고수한다. 이들의 영향력은 정부 부처부터 대학 연구실까지 침투해 있으며, 과학계의 역동성을 말살하고 있다.

윤석열 탄핵 사태는 이러한 문제가 얼마나 구조적이며 뿌리 깊은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 최상목과 한덕수 등 엘리트 관료들은 국정을 안정시킨다는 명분으로, 국민의 고통을 외면했고 특정 정치집단의 이익을 수호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최고의 엘리트 관료라 불리는 이들은 국가적 위기보다 집단의 기득권 유지에 집중해왔다. 한국 엘리트 카르텔의 표본이 된 서울대 출신 공직자들이 주도하는 ‘모피아’ 집단은 재정 지원을 특정 분야에 편중시키고, 학연·지연을 통해 신진 연구자들을 배제하는 등 과학계의 생태계를 왜곡했다.

이러한 관료주의의 폐해는 과학적 창의성을 평가절하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2022년 국내 한 생명공학 연구팀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희귀질환치료제 개발에 근접했으나, 관료적 절차와 과도한 서류 심사로 인해 해외 투자자에게 기술을 매각해야 했다. 연구팀의 책임자는 “국내에서는 혁신적 아이디어보다 기존 프레임에 맞는 연구만 인정받는다”고 토로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행정 기술이나 관료적 통제가 지적 성장을 막는 국가는 결국 정체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국의 관료주의는 밀이 우려한 대로 ‘작은 사람들’ 때문에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없는 구조로 귀착됐다.

한국식 R&D 허상, 모방주의·정치적 과시의 한계

한국은 매년 100조원이 넘는 예산을 R&D에 투자하지만, 그 성과는 투자 규모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얼마 전 국회에서 발각된 350억원짜리 디지털 심리치료제 개발 사업은 관료주의에 포획된 한국 R&D 사업의 민낯을 보여준다. 이 사업은 35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구체적인 성과 없이 무산됐고, 349억원 규모의 인공지능 프로젝트 역시 “기술적 유의성 부재”라는 평가를 받으며 예산 낭비 논란을 낳았다.

한국 R&D의 허상은 세 가지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모방주의의 함정이다. 한국 R&D는 미국과 유럽의 기술을 단순히 복제하는 데 그쳐 독창적 연구(R)는 사라지고 개발(D)만 남았다. 실제로 한국의 SCI 논문 수는 세계 10위권이지만, 피인용지수와 기술 이전율은 30위권으로 추락했다. 이는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관료적 평가 체계의 결과다. 이런 와중에 정진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노벨상급 연구 육성”을 선언하며 ‘노벨상 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고 나섰다. 한림원장까지 노벨상에 환장한 나라다.

둘째, 원로 중심의 불공정 체계다. 연구비 배분과 프로젝트 선정은 학연과 지연에 좌우되며, 젊은 과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2023년 한 대학원생은 “지도교수가 아이디어를 가로채 국제학회에 발표했다”며 연구 윤리 위반을 고발했으나, 해당 교수는 학계 내 인맥으로 무마됐다. 이러한 구조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신진 연구자들을 좌절시키고, 연구 인력의 해외 유출로 이어지고 있다.

셋째, 정치적 목적의 프로젝트 남발이다. ‘K방역’을 주창하며 팬데믹 대응 기술을 자랑했지만, 실제 백신 개발은 동북아에서 최하위 수준으로 추락했다. 정부는 홍보용 ‘성과’에만 집중하며 실용성 없는 기술개발을 반복했다. 이는 관료들이 정책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단기적 결과를 추구하는 탓이다.

과학기술계의 엘리트 카르텔은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그들은 혁신보다 기존 질서유지를 선택하며, 국가적 역량을 서서히 좀먹고 있다.

카르텔의 그림자 넘어 과학의 새벽 열기

한국 과학기술의 장애물은 자원 부족이 아니라 엘리트 카르텔의 독점적 구조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정치적 구호도 한국과학기술을 다시 역동적으로 회복시킬 수 없다.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전 세계 과학기술 경쟁 체제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핵심 전략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투명한 연구비 배분 체계 구축’이다. 현행 연구비 심사는 익명성과 객관성이 결여돼 있다. 미국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는 익명 동료 평가와 엄격한 이해관계 철회 규정을 통해 투명성을 확보한다. 한국도 성과 중심 평가를 도입하고, 젊은 과학자에게 독립적 연구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특히 연구비 심사에서 ‘블라인드 리뷰’와 ‘열린 리뷰’ 등의 제도를 강화해 학연·지연의 영향을 차단하고 공정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둘째, ‘관료 권한의 분산과 다각화’다. 현재 정부의 R&D 정책은 소수 엘리트 관료의 독단적 결정에 좌우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학연 협력위원회를 구성하고, 연구자·기업·시민단체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해야 한다. 핀란드의 ‘테크노폴리스’ 모델은 정부, 대학, 기업이 협력해 혁신 생태계를 조성한 성공 사례다.

셋째, ‘과학적 자율성 보장을 위한 법적 기반 강화’다. 독일의 ‘학술연구자유법’은 정부의 간섭 없이 과학자가 자율적으로 연구할 권리를 보장한다. 한국도 유사한 법적 장치를 도입해 관료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창의적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한국 연구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엘리트 관료의 노예가 되어 학술연구의 자유를 박탈당했다.

과학의 발전과 관료주의가 상극인 이유는 관료주의가 혁신과 창의성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관료주의가 과학정책을 지배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보다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선택을 선호해왔다. 예를 들어, 한국의 과학정책은 종종 기존 성공 모델을 모방하는 데 집중하고, 독창적인 연구를 장려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에 봉착했다.

한국 과학의 미래는 엘리트 카르텔의 폐쇄성을 깨는 데서 시작된다. 관료주의의 사슬을 벗어던지고 창의성에 날개를 달아준다면, 우리는 단순한 기술 추종자가 아닌 글로벌 혁신의 리더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처럼 “진정한 발전은 자유로운 개인의 빛으로부터 비롯된다”. 이제 그 빛이 관료의 그림자에 가리지 않도록, 우리가 모두 과학의 편에 서야 할 때다. 무속과 극우화된 기독교로 고통받는 한국에서, 과학만이 유일한 빛이 될 것이다. 과학을 빛으로 여기는 리더가 필요하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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