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윤석열 정부의 국무위원 중 지난해 12월 3일 밤, 명시적으로 비상계엄 선포에 찬성한 이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한 사람뿐이다. 그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렇다. 아마 대통령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걸 막기 위해 몸을 던졌다거나, 읍소하며 말렸다거나, 하다못해 사표를 쓴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 다들 계엄 치하에서 자기가 할 일을 점검하러 가거나, 집에 갔다.
같은 시각 국회에 투입된 특전사 707특임단원들이 사진을 찍은 기자를 케이블타이로 결박하고 제압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그걸 하는 군인들에게서 주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란에 가담한 군경의 모습이 대개 그랬다. 아마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는 지휘계선에 따라 분명한 지시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무위원들도, 내란에 가담한 군인들도 대부분 다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시킨 일인데 어쩌란 말이냐?’ 이들의 반응은 대개 그렇다. 시민들에겐 아무것도 책임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들이 책임져야 할 대상은 그저 자기를 임명해준 임명권자 대통령 한 사람뿐이다. 단지 그가 시민의 투표로 선출됐다는 명분 하나로. 적어도 문언상으로는 그렇다.
손에 쥔 권력이 있는 모든 이에겐 시민의 뜻을 살피고 책임질 의무가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만 뜯어고친다고 만사가 형통하지 않는다. 나라에 눈치 볼 것 없는 작은 제왕이 너무 많다.
헌법재판관들은 윤석열 탄핵심판 변론 절차를 종료하고 38일을 보낸 뒤에 선고일을 정했다. 기약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온 사회가 극심한 혼란과 위기로 치달았으나 근거를 알 수 없는 무성한 소문 외로 헌재가 내놓은 설명은 없었다. 물론 재판관 입장에선 시민들에게 판단이 늦어지는 경과를 설명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재량권에 속하는 것이니 말이다. 대통령의 운명도, 나라의 운명도 그저 헌법재판관들의 재량에 속할 뿐이다. 법관이 재판을 하는데 시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는가? 이들에겐 시민들에게 질 책임이 없다. 적어도 문언상으로는 그렇다.
법원은 시계 침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구속을 취소했고, 검찰은 온갖 판례를 뒤져가며 항고를 포기했다. 공권력을 총동원해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경호차장을 구속하는 일 앞에서 검찰과 법원은 한없이 신중했다. 시민들은 불안하지만 법관은 양심 앞에, 검찰은 법 앞에 떳떳하면 그만이다. 적어도 문언상으로는 그렇다.
이 나라의 어느 권력기관 엘리트도 시민의 통제와 견제를 받지 않는다. 여론을 살피고 시민들에게 책임을 지라 요구하면 포퓰리즘이라 욕하면서, 대통령은 시민의 투표로 선출된 사람이니 맹종해야 한다는 모순 앞에 불안한 시민이 갈 곳은 광장뿐이다. 오직 투표만이 신성하고 나머지 일들은 전문가 마음대로인 세상에선 민주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손에 쥔 권력이 있는 모든 이에겐 시민의 뜻을 살피고 책임질 의무가 있다. 헌법 앞자락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쓰여 있으니 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만 뜯어고친다고 만사가 형통하지 않는다. 나라에 눈치 볼 것 없는 작은 제왕이 너무 많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